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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1700604
영어의미역 Menhir
이칭/별칭 입석(立石)
분야 역사/전통 시대
유형 개념 용어/개념 용어(일반)
지역 충청남도 공주시
집필자 이남석

[정의]

충청남도 공주시에 있는 선사시대부터 근세에 이르는 거석 기념물의 한 종류.

[개설]

선돌은 자연석이나 자연석을 일부 다듬어 세워 놓고 신앙의 대상으로 삼은 것으로 고인돌과 조합을 이뤄 세워 놓은 것도 있다. 선돌의 연대를 추정하기는 매우 어려우며 지역에 따라 다르다. 서유럽의 경우에는 신석시시대 후기부터 시작하여 청동기시대에 유행한 것으로 나타난다. 선돌에 성혈(性穴)을 새겨 놓은 것도 있다.

선돌은 한반도의 전국에 걸쳐 분포하고 있으나 그 수는 많지 않다. 선돌은 대부분이 단독으로 세워진 것이 상례이고, 때로는 쌍으로 세워지거나 동일 장소에 여러 개가 세워진 특수한 경우도 있다. 형태는 주로 둥근 뿔 모양이 많으며, 비석 모양과 뾰족한 돌기둥 모양 등 다양한 편이다.

선돌은 기능에 따라 그 축조 목적을 원시사회의 정령숭배(精靈崇拜)와 연결시키는 것이 지배적이다. 즉, 선돌의 외형은 남성의 생식기와 비슷한데, 원시사회에서 생식기는 다산과 풍요의 상징이었으므로 원시인들은 다산과 풍요를 기원하는 신앙의 대상물로서 선돌을 축조했다는 것이다. 선돌의 신앙 대상물로서의 기능은 후대에 글자를 새겨 넣는다거나 볏짚이나 새끼를 묶는 등 의인화(擬人化) 또는 신격화시켜 수호신(守護神)이나 기자암(祈子岩) 같은 기능으로 변질되어, 다시 후대에 나무에 새긴 장승으로 연결된 것으로 보기도 한다.

선돌이 무덤 근처에 있는 예가 있다. 대구 진천동에서는 선돌을 중심으로 제단 유적을 만들었다. 창원 덕천리에서는 고인돌을 가운데에 두고 주변에 2~3단의 적석 기단을 마련하여 장방형의 제단을 만들었다. 선돌이 고인돌과 결합된 예는 보령 삼계리, 동곡리, 삼곡리, 대덕 교촌리, 청양 지곡리 등 충청도 지역에 많다. 연백 문창리처럼 탁자식 고인돌 무덤군에 여러 개의 선돌이 함께 서 있는 곳도 있다. 이는 선돌이 무덤 구역을 표시하고 있는 것으로 짐작된다. 한국의 선돌은 대체로 청동기시대에 속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유적의 분포]

공주 지역의 선돌은 여러 곳에서 확인되었다. 대부분이 높이 2~4m 내외 규모의 장대형의 석재를 마을 입구에 세워 놓은 것들로 특정한 형태를 의도적으로 제작한 흔적은 전혀 발견되지 않는다. 공주 지역에서 발견된 선돌은 대부분 신앙의 대상으로 모셔져 오는 것이 많다. 이것으로 볼 때, 지금까지 확인된 선돌이 모두 선사시대와 관련된 것으로 단정짓기는 어렵다. 그러나 현재 남아 있는 선돌을 중심으로 그 주변 지역에 선사 유적이 분포하는 경우를 보면, 선돌이 선사 유적과 관련된 것들도 상당히 있음을 알 수 있다.

이러한 선돌들은 지표상에 남아 있는 형상 정도로 확인되었다. 확인된 선돌 가운데 국곡리 선돌이 위치한 지역은 그 주변에서 1기의 고인돌이 조사되어 선사 유적 분포지로 알져져 있기도 하다. 또한 남산리 선돌이 위치한 지역은 부여군 초촌면과 인접한 곳으로 표고 50~60m의 낮은 구릉이 잇대어져 있는데, 이 구릉을 중심으로 넓은 평야지가 전개되어 있어서 일찍부터 청동기시대와 관련된 유적이 많이 알려져 있다. 가척리 선돌은 자연 할석을 선돌의 기단으로 조성하여 신앙의 대상으로 섬겨왔다고 한다. 그 밖에 신흥리 선돌, 상신리 선돌, 향지리 선돌, 당암리 선돌, 보흥리 선돌, 도신리 선돌들도 선사시대의 유적으로 파악된다.

[유적의 성격]

선돌은 대부분 마을 어귀 같은 평지에 세워졌으며, 간혹 구릉 위나 비탈에 세워진 것도 발견된다. 공주 지역에서 확인된 선돌의 유형은 크게 세 가지로 추정된다. 청동기시대 마을 유적과 관련하여 일정한 경계의 표시로 사용된 경우, 고인돌과 관련하여 죽은 사람을 상징하거나 추모하는 의미에서 세워진 비석의 원초형으로 보이는 경우, 재래 신앙의 민속 행위와 관련하여 근대에 조성된 경우가 있다. 그러나 이에 대해서는 아직 뚜렷한 자료와 증거를 제시할 수 없는 한계가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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