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2002122 |
---|---|
한자 | 四萬- |
분야 | 구비 전승·언어·문학/구비 전승 |
유형 | 작품/설화 |
지역 | 충청남도 논산시 성동면 원북리 |
집필자 | 박종익 |
성격 | 전설|지명유래담|전쟁피해담 |
---|---|
주요 등장인물 | 마을 사람|오랑캐|구렁이 |
관련지명 | 사만 구렁이 |
모티프 유형 | 마을 사람들의 죽음|마을 사람들의 환생 |
[정의]
충청남도 논산시 성동면 원북리에서 구렁이와 관련하여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
[채록/수집상황]
1981년에 논산문화원에서 출간한 『놀뫼의 전설』에 수록되어 있다.
[내용]
오랜 옛날 북쪽의 오랑캐가 쳐들어왔다. 오랑캐는 물건을 약탈하고 사람들을 죽여 그 악명이 전국에 퍼졌다. 원북리 마을 사람들도 모두 피란을 갔다. 피란처는 인근 산에 있는 굴속이었다. 마을 사람들이 피신한 이튿날 오랑캐 무리가 마을로 쳐들어왔다. 그들은 집집마다 들쑤시며 약탈하거나 방화하였다. 그런데 마을에 먹을 것과 부녀자가 없는 것을 알고 이를 찾으려 안달하였다. 사람들은 오랑캐가 먹을 것이 없으면 떠날 줄 알았으나 그들은 오히려 진을 치고 마을 사람들을 찾으러 다녔다. 때문에 마을 사람들은 굴속에서 오랑캐가 물러나기를 하염없이 기다려야 했다.
시간이 흐르면서 굴속의 사람들은 먹을 것이 떨어져 굶주림에 시달려야 했다. 이제는 꼼짝없이 오랑캐한테 잡혀 죽거나 아니면 굶어 죽는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며칠이 흘러갔다. 오랑캐 하나가 굴이 있는 주변을 살피다가 망을 보던 아낙네를 발견하였다. 오랑캐는 즉시 동료들을 이끌고 굴속으로 들이닥쳤다. 굴속은 짧은 순간에 아수라장으로 바뀌었고 피비린내가 진동하였다. 오랑캐들은 굶주린 이리떼처럼 굴속으로 들어가 부녀자들만 남겨 놓고 사람들을 마구 죽였다. 그들은 부녀자들을 끌고 나온 뒤 굴을 무너뜨렸다. 피난 왔던 마을 사람들 중 부녀자들을 제외하고는 단 한 명도 살아남지 못하였다.
그 후 굴속에서 죽은 사람들은 모두 구렁이로 변했다고 하는데 그 수가 4만 마리에 이른다고 한다. 이들 구렁이들은 밖으로 나와서 모두 뿔뿔이 흩어져 갔다. 그 후부터 이 굴을 구렁이라 부르게 되었고, 주위에 많은 구렁이가 서식하고 있다고 한다. 또 부여군과의 경계에 있는 원북리의 이 굴에서 4만 마리의 구렁이가 나왔다 하여 지금도 이 굴을 사만 구렁이라고 부른다.
[모티프 분석]
「사만 구렁이」의 주요 모티프는 ‘마을 사람들의 죽음’과 ‘마을 사람들의 환생’이다. 난리를 피해 동굴 속으로 피란 간 마을 사람들이 오랑캐한테 죽임을 당하였는데 4만 구렁이로 환생하여 그 굴을 ‘사만 구렁이’라 부른다는 지명유래담이자 전쟁피해담이다. 전란으로 인해 억울하게 죽은 사람들의 영혼이 구렁이로 변하였다는 ‘환생’을 모티프로 다루고 있다. 하지만 환생한 존재의 활동에 대한 내용이 보이지 않아 모티프 자체의 기능이 단순히 지명유래를 설명하는 데 머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