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640126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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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祭 |
영어공식명칭 | Jangseungje |
분야 | 생활·민속/민속 |
유형 | 의례/제 |
지역 | 충청남도 당진시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고대영 |
[정의]
충청남도 당진에서 음력 정월 보름날에 장승에 지내는 제사.
[개설]
장승제는 마을 어귀나 고갯마루 등에 세운 장승에 잡귀와 질병, 재앙을 막고자 제사를 지내는 민간 신앙이다. 장승은 마을 입구 길 옆에 세워 밖에서 들어오는 잡귀나 재앙, 질병을 막는 수호 기능을 가지고 있다. 장생(長生), 장승(長承, 將丞) 등으로 기록되기도 한다. 장승은 나무나 돌로 만드는데, 대부분은 나무로 만든다. 신평면의 경우 운정리에 돌미륵[석장승]이 세워져 있는데, 남근석의 형태이다. 1428년(세종 10)에 세워진 오랜 역사를 가지고 있다. 송악읍 안섬의 장승은 특이하게 칼을 들고 있는 형태이다. 장승의 몸에는 '천하 대장군'과 '지하 여장군'의 글씨를 써 놓는 경우가 많다. 장승은 마을 수호신, 액막이 용도로 세워졌으며, 이정표로서의 역할도 수행했다. 장승제는 장승을 새로 깎아 세울 때 축원의 마음을 담아 제를 지내기도 하고, 매년 정기적으로 지내기도 한다.
[연원 및 변천]
장승의 제작과 설치, 그리고 장승제는 오랜 역사를 가지고 있다. 신평면 운정리의 석장승을 보면 과거의 남근석을 대체한 것으로 보이며, 1428년에 세워진 것으로 보면 약 600년의 역사를 가진다. 또한 뒷면에 향리인 호장이 주도하고 시주와 화주 등이 참여한 기록이 있는 것으로 보아 마을의 향리와 주민들이 마을의 평안을 위해 세웠음을 알 수 있다. 마을 주민 혹은 일부 지역에서는 무당이 굿을 하는 경우도 있었다. 장승은 기독교의 보급이나 마을 공동체의 분화 등의 이유로 일제 강점기를 전후하여 많은 지역에서 사라졌다. 『당진군지』에 따르면 합덕읍 대전리 내동, 석문면 장고항 3리 절골, 대호지면 장정리, 정미면 승산리, 신평면 금천리 1구, 송악읍 중흥리 중말, 한진 1리, 기지시리 등에 장승제가 전해졌다고 한다.
[신당/신체의 형태]
마을 초입, 혹은 마을의 동서남북에 있는 장승을 모신다.
[절차]
장승제는 산신제 등과 달리 떠들썩한 분위기에서 농악을 치며 한바탕 노는 형태이다. 장승을 세울 경우에는 기존 장승에 바짝 붙여 세우며 장승에 오색천을 두르기도 한다. 제사의 경우 간단하게 제물을 차리고 절을 올리며 지내고 한바탕 논다. 대부분 마을 주민들이 참여하며, 술과 떡, 밤, 대추, 곶감, 돼지머리, 편육 등을 제물로 사용했다.
[축문]
별도로 조사, 기록된 축문은 없다.
[부대 행사]
장승이 마을 민속에서 어떤 위치에 있는지에 따라 마을제의 하나로 이루어지기도 한다. 산신제, 서낭제, 노송제와 함께 지내기도 하고, 기지시리의 경우 기지시 줄다리기 민속 축제의 일환으로 정월 대보름에 장승제를 지낸다.
[현황]
많은 마을에 장승이 남아 있고, 일부는 '장승백이', '장승골' 등의 지명으로 남아 있는 경우도 있다. 오늘날에도 마을의 초입에 새로이 세우기도 하나 전통적인 마을 공동체의 붕괴와 장승제를 미신으로 생각하여 당진 지역의 장승제는 대부분 사라지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