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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4701678
한자 祭禮
분야 생활·민속/민속
유형 의례/평생 의례와 세시 풍속
지역 인천광역시 미추홀구
집필자 김덕묵

[정의]

인천광역시 미추홀구 지역에서 조상에게 제사를 지내는 의례(儀禮).

[개설]

『주자가례(朱子家禮)』에 의하면 제례는 사시제(四時祭), 시조제(始祖祭), 선조제(先祖祭), 예제(禰祭), 기일제(忌日祭), 묘제(墓祭)로 구분된다. 사시제는 4계절의 중월(仲月)[각 계절의 가운데, 음력 2월, 5월, 8월, 11월]에 4대 조상까지를 정침(正寢)[제사를 지내는 몸채의 방]에서, 기일제는 4대 조상까지를 기일에 정침에서, 녜제는 7월에 부모를 정침에서, 묘제는 5대 조상 이상을 3월에 묘에서 지낸다. 그 밖에 조상의 신주를 모시는 사당에는 매월 초하루와 보름에 배례하고 집안에 일이 있을 때에도 고유(告由)[중대한 일을 사당이나 신명에게 고함]하도록 되어 있다. 이러한 내용으로 보아 우선 제례를 지내는 날짜는 4계절과 동지 또는 초하루나 보름 등과 같이 천도의 운행에 맞춘 날과 함께 조상들이 이 세상을 떠난 날임을 알 수 있다.

오늘날 우리의 일상생활에서 볼 수 있는 제례는 『주자가례』에서 제시하는 것의 일부에 해당하는데, 기제, 차례, 시제 등 그 기능과 때에 따라서 다양한 종류로 나뉜다. 기제는 돌아가신 분의 기일에 지내는 제사이며 차례는 명절날 아침에 지내는 제사이다. 시제는 『주자가례』에서 제시하는 것과 같이 그대로 행해지는 것은 아니며 주로 10월에 산소에서 지내는 것이 일반적이다.

우리나라는 수백 년 동안 4대 봉사로 종손이 조상의 제사를 지내 왔다. 제례의 일반적인 절차는 영신(迎神), 강신(降神)[첫잔을 올리기 전에 신을 내리게 하기 위하여 향을 피우고 술을 따라 모사(茅沙) 위에 붓는 제사 절차], 참신(參神)[신주 앞에서 절하는 제사 절차], 초헌(初獻)[첫잔을 신위 앞에 올리는 절차], 독축(讀祝), 아헌(亞獻), 종헌(終獻), 첨작(添酌), 삽시(揷匙), 정저(正箸), 합문(閤門)[제사 참가자 일동이 방에서 나와 문을 닫는 절차], 계문(啓門)[문을 여는 절차], 헌다(獻茶), 철시(撤匙), 복반(復飯), 사신(辭神)[신을 보내는 절차], 철상(撤床), 음복(飮福)의 순으로 이어진다. 이러한 절차는 어느 집안이나 크게 다르지 않다. 인천광역시 역시 예외가 될 수 없다.

[변천]

우리나라의 경우 부여, 고구려, 백제, 신라 초기부터 국조에 제례가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러한 제례는 중국과 마찬가지로 초기 국가 성립 단계부터 나타나고 있다. 내용적으로 중국의 제도와 유사하다고 볼 수 있다. 3~4세기부터 도입된 유교 사상의 영향도 큰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오늘날과 같은 형태의 가정에서 지내는 제사는 『주자가례』가 도입된 이후에 점차 확산되었다고 볼 수 있다. 조선 시대에는 제례가 일반화되었으나 한국 사회가 도시화, 서구화되면서 오늘날 제례를 지내는 가정의 수는 점차 축소되고 있다.

[생활 민속적 관련 사항]

인천이 도시화되고 타지에서 많은 이주민들이 들어오는 한편, 토박이 주민들이 타지로 떠나서 과거와 같이 종친회가 활성화되고 있지 않고, 친족의 결속도 약화되고 있어서 제사도 대동적인 의미가 많이 퇴색되었다. 그러나 지금도 토박이 주민들은 여전히 제례를 이어가고 있다.

도시화, 전통적인 촌락의 소멸, 외지인의 유입, 토박이 주민의 이주, 향토를 기반으로 한 촌로들의 작고 등 제례를 받드는 친족 공동체의 파괴는 점차 종친회를 중심으로 한 대동적인 제례의 약화를 가져왔다. 특히 종친들이 모여 시제를 지내는 풍습들이 젊은 층들에게는 제대로 전승되지 않아 단절되는 곳도 있다. 기제사도 집안에 기독교인이 생기면서 지내지 않게 되는 경우도 있다. 인천광역시 미추홀구 문학동에서 태어나 지금까지 거주하는 이상분의 경우도 며느리가 기독교인이기 때문에 시어머니에게도 영향을 미쳐 시어머니도 교회를 나가게 되고 제사의 형태도 기일날 음식만 장만하여 기도를 한 후 식구들이 나누어 먹는 형태로 변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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