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4700421 |
---|---|
한자 | 具然相 |
분야 |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문무 관인 |
지역 | 인천광역시 미추홀구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김상열 |
[정의]
1871년 인천광역시 미추홀구 소재 문학산 진중에 머물면서 『소성진중일지(邵城陣中日誌)』를 집필한 무관.
[가계]
본관은 능성(稜城)이다. 시조는 고려 때 벽상 삼한 삼중 대광 검교 상장군(壁上三韓三重大匡 檢校上將軍)을 지낸 구존유(具存裕)이며, 구존유의 23세손이다.
아버지는 구정식(具廷植), 할아버지는 구병희(具秉禧), 증조할아버지는 구관석(具觀錫)인데, 이들이 과거에 급제하거나 벼슬을 지냈다는 기록은 보이지 않지만, 그 선대로 올라가면 무관 급제자를 다수 배출한 가문의 후손이다.
[활동 사항]
구연상(具然相)[1832년~?]은 1832년 출생해, 1855년(을묘년) 음보(蔭譜)[조상의 덕으로 벼슬을 얻음]로 무과(武科)에 급제한 후 수문장 부사과(守門將 副司果)[1867], 부장(部將)[1869], 무신 겸 선전관(武臣 兼 宣傳官)[1870], 훈련원 주부(訓練院 主簿)[1872], 오위도총부 도사(五衛都摠府都事)[1873], 훈련원 검정·어영청 파총(訓練院 檢正·御營廳 把摠)[1874], 구성 부사(龜城 府使)[1875], 진주 영장(晉州營將)[1879], 초산 부사(楚山府使)[1880], 창성 부사(昌城府使)[1884], 황해 수사·친군 별영 별장 부호군(黃海水使․親軍別營別將副護軍)[1885], 선전관(宣傳官)[1887] 등의 무관 요직을 두루 역임하였다. 1887년(고종 24)에는 전라 병사(全羅兵使)에 제수되었으나, 지병으로 인해 사임하였고, 이후 사망한 것으로 보인다.
[학문과 저술]
구연상은 1871년 신미양요 발발 당시 숙부 구완식(具完植)이 부사로 있는 인천도호부의 진에 머물면서 1871년 음력 4월 6일부터 5월 23일까지의 인천 진중에 있었던 일을 기록한 『소성진중일지』를 편찬하였다.
[상훈과 추모]
구연상의 아들 구종서(具鍾書)가 1893년(고종 30)에 경상좌도 병마절도사(慶尙左道兵馬節度使)에 제수되었을 때, 구연상이 병조 참판(兵曹參判)에 추증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