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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4300444
한자 縣內面
분야 역사/전통 시대
유형 제도/법령과 제도,지명/고지명
지역 경기도 양주시 은현면
시대 조선/조선 후기,근대/근대
집필자 정학수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폐지 시기/일시 1914년연표보기 - 양주군 묵은면과 양주군 현내면이 합하여 양주군 은현면 개설, 현내면 폐지
비정 지역 현내면 - 경기도 양주시 은현면
성격 고지명
관련 문헌 『여지도서』|『호구총수』|『구한국지방행정구역명칭일람』

[정의]

조선 시대 경기도 양주목에 설치되었던 행정 구역.

[개설]

현내면(縣內面)의 명칭 유래에 대해서는 알려지지 않았으며, 고구려·백제에서 내을매(內乙買) 혹은 내이미(內爾米)라고 부르던 지역이다. 내을매현 혹은 내이미라는 땅 이름은 이미 『삼국사기(三國史記)』에 나타나고 있다. 그러나 이후 신라가 이곳을 점령하면서 경덕왕 때에 이르러 사천현(沙川縣)이라는 이름을 사용하였다. 마을 가운데를 흐르는 사천(沙川)이란 하천에서 비롯된 이름이다. 사천현이란 이름 역시 『삼국사기』에서부터 확인된다. 고려 시대에도 사천현은 한강을 끼고 있던 양주나 견주(見州) 지역과는 별개의 행정 구역 체계를 이루고 있었다. 그러다가 1018년(현종 9) 양주에 완전히 편입되었다. 조선 시대에 들어서는 흔히 사천폐현(沙川廢縣) 혹은 고사천현(古沙川縣)이라고 불렀고, 행정 구역 상으로는 진답면현내면으로 편성되었다. 현내면은 옛 사천현 지역이라는 뜻에서 붙여진 이름이다.

[형성 및 변천]

현내면이 정확하게 언제 만들어졌는지는 모르나 조선 후기 각 군현의 면리제(面里制)가 정착되면서 양주목에도 면이 만들어지게 된 것으로 추정된다. 현내면이라는 이름이 최초로 등장하는 기록은 18세기 중엽에 편찬된 『여지도서(輿地圖書)』부터이다. 이후 각종 지리지와 『호구총수(戶口總數)』에 계속해서 등장하다가, 1914년 일제의 행정 구역 개편에 따라 묵은면현내면을 합하여 은현면이 되었다. 2003년 10월 19일 양주군이 양주시로 승격되면서 양주시 은현면이 되어 현재에 이르고 있다.

[위치 비정/행정 구역상의 구분]

현내면양주목의 북부에 있었던 면이다. 1789년 편찬된 『호구총수』에 기록된 현내면의 면리에 따르면, 현내면에는 일패리·이패리·삼패리 등이 있다고 기록되어 있어 군사 시설로 편제되어 있음을 알 수 있고, 이곳에 후에 은현면에 편제되는 것으로 보아 지금의 양주시 은현면이었음을 알 수 있다. 당시 호수는 255호에 인구는 2,012명[남자 1,107명, 여자 905명]이었다.

[관련 기록]

현내면에 관한 내용은 『여지도서』, 『호구총수』[1789], 『구한국지방행정구역명칭일람』[1914] 등에 기록되어 있다.

[참고문헌]
이용자 의견
박** 현내면 남당리에 대하여 조금더 자세히 알고싶읍니다
  • 답변
  • 디지털양주문화대전을 이용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문의주신 내용과 관련한 자세한 내용은 <양주군지>,<양주 땅이름의 역사>를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2016.07.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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