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타데이터
항목 ID GC08700339
한자 槽川里
영어공식명칭 Jocheon-ri
분야 지리/인문 지리
유형 지명/행정 지명과 마을
지역 경상남도 밀양시 청도면 조천리지도보기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김은숙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개설 시기/일시 1912년연표보기 - 경상남도 밀양군 청도면 조천리 개설
변천 시기/일시 1995년 1월 1일연표보기 - 경상남도 밀양군 청도면 조천리에서 경상남도 밀양시 청도면 조천리로 개편
성격 법정리
가구수 76가구
인구[남/여] 115명[남 48명|여 67명]

[정의]

경상남도 밀양시 청도면에 속하는 법정리.

[개설]

조천리(槽川里)밀양시 청도면 남서쪽에 자리하고 있다. 서쪽으로 창녕군 창녕읍, 동쪽으로 인산리무안면 양효리가 있다. 북쪽은 구기리와 접하고 있다, 남쪽은 무안면 화봉리와 경계를 이룬다.

[명칭 유래]

조천리는 1912년 행정구역 개편 당시 본동인 조천에서 따와 붙여진 지명이다. 조천은 무시덤에서 흘러내리는 하천에 소구유처럼 생긴 바위가 있다고 하여 소구유 조(槽)에 내 천(川) 자를 써서 붙여진 지명이다.

[형성 및 변천]

조천리는 본래 경북 청도군 외서면에 속하였는데, 1912년 행정구역 개편으로 조천과 무시덤, 음지호음동과 병합하여 경상남도 밀양군 청도면 조천리가 되었다. 1995년 1월 1일 밀양군과 밀양시 통합에 따라 경상남도 밀양시 청도면 조천리가 되었다.

자연 마을로는 서쪽의 조천지 위쪽 산곡 분지에 무시덤이 있고, 조천지 아래로는 조천리의 본동 조천마을, 북쪽의 구기리와의 경계부 개박달산 남쪽사면에 호음동이 있다. 음지호음동은 조천리에, 마주 보고 있는 양지호음동은 구기리에 속한다. 본동인 조천은 임진왜란 이후 청도김씨와 경주이씨 일파가 정착하여 마을을 형성하였다고 전한다.

[자연환경]

조천리는 북쪽과 동쪽, 남쪽 모두 높은 산지로 둘러싸여 있는 산간에 자리하고 있으며, 구기리와 접한 북동쪽 끝단부만이 평지로 이어진다. 조천리의 북쪽은 천왕산에서부터 이어진 산줄기가 열왕산[663.2m]을 지나 개박달산으로 이어지며 높은 산지를 이루고, 남쪽으로는 서쪽 화왕산에서 뻗어 내린 산줄기가 남서쪽 의봉산[372m]으로 이어지며 동쪽에서 남쪽까지 감싸면서 무안면과 경계를 이룬다.

하천은 서쪽 산지에서 발원하여 남쪽과 북쪽 산지 사이를 U자형으로 휘어서 북동쪽으로 흐르며 두곡천에 합류한다. 소하천변을 따라 형성된 곡저 평야는 조천리의 중앙에 좁고 긴 평야를 형성함으로써 농경지로 이용되고 있다.

[현황]

2021년 12월 현재 76세대, 115명[남자 48명, 여자 67명]의 주민이 살고 있으며, 청도면에서 가장 인구가 작은 리이다. 조천리의 하천변 좁은 평지에는 시설농업과 벼농사가 이루어지고 있으며, 특산물은 풋고추이다.

조천마을은 김선명(金善鳴)의 오남재(鰲南齋)와 이홍인(李弘仁)의 소호재(遡湖齋)가 보존되어 있으며, 조천마을로 들어오는 길목에 억만사지가 있다. 『밀주징신록(密州徵信錄)』에는 “억만암(億萬庵)은 조천리에 있다.”라는 기록이 있으며, 억만사지 일대에서 신라 말 고려 초의 것으로 추정되는 석불좌상(石佛坐像) 3구, 주형광배(舟形光背) 1점, 석탑(石塔) 옥개석(屋蓋石) 2점, 부도대석(浮屠臺石) 2점이 발굴되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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