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640116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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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沿岸漁業 |
영어공식명칭 | Coastal Fishery |
이칭/별칭 | 근해 어업,양식업 |
분야 | 생활·민속/생활 |
유형 | 개념 용어/개념 용어(일반) |
지역 | 충청남도 당진시 우강면|석문면|송악읍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강순희 |
[정의]
충청남도 당진의 인근 바다에서 10톤 미만의 소형 어선을 사용하여 조업하는 형태.
[개설]
당진의 어업은 근해어업과 연안어업이 발달했다. 당진은 서해안 갯벌이 넓게 펼쳐져 있고 밀물과 썰물의 차가 크기에 수심이 깊지 않기 때문이다. 근해 어업은 총톤수 8톤 미만의 동력 어선을 사용하는 어업이다. 연안어업은 총톤수 8톤 이상 10톤 미만의 동력 어선을 사용하는 어업으로서 근해 어업 및 구획 어업 외의 어업이다. 자망·안강망·선망·통발·들망·조망·선인망·복합 어업 등이다.
[당진 연안어업의 변천]
충남 당진의 어업 형태는 어선이나 어구가 발달하지 못했던 조선 시대 말기까지는 지역 내의 어장인 아산만, 남양만 일대를 벗어나지 못하고 연안의 맨손 어업에서 영세성을 면치 못하였다. 1920년대부터는 외부로부터 어업 기술이 점진적으로 도입되면서 어선 어업이 급격히 발달되었다. 특히 해방 전까지는 이미 한선의 방식에서 이른바 '나가시키 어선, 삼판 어선' 등 일본식 어선으로 거의 교체되었고 어종이 풍부한 연근해 어장의 정보도 점점 더 알게 되었으며 외부의 근해어장으로 차츰 멀리 조업의 영역을 넓혀 나갔다. 그러나 2000년대에 들어서면서 삽교천 방조제 공사나 석문 간척 지구 건설 등 각종 간척사업과 현대 제철, 당진 화력 등 거대 기업이 해안가에 건설되기 시작하면서 변화가 생겼다. 갯벌을 토대로 서식하던 생물들의 종이 소멸되기 시작했고 수온의 상승으로 생물의 종류도 변화를 겪기 시작했고 많은 곳에서 어업이 지속되기 어렵게 되어가고 있다.
[당진 연안어업의 특성]
현재 당진에서 사용되는 어선의 종류로는 기동성별로 범선, 동력선[1행정, 2행정, 다행정, 엔진형]이 있으며 규모별로는 ① 중선급(重船) 50~60톤급[대형], ② 닻배급[5~10톤급 소형], ③ 소선급[5톤 미만 초소형]이 있다. 1920년대의 중선배는 조선식 한선으로 배의 밑바닥은 널판을 가로 붙여 만든 것이었고 돛폭은 천이 귀한 때이어서 띠풀을 엮어서 썼으며 승선 인원은 약 50명이었다. 내도(內島)에서 연평도까지 4인조가 노를 저으며 조기를 잡으러 출항을 하였는데 가고 오는 데 대략 한 달씩이나 걸릴 만큼 속도가 느렸으나 최근에는 동력선으로 기동성이 뛰어나다.
조업의 종류로는 정치망(定置網) 어업과 안강망(鮟鱇網) 어업, 낭장망(囊長網) 어업, 자망 어업, 선인망(船引網) 어업, 연안 통발(沿岸筒����) 어업, 패류 껍질 주낙, 문어 단지, 붕장어[아나고] 통발, 갯벌 살그물 매기, 물목 통발 그물 매기과 굴, 바지락, 해태[김], 새우, 미꾸라지, 가물치, 우렁이, 자라 양식이 있다.
우강면의 수산업은 삽교천 방조제가 만들어지기 이전인 1970년대 초까지 가장 활발하였다고 볼 수 있다. 우강면에 있는 포구인 부리포, 남원포, 수문통, 소포 등에 고깃배가 있었다. 조기잡이 중선은 부장리에 있었는데 배가 너부죽하여 배 앞에 그물을 넣어 놓았다가 번쩍 들어 지나가는 고기나 새우젓 등 여러 가지 물고기를 잡았다. 그물을 죽 늘어놓았다가 1시간 정도 지난 후에 숭어, 준치를 잡는 배로 덫망이 양쪽에 있어 고기가 엉키게 하여 잡던 배이며 6집 정도가 있었다. 안경배는 그물을 배의 양쪽에 통으로 내려놓고 가다가 올려 잡는 배다. 보리가 누렇게 익어갈 즈음에 잡히는 것은 “보리짚 숭어구먼” 하였고, 산란 전에 잡히는 것이 맛이 있다하여 많이 잡았다. 일제 강점기에는 배 취급소로 주식 회사 마르보시가 우강면 부장리에 있었다. 우강면 부장리 남원포에 당시 지방민들이 소유한 배는 12~13척이 있었고 나무나 소금 등을 실은 배가 들어오면 포구 내에 배가 30~40척이 있었다. 삽교천이 막히기 전에는 갯골로 물이 들어올 때 그 갯골로 배가 들어왔다. 당시 농장이 만들어지기 전에 갯물이 들어와 갯나문쟁이가 무성하고 청게, 황발이, 능쟁이, 똥게, 도독게, 밤술이, 농게, 능쟁이 등의 게가 많았으며 갯망둥이 등이 잡혔다. 강달이, 황색이, 동어, 모쟁어, 민챙이[미름챙이] 꽃게, 숭어, 이합, 대합[백합] 등 조개류가 풍부하였으며 나문쟁이는 반찬으로 이용되었다. 준치, 조기, 갈치, 복어, 새우, 꽃게 등도 잡혔다. 당시 갯골을 다녔던 배는 뎃마[노 젓는 배]로 작은 어선이었다. 그 배를 타고 다니며 그물을 쳐 실뱀장어, 실치, 곤쟁이, 범계 등을 잡았다. 해파리가 잘 잡혀 백반에 절여 놓은 통이 많았는데 그것을 잔칫집에서 이용했다. 1979년 삽교천 방조제를 쌓으면서 우강면의 어업은 완전히 소멸하였고 그 이후 소형 선박을 이용한 어업이 존속되고 있는 형편인데, 붕어, 잉어를 잡기 위하여 저녁에 그물을 설치하고 아침에 그물을 건져 올리는 형태이다. 배 1척의 어획량은 1일 30kg정도였다.
석문면 역시 너른 갯벌 덕분에 맨손 어업과 염전, 근해 어업이 발달해 왔고 각종 양식업이 발달해서 어촌계장만 해도 수십 명씩 되었다. 그러나 간척 사업과 당진 화력의 화력 발전소 건설로 인해 이제 '장고항 당도라지 당제'까지 지내던 석문면의 수산업은 급격히 쇠락하였다. 이처럼 현재 당진의 연안어업은 간척 사업과 해안가의 산업화로 인해 점점 쇠퇴하고 있다.
[민속 관련 사항]
당진에서는 연안어업의 안전한 조업을 위해 '장고항 당도라지 당제'나 '안섬 풍어제' 등 무속 신앙이 성행하기도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