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670082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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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天恩寺 |
영어공식명칭 | Cheoneunsa Temple |
분야 | 종교/불교 |
유형 | 기관 단체/사찰 |
지역 | 강원도 삼척시 미로면 동안로 816[내미로리 785] |
시대 | 고대/남북국 시대 |
집필자 | 심일종 |
[정의]
강원도 삼척시 미로면 내미로리에 있는 대한불교조계종 제4교구 본사 월정사 소속 사찰.
[건립 경위 및 변천]
천은사(天恩寺)는 758년(신라 경덕왕 17) 인도에서 온 3명의 승려인 두타삼선(頭陀三仙)이 창건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들은 두타산의 네 모퉁이에 절을 지었다. 동쪽은 청련(淸蓮)을 가지고 와서 지상사(池上寺)를 짓고, 남쪽은 금련(金蓮)을 가지고 와서 영은사(靈隱寺)를 짓고, 북쪽은 흑련(黑蓮)을 가지고 와서 삼화사(三和寺)를 짓고, 서쪽은 백련(白蓮)을 가지고 와서 천은사를 지었다고 한다. 천은사는 839년(문성왕 1) 범일(梵日)이 극락보전을 창건하면서 중창되었다. 1304년(충렬왕 30)에는 이승휴(李承休)[1224~1300]가 자신의 별장을 절에 시주하여 간장암(看藏庵)을 세웠고, 1322년(충숙왕 9)에는 이승휴의 맏아들 이임종(李林宗)과 승려인 차남 담욱(曇昱)이 중수하였다.
1598년(조선 선조 31)에 청허대사(淸虛大師)가 이 절을 중수하면서 절의 남서쪽에 있는 봉우리가 검푸르다고 하여 절 이름을 흑악사(黑岳寺)로 바꾸었다. 1706년(숙종 32)에 화재가 발생하여 그 이듬해 중건되었으며, 1831년(순조 31)과 1837년(헌종 3) 두 차례에 걸쳐 중수되었다. 1899년(광무 3)에는 태조의 4대조인 목조(穆祖)의 능을 만들어서 흑악사를 원당사찰로 삼았으며, 이중하(李重夏)[1846~1917]가 절 이름을 현재의 천은사로 바꾸었다. 1950년 6·25 전쟁으로 소실되었다가 1976년 일봉(一峰)이 주지로 부임한 후 중창하여 오늘에 이른다.
[관련설화]
천은사는 세 차례나 다래 덤불 속에 들어갔고, 세 차례나 화재를 겪었으며, 세 차례 중건되었다. 이와 관련해 세 가지 전해 오는 이야기가 있다. 첫째 포수가 사슴을 따라 숲속으로 들어갔는데 산척을 이곳에서 얻어 절을 짓고 산척과 총을 극락전 대들보 위에 전해 왔으나 없어졌다는 이야기. 둘째 이승휴가 간장암을 지은 것에 대한 이야기. 셋째 황색 비단 가사 한 벌이 있었는데 서너 명이 덮을 만한 가사로, 나옹조사의 것이라 하여 전해 오던 것이 없어졌다는 이야기이다.
[현황(조직,시설 현황 포함)]
전각으로는 극락전[극락보전], 육화전, 영월루, 삼성각, 요사 등이 있다. 극락전은 정면 3칸, 측면 2칸의 팔작지붕 건물로 이루어져 있다. 내부에 아미타불좌상, 관세음보살상, 지장보살상을 봉안하였다. 모두 조선 중기 이전에 조성된 것으로 추정된다. 1976년 개금할 때 아미타불의 복장에서 『묘법연화경』이 발견되었다. 또 7㎝ 크기의 금동약사여래입상이 전해진다. 이것은 고려 후기에 제작된 것으로 추정된다. 절 입구에 있는 천은사기실비(天恩寺記實碑)는 1921년 한영(漢永)[1870~1948]이 글을 짓고 심지황(沈之潢)[1888~1964]이 글씨를 써서 세운 비석으로, 천은사의 연혁을 담고 있다.
[관련 문화재]
천은사 목조아미타삼존불좌상은 아미타·관음·지장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17세기 조선시대 불상의 특징을 잘 나타내 주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에 따라 강원도유형문화재 제147호로 지정되었다. 또 강원도유형문화재 제148호로 지정된 금동약사여래입상이 있다. 금동약사여래입상은 통일신라시대의 소금동불입상 양식 특징을 갖추고 있고 보존 상태가 양호하여 문화재 가치를 인정받은 바 있다. 금동약사여래입상은 현재 안전한 보관을 위하여 월정사 성보박물관에 보관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