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520071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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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鳳陽里大岩山烽燧址 |
분야 | 역사/전통 시대,문화유산/유형 유산 |
유형 | 유적/터 |
지역 | 경상북도 의성군 안계면 봉양리 산77 |
시대 | 조선/조선 |
집필자 | 신종환 |
발굴 조사 시기/일시 | 1987년 - 봉양리 대암산 봉수터 대구 대학교 중앙 박물관에서 지표 조사 실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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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사항 시기/일시 | 2004년 - 봉양리 대암산 봉수터 대구 대학교 중앙 박물관에서 『문화 유적 분포 지도』 작성시 지표 조사 실시 |
소재지 | 봉양리 대암산 봉수터 - 경상북도 의성군 안계면 봉양리 산77 일원 |
성격 | 산성내 봉수|봉수터 |
[정의]
경상북도 의성군 안계면 봉양리에 있는 조선 시대 봉수 유적.
[개설]
봉양리 대암산 봉수터 유적은 경상북도 의성군 안계면 봉양리 산77번지 일원에 위치하며 봉양리 산성터 유적에 포함된 높이 221.8m의 산봉우리에 해당한다. 지역 주민들은 이곳을 봉성산 혹은 봉화산이라고도 부르며, 봉양리 산성터를 동서로 관통하는 고갯길을 봉우재 또는 봉화재라 부른다. 『경상도지리지』를 비롯한 조선 시대 여러 문헌 기록을 참고하면, 남쪽의 간점산 봉화를 받아 북쪽의 소이산 봉화로 전하는 간봉(間烽) 노선이었으며 임진왜란 이후 어느 시기에 폐지된 것으로 보인다. 현재 연대(烟臺)가 일부 잔존하며 그 중앙에는 높이 1m 정도의 석축 구조가 남아 있다.
[변천]
봉양리 대암산 봉수터 유적의 시작과 변천 과정에 대해서는 자세히 알 수 없다. 1425년에 간행된 『경상도지리지』의 안정현조에 “대암산 봉화는 현의 서쪽 5리에 있는데, 남쪽으로 30리 270보 떨어진 비옥현 땅의 간점산 봉화를 바라보고 서쪽으로 30리 180보 떨어진 예천군에 속한 다인현 땅의 소이산 봉화를 바라본다[大岩山烽火 在縣西五里許 南望比屋縣地 肝岾山烽火 相距十三里 二百七十步 西望醴泉郡任內 多仁縣地 所伊山烽火 相距三十里一百八十步].” 라고 하였다.
1454년의 『세종실록지리지』의 비안현조에는 “봉화가 두 곳에 있는데, 비옥현 내에 있는 간점산 봉화는 남쪽으로 군위현의 마정산 봉화를 겨누고, 북쪽으로 안정현의 대암산 봉화를 겨눈다. 대암산 봉화는 서쪽의 다인현 소이산 봉화를 겨눈다[烽火二處 肝岾山 在比屋縣內 南准軍威馬井山 北准安貞大岩 大岩西准 多仁所伊山].” 라고 하였다.
이어서 1530년에 간행된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의 비안현조에는 “대암산 봉수는 남쪽으로 간점산 봉수에 응하고 북쪽으로 예천군 소이산 봉수에 응한다[大岩山烽燧 南應肝岾山 北應醴泉郡所伊山].” 라는 내용이 있다. 하지만 1765년 간행된 『여지도서(輿地圖書)』에서는 대암산 봉수가 폐지된 것으로 나타나고 있어, 늦어도 18세기 중엽 이전에 그 기능을 상실했음을 알 수 있다. 따라서 1832년경 편찬된 『경상도읍지』의 비안현조에는 성지(城池)도 없고 봉수(烽燧)도 없다고 하였다.
[위치]
봉양리 대암산 봉수터 유적은 경상북도 의성군 안계면 봉양리 산77·산81·산86-1·산86-4·산128-7 일원에 위치한다. 안계 평야에 농업용수를 공급하는 개천 저수지의 동쪽에 위치한 대암산 정상부에 해당하며, 봉양리 산성터 유적 내에 봉양리 대암산 봉수터 유적이 있다. 유적으로 오르는 길은 예로부터 서쪽의 하고개 마을에서 동쪽으로 난 골짜기를 따라가면 된다. 이 길은 봉양리에서 안정리로 넘어가는 고갯길로서 지금도 오솔길이 있다. 그리고 산성의 서남쪽에 위치한 봉양 1리 석정 마을에서도 올라갈 수 있다.
한편 봉양리 대암산 봉수터의 위치에 대해, 『문화 유적 분포 지도』[대구 대학교 중앙 박물관, 2005]에서는 봉양리 산성터 남단부에 있는 두 개의 봉우리 중 동쪽에 있는 것으로 표기하였으나 이는 잘못으로 판단된다. 선행 조사 보고서인 『의성의 봉수대』[의성 문화원, 1999] 및 『의성군 문화 유적 지표 조사 보고』[대구 대학교 박물관, 1987]를 참고해 볼 때, 서쪽의 봉우리가 타당하다. 다만 1987년 대구 대학교 박물관의 지표 조사 당시에는 이를 봉수터로 인식하지 못하고 각루(角樓)로 추정했던 것 같다. 따라서 봉양리 산성터 유적의 남단에 있는 동쪽과 서쪽에 두 개의 봉우리 가운데 동쪽의 최고봉에서 서쪽으로 200m 정도 거리에 있는 높이 221.8m의 서쪽 봉우리에 봉양리 대암산 봉수터 유적이 있다.
[발굴 조사 경위 및 결과]
1987년 5월~11월까지 대구 대학교 박물관에 의한 지표 조사가 있었고, 2004년 대구 대학교 박물관에서 『의성군 문화 유적 분포 지도』 작성을 위한 지표 조사가 이루어졌다. 1998년 4월~5월 사이에는 의성 문화원 향토사 연구소에서 의성 관내 봉수 유적에 대한 문헌 조사와 지표 조사가 있었으나, 지금까지 발굴 조사는 없었다.
[현황]
봉양리 대암산 봉수터 유적이 위치한 일대는 안계 평야의 동쪽에 위치한 낮은 산지로서, 군데군데 민묘가 조성되어 있고 대부분 수목이 우거져 있는 상태이다. 봉수터의 남쪽에서 서쪽으로 돌아 북쪽까지는 경사가 급한 지형이만 동쪽은 능선으로 연결되는 완만한 지형이다. 현재 연대로 추정되는 곳은 북쪽이 둥글고, 남쪽과 동쪽은 방형인데 가운데 부분에 높이 1m 정도의 석축 구조물이 있다. 연대 추정지의 남쪽으로 폭 1~2m 정도의 평지가 조성되어 있으며 둘레 200m 정도의 석축이 1m 정도의 높이로 남아 있다.
[의의와 평가]
봉양리 대암산 봉수터 유적은 남쪽의 간점산 봉화를 받아 북쪽의 소이산 봉화로 전하는 간봉 노선이었다. 『경상도지리지』와 『세종실록지리지』, 『신증동국여지승람』에 이르기까지 관련기사가 꾸준히 기록되는 것으로 보아 조선 시대 전기까지는 매우 중요한 기능을 했던 것으로 평가된다. 하지만 1765년에 간행된 『여지도서』의 기록을 통해 늦어도 18세기 중엽 이전에 폐쇄되었던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