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470022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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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古地圖 |
분야 | 지리/인문 지리,문화유산/기록 유산 |
유형 | 개념 용어/개념 용어(일반) |
지역 | 인천광역시 미추홀구 |
집필자 | 이성임 |
[정의]
현재의 인천광역시 미추홀구가 속했던 인천의 옛 모습을 그린 전통 시대 지도의 총칭.
[개설]
고지도는 작성 연대가 오래되고[전통 시대], 투영·제작법이 현대의 지도와는 구별되는 회화적(繪畫的) 성격을 지닌 과거의 지도를 일컫는 말이다.
과거 지도는 주로 국방이나 행정의 목적으로 제작되어, 국가 통치의 중요한 자료로 인식되었다. 우리나라는 고대부터 이미 지도 제작이 이루어진 것으로 생각하지만 현전하는 것은 주로 조선 시대의 지도들이다. 조선 왕조는 건국 초기부터 지방에 대한 효율적 통치와 관리를 위해 지리지 제작 등에 힘썼으며 지도 제작 역시 그러한 목적에서 이루어졌다. 지도의 내용은 시대에 따라 점차 변해 가는데, 점차 산업이나 운수 등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조선 후기의 지도에는 산맥이나 하천, 교통망의 표시가 세밀해졌고, 관(官)이 아닌 개인의 지도 제작도 늘어나 김정호(金正浩)의 『대동여지도(大東輿地圖)』 등이 만들어지기에 이르렀다.
[인천(미추홀구) 관련 고지도]
원인천 지역은 현재의 인천광역시 미추홀구 일대를 중심으로 하는 읍치였는데, 이 지역을 그린 고지도는 조선 시대 이후의 자료만 현전하고 있다. 이들 지도를 유형에 따라 나누어 보면 크게 세 가지로 나누어진다.
첫째는 전국 지도책 또는 지도첩 속에 다른 군현 지도들과 함께 일련의 지도로 포함되어 있는 경우이다. 둘째는 읍지 등 지지류에 포함되어 있는 지도이다. 셋째는 개별 군현 지도나 특수 지도로 독립되어 있는 지도이다.
전국 지도책 또는 지도첩 속에 다른 군현 지도들과 함께 일련의 지도로 포함되어 있는 경우와 관련하여 조선시대에 제작된 도별 군현 지도집 또는 전국 군현 지도집을 정리해 보면 ① 『여지도(輿地圖)』[서울 대학교 규장각 한국학 연구원 소장, 古 4709-68, 26.5×19㎝], ② 『지승(地乘)』[서울 대학교 규장각 한국학 연구원 소장, 奎 15423, 27×19㎝], ③ 『여지도(輿地圖)』[국립 중앙 도서관 소장, 한 6103, 귀230, 37.4×30.0㎝], ④ 『광여도(廣輿圖)』[서울 대학교 규장각 한국학 연구원 소장, 古 4790-58, 37×28.3㎝], ⑤ 『접역 지도(鰈域地圖)』[서울 대학교 규장각 한국학 연구원 소장, 古 4709-43, 41×22.5㎝], ⑥ 『해동 지도(海東地圖)』[서울 대학교 규장각 한국학 연구원 소장, 古代 4709-41, 47.5×30㎝] 등이 있다.
이 중에서 전국 각 군현의 지도를 모두 수록한 전국 군현 지도집인 ① 『여지도』, ② 『지승』, ③ 『여지도』, ④ 『광여도』는 모두 18세기 중반에 제작된 군현 지도집이다. 이는 지도책의 형태로 묶여져 있으며, 내용은 거의 동일하다. 지도의 뒷면에는 각 지역에 대한 인구, 토지 면적 등을 설명하고 있는데, 주기의 내용도 거의 같다. 다만 책의 크기가 다르고, 지형이나 건물의 표현 양식 등이 약간 다르다. 규장각 한국학 연구원에 소장되어 있는 세 종의 지도에는 도로가 표시되어 있지 않아 국립 중앙 도서관에 소장되어 있는 『여지도』에는 도로가 적색 선으로 표시되어 있다.
그다음으로 읍지 등 지지류에 포함되어 있는 지도이다. 해당 지도는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의 「동람도(東覽圖)」, 『여지도서(輿地圖書)』의 군현 지도, 『경기지(京畿誌)』의 인천 지도, 『경기 읍지(京畿邑誌)』의 인천 지도, 『인천부 읍지(仁川府邑誌)』에 수록된 인천부 지도가 있다.
「동람도」는 지지를 보완하는 부도로 제작되었기 때문에 표현하고 있는 내용은 매우 소략하다. 지지에 이미 많은 내용이 지역별로 수록되어 있어 지도에서는 단지 지역의 개략적인 모습만 보여주는 정도에 그치고 있다. 『여지도서』의 군현 지도는 관아, 방리, 산천, 불우, 제언, 봉수, 목장, 고적 등 읍지의 내용을 지도에 표시하였다. 『경기지』에 포함된 인천 지도는 인천 또는 미추홀구의 관아를 중심으로, 여기에 속한 섬들이 모두 그려져 있다. 여기에는 관아, 방리, 향교, 산천, 진보 등이 표시되어 있다. 향교 옆에는 서원이 있고, 청량산 옆에 능허대가 보인다. 『여지도서』에는 서원으로만 되어 있던 것이 여기서는 학산 서원으로 그 명칭이 정확히 표시되어 있다.
『경기 읍지』의 인천 지도에는 인천 관아를 중심으로 인근의 섬들까지 그려져 있다는 점에서는 『경기지』와 별다른 차이가 없다. 그러나 작법은 조금 다르다. 육지와 바닷길, 그리고 거기에 형성된 포구 등을 표시하고, 도로를 그려 넣었다. 또한 각 면에는 관아와의 거리를 표시하였다. 한편 개별적으로 전해 오는 인천의 군현 읍지[인천부 읍지] 네 종 가운데에 세 종에도 지도가 첨부되어 있는데, 모두 『여지도서』의 지도와 유사하며 인천부를 중심으로 인근의 섬들을 그려 넣었고 도로를 선으로 표시하였다.
마지막으로 개별 군현 지도로서 『1872년 지방 지도』 중 인천부 지도가 있다. 이 지도는 이전의 지도와는 다소 차이가 있다. 이전의 인천 지도는 문학산을 중심으로 읍치를 표시하고 좌측에 향교 앞쪽에 문학산성과 봉수를 표시하는 것이 기본 형태였다. 그러나 여기서는 읍치보다는 각 면과 그곳에 위치한 사창에 더 중점을 두고 있다. 또한 읍치로부터 안산 방면, 부평 방면 등 육로로 연결되는 도로와 옛 제물진 포구와 연결되는 도로가 적색으로 표시되어 있다.
한편 조선 후기 고종 때 인천의 방어 시설인 화도진을 그린 『화도진도(花島鎭圖)』가 전해지는데, 회화식 입체적 지도로서 화도진을 비롯하여 인천부의 모습을 아름답게 그리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