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620044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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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咸安尹桓墓域 |
영어공식명칭 | Tomb of Yun Hwan, Haman |
분야 | 역사/전통 시대 |
유형 | 유적/능묘 |
지역 | 경상남도 함안군 칠원읍 유원리 산182-2 |
시대 | 고려/고려 후기 |
집필자 | 김재현 |
[정의]
경상남도 함안군 칠원읍 유원리에 있는 고려 후기 윤환의 묘.
[개설]
윤환(尹桓)[?~1386]은 충혜왕부터 공민왕에 이르기까지 다섯 명의 왕을 섬겼고, 세 차례 재상을 역임하였다. 본관은 칠원(漆原)이며, 시호는 충효(忠孝)이다. 충혜왕 때 대언(代言)을 지냈다. 1339년(충숙왕 복위8) 조익청과 충혜왕 측근의 불량배들을 제거하려다 참소를 입어 칠원군으로 추방되었다. 1340년 충혜왕이 복위하자 동지밀직(同知密直)이 되었고, 원나라로부터 행성 원외랑(行省員外郞)의 관직을 제수받았다. 1342년(충혜왕 복위3) 조적(曺頔)의 난을 진압한 공으로 일등 공신에 올라 수성 양절 보리 공신(輸誠亮節輔理功臣) 호를 받고 찬성사로 승진하였으며, 원나라로부터 다시 행성 낭중(行省郎中)에 제수되었다. 이후 칠원 부원군(漆原府院君)에 봉해지고, 수성 양절 선력 보리 공신(輸誠亮節宣力保理功臣) 호를 받았다. 1354년(공민왕 3) 찬성사가 되고 판삼사사(判三司事)를 거쳐, 1356년 수충 협의 동덕 익찬 공신(輸忠恊義同德翊贊功臣) 호를 받고 좌정승으로 승진하였다. 그해 관제 개혁으로 수문하시중(守門下侍中)으로 고쳐 임명되었으나, 죄를 지어 유배되었다. 1360년 칠원후로 봉해졌다가 칠원백(漆原伯)으로 고쳐 봉해졌다. 1380년 문하시중이 되었다. 고향에 있을 때 큰 기근이 일어나자 가산을 털어 빈민을 구제하기도 하였다.
[형태]
윤환 묘는 얇은 점판암을 쌓은 방형 호석(護石)을 돌렸으며, 주변에는 호석과 같은 석재를 이용하여 ‘ㄷ' 자 모양의 담장을 쌓고 1단의 참배단을 조성하였다. 1826년 2월 15세손 윤재건이 창원 부사로 있을 때 세운 묘비가 있다. 윤환의 묘 아래쪽에는 아들의 무덤으로 추정되는 장방형 호석을 돌린 묘가 1기 축조되어 있는데, 무덤 주위에 담장이나 참배단의 시설은 없다.
[현황]
윤환의 묘는 현재 봉분이 거의 깎여 나간 상태로 호석 위에 약간 볼록하게 남아 있다. 담장은 비교적 형태를 잘 유지하고 있으나, 부분적으로 약간 무너진 곳도 있다. 함안 윤환 묘역(咸安尹桓墓域)은 2007년 3월 15일 경상남도 문화재자료 제422호로 지정되었고, 2021년 11월 19일 문화재청 고시에 의해 문화재 지정번호가 폐지되어 경상남도 문화재자료로 재지정되었다. 칠원 윤씨 대종회에서 관리한다.
[의의와 평가]
함안 윤환 묘역은 지상에 방형으로 호석을 쌓아 올려 만든 고려 시대 무덤 양식을 잘 보여 주는 귀중한 자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