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520071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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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長春里烽燧址 |
분야 | 역사/전통 시대,문화유산/유형 유산 |
유형 | 유적/터 |
지역 | 경상북도 의성군 비안면 장춘리 산92 |
시대 | 조선/조선 |
집필자 | 신종환 |
관련사항 시기/일시 | 2004년 - 장춘리 봉수터 대구 대학교 중앙 박물관에서 『문화 유적 분포 지도』 작성시 지표 조사 실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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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재지 | 장춘리 봉수터 - 경상북도 의성군 비안면 장춘리 산92 일원 |
성격 | 봉수|봉수터 |
소유자 | 사유지 |
[정의]
경상북도 의성군 비안면 장춘리에 있는 조선 시대 봉수 유적.
[개설]
장춘리 봉수터 유적은 경상북도 의성군 비안면 장춘1리 높이 231m의 봉우재 정상에 위치한다. 둘레가 30m 정도 되는 둥근 타원형의 석축 연대(煙臺)가 남아 있으나 형태가 완전하지 않다. 유적 일대는 대구광역시 군위군 소보면 복성리와 경계를 이루는 지역이며 구체적인 봉화의 연결통로는 알 수 없으나, 동쪽으로 약 3㎞ 거리에 도암리 간점산 봉수터 유적이 있어 이와 관련성이 있을 것으로 추정된다. 봉수터 유적에서 북동쪽으로 약 300m 정도 내려온 곳에 장춘리 성재암(聖在巖) 각석(刻石) 유적이 있다.
[변천]
장춘리 봉수터 유적에 대한 변천 과정은 현재로서는 자세히 파악하기 어렵다. 조선 시대 봉수 체계인 직봉(直烽)과 간봉(間烽)의 노선에도 포함되지 않으며, 문헌 기록에도 관련 자료를 찾을 수 없다.
[위치]
장춘리 봉수터 유적은 경상북도 의성군 비안면 장춘리 산92·산158·산63 일원에 위치하며, 위천(渭川)이 크게 휘감아 도는 지역이다. 도암리 간점산 봉수터 유적과 마찬가지로 의성군 소보면과 경계를 이루는 지역에 위치하며 동쪽으로 약 3㎞ 지점에 도암리 간점산 봉수터 유적이 바라보인다. 유적을 둘러싸고 있는 위천의 하안(河岸)은 가파른 단애 지형이 많고 숲이 우거져 있어 유적으로 접근하기가 쉽지 않다. 따라서 장춘리에서 위천의 하안을 따라 거슬러 올라가다가 단애로 인해 길이 끝나는 지점의 ‘항골’을 통해 접근할 수 있다. 그리고 인접한 대구광역시 군위군 소보면 내의리 장현 마을에서 오르거나, 소보면 복성리의 ‘외재골’을 통해서도 접근이 가능하다. 봉수터 유적에서는 북쪽으로 위천 건너편에 있는 비안면 서부리 박연 마을이 내려다보인다.
[발굴 조사 경위 및 결과]
장춘리 봉수터 유적에 대한 조사는 2004년 대구 대학교 중앙 박물관에서 『의성군 문화 유적 분포 지도』 작성을 위한 지표 조사가 있었으나 지금까지 발굴 조사는 없었다.
[현황]
장춘리 봉수터 유적은 둘레 30m 정도의 둥근 타원형인 석축 연대 시설이 일부 남아 있다. 그러나 잔존 상태가 그다지 양호하지 못하며 연대의 중앙부에 높이 1.5m 정도의 석축 구조물이 있다. 연대의 북쪽은 임도를 개설하는 과정에서 파괴되었고, 남쪽은 급경사를 이루는 자연 지형의 암반을 그대로 이용하여 연대를 축조하였다. 현재 주변이 모두 삼림으로 우거져 있어 봉수터의 형태를 쉽게 파악하기 어렵다.
[의의와 평가]
장춘리 봉수터 유적은 조선 시대 봉수 체계나 문헌 기록에서는 확인되지 않아 그 기능에 대해 자세히 알 수 없다. 다만 입지 상으로 볼 때 군위군과 경계를 이루는 지역에 위치하고 있고 동쪽 3㎞ 거리에 위치한 도암리 간점산 봉수(肝岾山烽燧)가 있어 이와 관련하여 운영되었을 가능성이 크다. 도암리 간점산 봉수터 유적에 대한 기사는 1425년에 간행된 『경상도지리지』와 1454년의 『세종실록지리지』, 1530년의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 비안현조에 나타나고 있는데, 간봉으로 안계면 봉양리 대암산 봉수(大岩山 烽燧)로 연결된다. 따라서 장춘리 봉수터 유적은 도암리 간점산 봉수의 보조 기능을 했을 가능성이 크다고 여겨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