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640125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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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民間信仰 |
영어공식명칭 | Folk Belief |
분야 | 생활·민속/민속 |
유형 | 개념 용어/개념 용어(일반) |
지역 | 충청남도 당진시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고대영 |
[정의]
충청남도 당진시에서 특정 종교와 관련 없이 민간에서 지속적으로 내려오던 개인 신앙과 가정 신앙, 공동체 신앙을 포함한 다양한 신앙.
[개설]
민간신앙은 오랜 세월 동안 우리 민족이 살아오면서 겪었던 다양한 경험을 토대로 자연적으로 나타난 크고 작은 신앙과 제의, 속신 등을 말한다. 개인적으로는 작은 금기나 믿음, 의료 행위부터 넓게는 마을과 지역에서 내려오는 제사까지 넓은 범주를 포괄한다. 민간신앙은 지금도 무속이나 불교와 연계되거나 민간에서 생활 속에서 이어져 내려오고 있다. 하지만 대부분의 민간신앙은 일제 강점기와 6·25 전쟁, 전쟁 이후 근대화와 서구화의 움직임에 따라 미신으로 치부되어 사라지고 있다.
[당진의 민간신앙]
민간신앙은 재앙을 막고 복을 부르기 위해 개인 혹은 가정, 공동체에서 노력했던 다양한 신앙 행위들을 말한다. 소극적으로는 액막이를 위한 다양한 속신이나 의식, 풍수 신앙이며, 적극적인 행위로는 가택 신앙, 마을 공동체 제사와 의식, 굿과 독경, 조상에 대한 제사 등이 있다. 민간에서의 신앙들은 지역에 따라 독특한 형태로 이어져 왔고, 충청남도 당진시 또한 마찬가지다.
개인의 민간신앙은 속신, 금기 등이 있는데, 특히 동토 잡기나 삼눈 잡이 등은 민간에서 최근까지 이어졌던 신앙이다. 몸에 이상이 생기는 것을 주술적인 것으로 해결하고자 했던 조상들의 노력이며, 삼눈 잡이의 경우 그 흔적이 충청남도 당진시 우강면 원치리의 한갑동 가옥에 남아 있다. 금기의 경우 상가 출입이나 제사나 제관의 신성성을 지키거나 여자의 부정관, 임산부의 조심 등 여러 분야에 걸쳐 있다. 이러한 금기를 어기면 부정 탄다고 하여 어릴 때부터 금기를 지키도록 내면화되었다. 금기 중 일부 내용은 보건과 안전에 관련한 부분이 있어 미신이라며 아주 무시할 내용은 아니다.
가정 신앙은 집을 중심으로 이루어지는 가신 신앙들을 말한다. 성주 신앙과 삼신, 조상신[제석], 조왕, 터주신, 업신, 대문신, 우마신 등 집 안의 곳곳에 신격을 부여하여 가정의 평안과 풍요, 번영을 기원했는데, 당진은 대개 정월 대보름 때 두레 농악패들이 마을의 집집을 다니면서 축원하였다. 부엌, 장독대, 변소, 마구간 순서로 풍악을 하고 축원을 한 다음 대청에서 성주굿을 하고 다음 집으로 향하였다. 이러한 농악패뿐만 아니라 부녀자, 혹은 남성들이 가정 행사의 일환으로 제사를 지내기도 하였다.
공동체 신앙은 마을 단위에서 마을의 안녕과 풍요를 위해 제의 형식으로 이루어진다. 정월 대보름 전후로 산신제와 용왕제, 풍어제, 장승제 등이 이루어지는데, 마을에 따라 다양한 형태로 이루어졌다. 서낭당과 장승, 당집 주변에서는 함부로 다니지 못하게 하였고, 제사를 통해 마을 공동체의 단결과 화합, 풍요와 평안을 기원하였다. 마을 주민 중에 제관을 선출하고, 제관이 지켜야 할 금기를 통해 제관에게 신성성을 부여하였다. 제사 뿐만 아니라 볏가릿대 세우기, 줄다리기 등 당진 지역의 독특한 놀이와 결부한 민간신앙도 있었다. 한 해의 풍년을 점치고 풍요를 기원하는 볏가릿대는, 한 해 농사를 시작할 때 마을 사람들을 결속하고, 함께 모여 두레가 활동할 수 있도록 하였다. 충청남도 당진시 송악읍 기지시 줄다리기의 경우 지신밟기의 성격으로서 당제, 용왕제 등과 결합하여 한 해의 풍요와 평안을 기원하는 의미를 담고 있다. 또한 풍수적으로 줄다리기를 해야 재앙이 없다는 유래 설화에서 풍수지리의 측면 역시 가지고 있다. 아울러 줄의 제작이나 줄 관리에 있어 많은 금기가 있어 줄을 신성시했음을 알 수 있다. 풍수의 경우에도 마을 초입마다 장승을 세우고 서낭을 조성한다거나 나무를 심어 비보를 조성하는 등 마을과 집터, 묘지 등을 고를 때 복이 들어오고 흉한 자리를 피해 선정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하였다.
이렇듯 조상들의 삶과 함께 이어져 왔던 민간신앙들은 6·25 전쟁과 1960~1970년대 근대화 시기를 겪으면서 대부분 사라지게 되었다. 특히 두레 공동체와 마을 공동체의 해체, 공동 경작을 통한 농업 방식의 변화, 기독교의 보급에 따라 민속 신앙이 '미신'으로 치부되며 급격히 사라졌다. 과거에는 삶의 일부로 자연스러운 전승과 관습으로서 지켜지고 이어져 왔지만, 오늘날에는 별도의 민속 조사와 기록, 연구를 통해 보존 대책을 마련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