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200131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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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尹舜擧 |
영어음역 | Yun Sungeo |
이칭/별칭 | 노직(魯直),동토(童土) |
분야 |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문무 관인 |
지역 | 충청남도 논산시 노성면 병사리 |
시대 | 조선/조선 |
집필자 | 이연숙 |
성격 | 문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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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신지 | 충청남도 논산시 노성면 병사리 |
성별 | 남 |
생년 | 1596년 |
몰년 | 1668년 |
본관 | 파평 |
대표관직 | 군자감정 |
[정의]
조선 중기 논산 출신의 문신이자 학자.
[가계]
본관은 파평(坡平). 자는 노직(魯直), 호는 동토(童土). 아버지는 대사간 윤황(尹煌)이며, 어머니는 창녕성씨로 당대의 명유인 성혼(成渾)의 딸이다. 큰아버지 윤수(尹燧)에게 입양되었다.
[활동사항]
1633년(인조 11) 사마시에 합격하여 내시교관(內侍敎官)에 임명되었으나 나아가지 않았다. 1636년 병자호란 때에 아버지 윤황이 척화 죄로 귀양 가고, 작은아버지 윤전(尹烇)이 강화도에서 순절하자 고향에서 학문에 전념하였다. 이 기간 고향인 노성면 병사리에 거주하면서 보인당을 중건하고 노서당을 세워 여러 선비들과 강학하며 향음주례를 행하여 고을 강학 분위기를 일신하였다. 또한 종손으로서 종사에 관심을 기울여 조상을 받들고 자제를 교육시키는 종약을 제정하고 종학의 기틀을 마련하였다.
1645년(인조 23)에는 대군사부(大君師傅)가 되어 벼슬길에 올랐고, 이어 상의원주부·형조좌랑·안음현감·의령현감 등을 지냈다. 의령현감으로 재직할 때 이황(李滉)과 남효온(南孝溫)의 사우를 건립하였으며, 1655년(효종 6) 종부시주부·공조정랑을 거쳐 금구현령으로 나아갔다. 1660년(현종 1) 영월군수가 되어 『노릉지(魯陵誌)』를 편찬하고 단종의 사묘인 지덕암(旨德庵)을 중건하였다. 1665년 사헌부장령에 제수되었으나 오르지 않았다. 그 뒤 사직서령·세자익위사익위·군자감정·예빈시정·상의원정 등을 지냈다.
[학문과 사상]
외삼촌인 성문준(成文濬)에게서 학문을, 강항(姜沆)에게서 시를, 김장생(金長生)에게서 예를 배웠고, 아버지 윤황과 작은아버지 윤전으로부터 척화 사상을 이어받았다. 스승 강항을 위하여 「강감회요서(綱鑑會要序)」·「수은강공행장(睡隱姜公行狀)」을 저술하고, 강항이 포로 생활을 하면서 견문을 기록한 『간양록(看羊錄)』 등을 편찬하여 존왕양이(尊王壤夷)의 정신을 고취하였다.
1660년 영월군수로 재직하면서 단종과 관련된 모든 기록을 수집하여 『노릉지』를 편찬함으로써 조선의 유교적 사회 질서인 군신 관계를 전제로 불사이군(不事二君)의 정신을 기리고자 하였다. 또한 그는 문장과 글씨에 뛰어난 학자로서 이이(李珥)의 『증손여씨향약(增損呂氏鄕約)』의 영향을 받아 노성향약을 실시한 것으로 보인다.
[저술 및 작품]
저서로 『동토집(童土集)』·『노릉지』가 있다. 철원에 ‘심원사취운당대사비(深源寺翠雲堂大師碑)’의 글씨가 전한다.
[묘소]
묘소는 논산시 노성면 병사리 파평윤씨 선산에 있다.
[상훈과 추모]
연산의 구산서원(龜山書院), 영광의 용계사(龍溪祠), 금구의 구성서원(九成書院)에 배향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