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1100931 |
---|---|
한자 | 潘仁後 |
영어음역 | Ban Inhu |
이칭/별칭 | 응선(應先),국오(菊塢) |
분야 |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문무 관인 |
지역 | 충청북도 음성군 |
시대 | 조선/조선 전기 |
집필자 | 박용만 |
성격 | 문신 |
---|---|
출신지 | 충청북도 음성군 |
성별 | 남 |
생년 | 1555년 |
몰년 | 1628년 |
본관 | 광주 |
대표관직 | 군자감첨정 |
[정의]
조선 중기 충청북도 음성군 출신의 문신.
[가계]
본관은 광주(光州). 자는 응선(應先), 호는 국오(菊塢). 할아버지는 반석권(潘碩權)이며, 아버지는 선교랑(宣敎郞) 반사렴(潘士濂)이다.
[활동사항]
1555년 충청북도 음성군에서 태어났다. 1591년(선조 24) 사마시에 합격하였으나 명경과(明經科)의 『대학(大學)』에서 떨어진 뒤 과거 공부를 그만두고 글에만 전념하였다.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향리에서 의병을 일으켜 전공을 세웠다.
조정에서 공훈을 표창하려 하였으나 서생(書生)으로서 무작(武爵)을 받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라며 공을 유림(柳霖)에게 양보하였다. 1598년(선조 31) 음보로 벼슬길에 올라 호조정랑, 군자감첨정(軍資監僉正)을 지냈다. 1628년 향년 74세로 사망하였다.
[저술 및 작품]
『백가류어(百家類語)』가 있다.
[묘소]
충청북도 음성군 원남면 하노리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