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330000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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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內陸-淸風湖 |
영어의미역 | An Inland Sea, Cheongpungho Lake |
분야 | 지리/인문 지리 |
유형 | 개념 용어/개념 용어(기획) |
지역 | 충청북도 제천시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예경희 |
[개설]
1985년 충주댐이 완공되면서 제천과 충주의 깊숙한 곳에 고요하지만 한눈에 그 크기를 쉽게 가늠할 수 없는 호수가 생겨났다. 평화로운 듯 보이는 이 내륙의 바다를 제천 지역 사람들은 청풍호라 부른다.
[내륙의 바다, 그 해저에서 들려오는 마을의 속삭임]
청풍호의 고요한 물길 속에 잠긴 제천 지역 마을들은 모두 5개 면(面) 61개 리(里)에 달한다. 그러나 실제 물속에 잠긴 마을은 그보다 더 많다. 서서히 물이 들어오기 시작하면서 제일 먼저 사람들이 이곳을 떠났다. 이웃으로 삶의 터전을 옮긴 사람들도 있고, 아예 고향땅을 떠난 이들도 있다. 이들이 흩어지면서 마을에서 함께하던 모든 것이 사라졌다.
서로 부모님의 마지막 가는 길을 살피고자 마을의 또래들이 함께 했던 상포계도 사라졌다. 제천시 청풍면 도화리에는 연령별로 여러 개의 상포계가 있었지만 마을이 수몰되면서 모두 사라졌다. 이렇듯 청풍호의 고요함은 제천의 많은 마을을 소리 없이 사라지고, 변하게 만들었다. 하지만 내륙의 바다가 미처 다 삼키지 못한 것이 있다. 바로 마을을 지켜 준 동신(洞神)에 대한 믿음이 그것이다.
마을을 지켜 주는 신께 1년에 한두 번 정성을 드려 마을을 평안하게 하고자 했던 믿음은 사라지지 않았다. 물론 수몰된 마을의 동신이 모두 살아난 것은 아니다. 충주댐이 완성되기 전까지 제천시 청풍면 도화리에서는 5개의 자연 마을 사람들이 합심하여 마을에 있던 느티나무 두 그루에 동제를 올렸다. 수몰로 인해 나무가 모두 물에 잠겼지만 마을 사람들은 옮긴 터전에 마을 비를 세우고, 한 해에 한 그루씩 두 그루의 소나무를 심었다. 마을 사람들은 이 소나무가 과거의 느티나무처럼 그렇게 마을을 지켜 줄 것이라고 여기고 있다. 비록 마을 비 앞에서만 제를 올리고 소나무에는 제를 지내지 않지만 마을을 평화롭게 하고자 하는 마음은 여전한 것이다.
[사라진 고향을 그리워하는 한숨들]
사라진 고향땅을 그리워하지 않은 이들이 있을까? 지금도 수몰 전 고향에 대한 추억을 가지고 있는 할머니, 할아버지들은 노을에 물든 청풍호를 바라보면서 젊었던 시절 남한강으로 저물던 해를 기억해 낸다. 촌로들의 기억 속에는 여전히 남한강이 흐르고 나룻배로 강을 건너던 모습이 아련하다.
다행히 사라진 고향의 모습은 『충주댐 수몰 마을사』에 기록되어 고스란히 남아 있다. 이 책에는 수몰된 마을들의 개관부터 역사, 수몰 상황 등을 비교적 자세히 기록되어 있다. 또한 수몰 마을에 거주했던 주민들이 마을을 잃은 참담한 심정을 읊어낸 시나 산문 등을 소개하고 있다. 수몰 전 제천시 수산면 괴곡리에 살았던 신명자는 잃어버린 고향에 대한 애틋한 마음을 다음과 시로 그려 내었다.
괴곡리 물에 잠겨 갈 수 없는 우리 마을/ 개구쟁이 웃음꽃을 하늘 끝에 매어 놓고/ 이렇듯 달뜨는 밤이면 고향 찾아 헤맨다/ 어머니 낡은 신은 돌짝 위에 얹혔는데/ 솟아오른 물거품만 조심스레 바라보다/ 그 모습 그림자 되어 어데론가 떠나간다/ 하이얀 숨결들은 아직도 남았는데/ 돌아본 뜰악에는 손길도 간곳없고/ 집터에 고인물결만 나를 반겨 일렁인다.
다시 찾아 가고 싶어도 갈 곳이 사라진 고향 마을, 현대화·도시화의 발전 속에 지금은 쉽게 찾아볼 수 없는 우리네 마을의 옛 모습들이 고향을 그리워하는 시에 함께 녹아 있다.
수몰로 고향은 잃었지만, 당시의 마을 모습들은 잘 찍힌 사진으로 남아 있다. 제천문화원과 충청일보사에서 발행한 『물에 잠긴 내 고향들』에는 지금은 청풍호에 잠긴 마을들의 1970년대 초반 모습이 고스란히 실려 있다. 수몰이라는 사건이 일어나지 않았던들 이렇게 많은 사진들이 남겨질 수 있었을까? 역사의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새로운 추억을 만들어 내며 생동하는 내륙의 바다, 청풍호]
내륙의 바다는 사시사철 고요하다. 그 수위의 높낮이만 조금씩 변할 뿐 한결같은 모습으로 이곳을 찾는 이가 누구든 똑같이 맞이한다. 청풍호의 탁 트인 모습과 잔잔한 물결, 아름다운 풍광은 물로 인해 이곳을 떠난 사람들의 마음을 달래 주고, 사람들의 발길을 이곳으로 다시 불러 모으고 있다.
금수산 자락이 포근하게 감싸고 있던 제천시 금성면 성내리는 물에 잠겼지만 그곳의 경관은 더욱 아름다워졌다. 집들이 사라지면서 사람의 손길이 멈추어진 성내리는 자연 그대로의 모습을 더하게 되었는데, 이곳에 KBS 역사 드라마 「태조 왕건」의 촬영 세트장이 만들어졌다. 갈골 동산과 청풍호반을 끼고 있는 이곳의 풍광은 고려 전기의 마을과 관아, 포구의 모습을 재현하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그리하여 개성 포구 벽란도를 재현하고 드라마를 찍으면서 이곳은 관광 명소로 자리 잡았다.
한편, 수몰된 마을들의 역사와 그곳에서 나온 유물들을 모아 조성된 청풍문화재단지는 수몰민들에게는 마을을 추억할 수 있는 장소를 마련해 주었고, 타지인들에게는 새로운 볼거리가 되었다. 특히 단지 안에는 향교, 관아, 민가, 석물군 등 43점의 문화재와 함께 민가 4채 안에 1,000개가 넘는 생활 유품을 전시해 놓고 있다. 이외에도 청풍 한벽루와 청풍 석조여래입상 등이 세워져 있다. 비록 인공으로 조성되긴 했지만 청풍호는 그 주변 풍광의 아름다움으로 인해 여전히 사람들의 발길을 끌고, 생동하며 새로운 추억을 만들어 내고 있다.
[청풍호가 품고 있는 제천의 발전 가능성]
청풍호를 만들어 낸 충주댐은 이 지역 삶의 환경을 좋아지게 하고 있다. 1972년 제천 지역에 발생했던 대규모 수해는 전 국민을 슬픔에 빠지게 했다. 이후 충주댐이 생기면서 이와 같은 수해는 재발하지 않고 있다. 이를 비롯해 충주댐은 제천·충주 일대에 각종 용수(用水)를 해결해 주고 있다. 충주댐의 이러한 기능은 이 지역에 거주하고 있는 사람들의 삶의 질을 높여 주고 있다.
또한 청풍호로 인해 새로운 관광 자원으로 활용되고 있는 청풍호 유람선은 이곳을 찾는 관광객 사이에서 입소문을 타면서 제천시의 중요 관광 코스가 되고 있다. 그리하여 청풍호를 찾는 관광객이 증가하면서 청풍호 주변 마을에도 소소한 변화들이 일어나고 있다. 수많은 농경지의 수몰로 농토를 잃은 주민들이 점차 관광객을 상대로 하는 요식업과 숙박업으로 생업을 바꾸고 있는데, 이는 가구 소득의 증대로 이어지고 있다. 또한 이러한 사업을 목적으로 타지 사람들도 청풍호 주변에 새롭게 정착하고 있다. 청풍호로 인해 삶의 터전을 잃게 된 사람들이 청풍호로 인해 새로운 꿈을 꾸고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