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620070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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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周宰成 |
영어공식명칭 | Ju Jaeseong |
이칭/별칭 | 성재(聖哉),국담(菊潭) |
분야 | 역사/전통 시대 |
유형 | 인물/문인·학자 |
지역 | 경상남도 함안군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김익재 |
[정의]
조선 후기 함안 출신의 학자이자 의병장.
[가계]
본관은 상주(尙州). 자는 성재(聖哉), 호는 국담(菊潭). 시조는 주유(周瑜)이고, 주세붕(周世鵬)의 후손이다. 아버지는 경재(敬齋)주각(周珏)이다. 어머니는 노한석(盧漢錫)의 딸 광주 노씨(光州盧氏)이다.
[활동 사항]
주재성(周宰成)[1681~1743]은 경상남도 함안군 칠원읍 무기리에서 태어났다. 1728년(영조 4) 이인좌(李麟佐)의 난이 일어났을 때 의병을 일으켜 난을 진압하는 데 공을 세웠다. 당시 군량미로 쌀 300석을 내놓았다. 이인좌의 난이 평정되고 난 뒤 고향으로 돌아와 강학에 전념하였다.
[학문과 저술]
저서에 『용학 강의(庸學講議)』『경의 집록(經義輯錄)』『거가 요범(居家要範)』이 있다. 『용학 강의』는 『중용(中庸)』과 『대학(大學)』을 주석한 것이고, 『경의 집록』은 『논어(論語)』, 『맹자(孟子)』, 『주역(周易)』 등을 풀이한 것이다. 『거가 요범』은 중국과 우리나라의 역대 예설(禮說)을 집약한 것이다. 문집으로 『국담집(菊潭集)』이 있다
[상훈과 추모]
1745년(영조 21) 승정원 좌승지 겸 경연 참찬관에 추증되었고, 1783년(정조 7) 조정에서 정려를 내렸다. 1788년(정조 12) 기양 서원(沂陽書院)에 제향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