항목 ID | GC0640004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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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牛江平野 |
영어공식명칭 | Ugang Pyeongya Plain |
이칭/별칭 | 소들강문들,우평(牛坪),소들강문[牛坪江門],소들광문,소들 평야,서야(西野) |
분야 | 지리/자연 지리 |
유형 | 지명/자연 지명 |
지역 | 충청남도 당진시 합덕읍|우강면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김추윤 |
전구간 | 우강평야 - 충청남도 당진시 합덕읍|충청남도 당진시 우강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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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당 지역 소재지 | 우강평야 - 충청남도 당진시 합덕읍 동남부|충청남도 당진시 우강면 동부 지역 |
성격 | 평야 |
[정의]
충청남도 당진시의 동남부 삽교천 주변 우강면 우평포와 강문포 일대의 평야.
[개설]
우강평야(牛江平野)는 삽교천[버그내] 이서 지방인 당진시 우강면 일대에 펼쳐진 간석지를 조선 시대 이래 일제 강점기까지 간척하여 만든 해성(海成) 퇴적 평야를 말한다. 내포 지방의 최대 평야인 예당평야의 일부분으로 당진 지역의 최대 평야이다. 일명 소들강문 평야라고 말한다. 우평(牛坪), 소들광문, 소들 평야, 서야(西野) 등의 이칭으로 불리기도 한다.
[명칭 유래]
원래 우평포(牛坪浦)와 강문포(江門浦)의 인위적 합성어에서 ‘우평강문(牛坪江門)’이 유래했다. 이것이 우리말로 ‘소들강문’이 되고, 후에 음운 변화가 되어서 ‘소들광문’이 된 것이다.
『대동여지도(大東輿地圖)』에는 ‘우평(牛坪)’이라 기록되어 있으며, 조선 총독부 발행 『조선 지지 자료』 면천 편에는 강문평(江門坪)과 소들[牛坪]이 따로 기록되어 있다. 『조선 환여 승람』에는 우평에 대해 “군의 동남쪽 40리에 있으니 지금으로부터 350여 년 전 토정 이지함이 아산을 다스릴 때 한진 앞바다가 크게 터져 육지가 바다가 된 이후 근 100년간에 걸쳐 점차로 간석지가 되어 육지와 연결되었다. 토착민이 둑을 쌓아 논을 만들어서 큰 들이 되었는데, ‘우평’이란 지명을 붙인 것은 소 모양의 돌 두 개가 바다 섬 중에 돌출했다가 자연스럽게 매몰되었기 때문이다. 들의 동쪽에 대각리(大各里)가 있는데 속칭 이르기를 두 소 뿔 사이에 만인이 살 수 있다고 말을 했다.”라고 되어 있다. 즉, 이쪽의 석우(石牛)와 서쪽의 석우 사이에 땅이 넓어 많은 사람이 살 수 있는 평야가 되었다는 뜻으로 석우가 솟았다가 가라앉아 매몰되어 생겨난 지명이라 전한다.
1834년에 김정호가 제작한 『청구도(靑邱圖)』의 삽교천 연변을 보면 '우평(牛坪)'이란 글자가 처음으로 범천면[현재의 우강면] 바로 위에 보인다. 이 당시는 범천면 바로 위의 삽교천 서쪽까지 아산의 월경지 땅으로 되어 있었다. 그래서 이곳의 삽교천 연변의 아산 땅에는 우평포(牛坪浦)가 있었다. 이 '우평(牛坪)'을 순 우리말로 바꾸면, 소를 뜻하는 ‘우(牛)’ 자에, 들을 나타내는 ‘평(坪)’ 자가 있어 '소들'이 되는 것이다.
역시 김정호가 1861년에 제작한 『대동여지도(大東輿地圖)』를 보면 『청구도』보다 좀 더 상세하게 '우평'을 그리고 있다. 즉, 아산 땅이 삽교천의 서쪽까지 넘어와 신평면 남부와 우강면 북부까지 차지하고 있으며, 이곳에 '우평(牛坪)'이란 글자가 나온다.
실제로 우강면 수문통 일대의 고기록에 보면, 아산군 이서면 땅에 속한 우평포가 월경지로 있었다. 옛날 이곳에 소뿔과 비슷한 바위가 솟아 있었던 것은 틀림없다. 그래서 지금도 삽교천 건너편 아산 땅에 대각리, 즉 한뿔[큰 뿔]이란 마을이 존재한다.
옛날에는 수리 시설이 안 되어 겨울 동안 내린 강우를 논둑을 막아 저수를 하였는데, 논을 갈 때에 온 지역이 물이라서 소하고 사람만 보인다고 하여 붙여진 지명이라고도 전한다.
전라도는 곡창 지대가 넓어서 일망무제의 넓은 들판을 구경하기가 쉽지만, 산악 지역인 강원도나 충청도 지역에서는 예산, 당진, 논산 일대를 제외하고는 자연적으로 생긴 넓은 평야 지대가 적다. 보통 사람들은 당진, 예산 일대, 즉 범위를 좁혀서 우강면과 합덕읍과 예산의 고덕 지역에 있는 삽교천 변의 넓은 평야 지대를 예당평야라고 부른다. 그런데 특히 당진 지역의 향토인들은 우강면 일대의 넓은 평야 지대를 ‘소들광문’, ‘소들강문’, ‘서들광문이벌’ 등으로 부른다. 보통 우리말 ‘소들’을 해석할 때, 소들강문[牛坪江門]-소들광문[牛坪廣門]-서들광문[西野廣門]으로 변용되어 ‘소들[牛坪]’을 ‘서들[西野]’로 잘못 부르는 사람들이 의외로 많다. 우강면 부장리, 신촌리, 공포리 등 우강면 전 지역에 걸쳐 있는 평야이기에 우강평야라 부른다. 이제는 ‘서들’을 ‘소들’로 바로 잡아야 할 때다.
[자연환경]
우강평야 지역은 후빙기 해수면의 변화에 따라 저습지가 조선 시대 이래 오랫동안 간척되어 만들어진 간척 평야 지대이다. 대부분 감조 하천(感潮河川)[조석의 영향으로 하천의 하류부에서 하천의 수위가 변하는 하천]인 삽교천 주변의 해성 퇴적 평야 지대로 갯벌이었던 땅이 중심이다.
아산만으로 들어가는 삽교천 하류의 서쪽에 위치한 우강면 전 지역에 분포하는 당진시 최대 곡창 지대로, 충청남도 예산군의 예당평야까지 연결되어 있다.
[현황]
우강평야는 당진시의 동부 우강면의 동쪽 삽교천 변에 걸쳐 펼쳐 있는 넓은 들이다. 원래 삽교천은 바닷물이 들어오는 감조 하천으로 1979년 삽교천 방조제가 만들어지기까지는 예산군 구만리까지 바닷물이 들어왔다. 현재 이 지역은 넓은 답작지로 개답되어서 경지 정리가 기반식으로 잘 되어 있고 당진 최대의 평야 지대를 이루고 있으며, 전에는 관개용수의 부족과 삽교천의 홍수와 해일 피해로 인하여 농사에 막대한 피해를 입었다. 삽교천 방조제의 완공으로 인공 담수호인 삽교호가 생기면서 관개 수로를 잘 정비하여 전천후 농경지로 변했으며, 삽교천의 해일 피해와 염분 피해도 막을 수 있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