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200119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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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金克忸 |
영어음역 | Gim Geuknyu |
이칭/별칭 | 의백(義伯),광원군(光原君) |
분야 |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문무 관인 |
지역 | 충청남도 논산시 |
시대 | 조선/조선 전기 |
집필자 | 고수연 |
[정의]
조선 전기 논산 출신의 문신.
[가계]
본관은 광산(光山). 자는 의백(義伯). 할아버지는 김철산(金鐵山)이며, 아버지는 광산부원군(光山府院君) 김국광(金國光)이다. 어머니는 전첨(典籤) 황보신(黃保身)의 딸로서 장수황씨(長水黃氏)이며, 처는 함양박씨(咸陽朴氏)이다.
[활동사항]
김극뉴는 처음 음사로 청진전직이 되었다가 찰방이 되었고 1468년(세조 14) 춘장방 문과에 병과 23인으로 급제하여 종부시정이 되었다. 그 후 의빈부경력이 되어 광릉군 이극배의 종사관으로 승진되어 남방의 기근을 구제하는 데 매우 공평하고 안정되게 하였다. 그 공로로 절충장군에 승진되어 오랫동안 판결사로 있다가 병조참의, 예조참의, 형조참의, 공조참의를 거쳤고 서추(西樞, 무반)도 겸했다가 사간원대사간에 이르렀다. 덕종 추종시 대사간으로서 헌납 김일손 등과 함께 비례라고 역쟁하였으며, 연산군 때 김일손 등과 소릉(昭陵, 문종왕비 권씨(權氏)의 묘) 복위를 주장하였다.
[묘소]
묘소는 처가가 있는 전라북도 순창군 인계면 마흘리에 있다.
[상훈과 추모]
재직 중 순직하자 세조가 사재(私財)와 부의(賻儀)를 내렸다. 사후에 예조참판겸홍문관제학동지성균관사광원군(禮曹參判兼弘文館提學同知成均館事光原君)에 추증되었다. 전라북도 순창군 임계면 마흘리에 있는 김극뉴를 모신 재실인 영사재(永思齋)에서 매년 음력 10월 7일에 제사를 올린다. 또 논산시 연산면 고정리에 김극뉴의 처 의령남씨를 제향한 영사재(永思齋)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