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470037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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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邵城陣中日誌 |
분야 | 역사/전통 시대,문화유산/기록 유산 |
유형 | 문헌/전적 |
지역 | 인천광역시 미추홀구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김상열 |
[정의]
조선 후기 신미양요 당시에 현재의 인천광역시 미추홀구가 속했던 인천도호부에 구연상(具然相)이 머물면서 쓴 일지.
[개설]
『소성진중일지(邵城陣中日誌)』는 1871년 4월 6일부터 5월 23일까지 총 48일간 인천도호부 진중에 있었던 일을 기록한 책으로, 1871년(고종 8) 5월 23일 이후 어느 시기에 성책한 것으로 보인다. 전반부에는 일기가 후반부에는 당시의 인천 관련 각종 자료들이 수록되어 있다. 제목에 진중이 붙어 있는 까닭은 일기를 작성했던 기간이 신미양요가 발발한 시기[1871년]였으며, 이에 인천도호부 관아도 전시 체제의 군영을 갖추었기 때문으로 보인다.
이 자료는 현재 인천광역시립 박물관에 필경 등사본(筆耕謄寫本)으로 소장되어 있으며, 원본의 소재는 알 수 없다. 이 책은 1871년 5월 23일 이후 어느 시기에 작성된 것으로, 후에 이용희(李容熙)가 소장하고 있었다. 1963년경 이선근(李瑄根)과 유희강(柳熙綱) 인천 시립 박물관장이 알선하여 이 책을 대여 받아 박물관 직원에게 경기도 인천시의 역사와 관련된 자료를 골라서 베껴 쓰게 했는데, 원래 자료의 3분의 2에 해당한다고 한다.
[편찬/간행 경위]
일지를 지은 구연상(具然相)은 조선 시대 후기의 무신이며, 신미양요가 발발하였던 당시 무신 겸 선전관의 직임을 맡았던 구연상이 숙부인 인천도호부 도호부사 구완식(具完植)과의 인연으로, 지금의 인천광역시 미추홀구에 설치되었던 인천도호부에 머물면서 일지를 작성한 것이다. 편찬 시기 1871년 5월 23일 이후 어느 시기에 작성된 것으로 추정된다.
구완식은 1870년(고종 7) 시월 윤달 18일부터 1874년(고종 11) 정월 11일까지 인천도호부 도호부사를 지냈다.
[형태]
1책 146쪽의 필경 등사본으로 가로 18.7㎝, 세로 25.7㎝이다.
[구성/내용]
『소성진중일지』는 전반부의 일기와 후반부의 당시 인천도호부 관련 자료로 나누어 볼 수 있다.
전반부의 일기 자료는 1871년 4월 6일부터 같은 해 5월 23일까지 총 48일간 인천도호부 진중에서 있었던 일을 기록하고 있다. 진은 지금의 인천광역시 미추홀구 문학산에 설치되었다. 일기 부분은 신미양요 당시 미국 전함(戰艦)의 종적을 날짜별로 기록하고 있기는 하지만, 대부분은 숙부와 조카, 또는 숙부와 손님 간에 서로 주고받은 대화 내용으로 채워져 있다. 대화 내용도 당시 정황상 군제와 병법에 관한 것이 대부분이었다.
일기에는 4월 6일 풍도에 정박하여 인천을 거쳐 관성보를 함락하고 5월 16일 팔미도에서 먼 바다로 사라진 미국 전함의 종적과 미국 전함에 대응하기 위해 갖추었던 인천의 군기(軍器)와 군수(軍需), 그리고 46일간의 당시 인천의 날씨 정보를 기록하고 있다.
후반부에 수록된 내용들은 인천 별무청 기둥에 적힌 글을 옮겨 적은 「인천 별무청 주련(仁川別武聽柱聯)」, 인천부의 포계 서문과 절목을 적은 「소성부 포계서(邵城府砲稧序)」, 적이 물러난 후에 흥선 대원군에게 올린 편지인 「퇴적 후 상운궁서(退賊後上雲宮書)」, 선비 이도열(李度烈)이 지은 인천 수령의 행적 76구(句) 「소성 태수행 칠십육구 사인 이도열(邵城太守行七十六句士人李度烈)」, 인천 수령의 행적 55운(韻) 「소성 태수행 오십오운(邵城太守行五十五韻)」, 선비 정숙동이 지은 인천 수령의 행적 「소성 태수행 사인 정숙동(邵城太守行士人鄭肅東)」, 인천 수령의 행적을 적은 「소성 태수 행배율(邵城太守行排律)」, 선비 이우항이 지은 인천 찬가 「인천가 사인 이우항(仁川歌士人李遇恒)」, 선비 조제면이 지은 인천 수령의 비명 「인천 태수 비명 병인 사인 조제면(仁川太守碑銘幷引士人趙濟冕), 인천부의 사포계 절목 「인천부 사포계 절목(仁川府射砲稧節目)」 등이다.
[의의와 평가]
『소성진중일지』는 신미양요 당시 인천광역시 미추홀구를 비롯한 인천 지역의 상황을 알려 주는 매우 중요한 자료이다. 특히 무관의 견지에서 당시의 군제와 병법에 대한 내용을 기록하여 강화도 광성보를 점령하였던 미국 전함의 종적은 물론, 이에 대응하기 위해 갖추었던 인천의 군기와 군수 내역을 상세히 적고 있다. 아울러 당시 인천의 날씨를 빠짐없이 기록함으로써 초여름부터 한여름까지의 인천 날씨를 연구하는 데에도 도움을 주고 있다.
후반부에 기록된 인천 관련 기록은 인천 수령이었던 구완식의 행적을 기린 내용이 주가 되고 있으나, 「소성부 포계서」, 「퇴적 후 상운궁서」, 「인천부 사포계 절목」 등은 신미양요와 직접 관련된 내용들로서 자료적 가치가 매우 높다고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