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140002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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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梁山通度寺國長生石標 |
영어의미역 | Old Stone Boundary Marker of Tongdosa Temple |
분야 | 종교/불교,문화유산/유형 유산 |
유형 | 유물/유물(일반) |
지역 | 경상남도 양산시 하북면 백록리 718-1 |
시대 | 고려/고려 전기 |
집필자 | 채상식 |
문화재 지정 일시 | 1963년 1월 21일 - 양산 통도사 국장생 석표 보물 제74호 지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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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재 지정 일시 | 2021년 11월 19일 - 양산 통도사 국장생 석표 보물 재지정 |
성격 | 석장승 |
제작시기/일시 | 1085년 |
제작지역 | 경상남도 양산시 |
재질 | 화강암 |
높이 | 162㎝ |
너비 | 57㎝ |
소장처 | 통도사 |
소장처 주소 | 경상남도 양산시 하북면 백록리 718-1 |
소유자 | 대한민국 |
문화재 지정 번호 | 보물 |
[정의]
경상남도 양산시 하북면 백록리에 있는 석장승.
[개설]
장승은 고려시대까지 흔히 ‘장생(長生)’으로 표기하였고, 조선시대에 오면서 ‘장주(長柱)’로 표기하였는데 대개 마을 입구에서 방액(防厄), 이정표(里程標), 경계표(境界標) 구실을 하였다. 특히 통도사와 같은 사찰의 장생은 경계 표시의 기능이 가장 강한 것으로 보인다.
고려시대에 국가에서 사찰에 급여하는 사원전의 규모가 크기 때문에 사찰 영토와 일반 촌락들을 구분하는 경계 표시를 위해 이와 같은 장생들을 세웠을 것이다. 그밖에 사찰의 경내에서 사냥이나, 살생, 시목(柴木)을 해가는 일들을 금지하였을 것이다. 따라서 이 석표는 경계 표시뿐만 아니라 사찰 경내가 신성 구역이라는 것을 표시하는 구실도 하였으리라 보인다.
더욱이 ‘사지사방산천비보(寺之四方山川裨補)’의 ‘산천비보’라는 의미를 음미하면 경계표의 기능 외에 방액(防厄)의 기능도 가지고 있었던 듯하다. 이는 석재에 가람선신(伽藍善神)이니 천하대장군이니 해서 무서운 얼굴을 새기게 된 것과도 관련이 있을 것으로 보인다. 1963년 1월 21일 보물 제74호로 지정되었고, 2021년 11월 19일 문화재청 고시에 의해 문화재 지정번호가 폐지되어 보물로 재지정되었다.
[형태]
양산 통도사 국장생 석표는 통도사의 경계를 나타내는 것으로 통도사 입구에서 동남쪽으로 약 4.4㎞ 정도 떨어져 있으며, 높이 162㎝, 폭 57㎝, 두께 24㎝의 화강암으로 만들어졌다. 이 석표는 이두문이 섞여 있는 금석문으로 국가와 사찰의 관계를 알려주는 중요한 자료이다. 이 석표의 전면에는 이두문으로 자경(字徑) 6~10㎝의 해서(楷書)로서 4행의 글이 새겨져 있다.
[특징]
양산 통도사 국장생 석표는 1085년에 건립된 것으로 그 내용을 번역하면 ‘통도사의 손잉천(孫仍川) 국장생 자리는 절에서 보고한 바에 따라 상서호부(尙書戶部)가 을축(乙丑) 오월일(五月日)에 통첩하기를 전의 보고서에 대한 판문(判文)과 같이 개립(改立)하도록 말해왔기에 이에 의하여 세운다’ 라는 뜻이다. ‘국장생’이라는 명칭은 국명(國命)에 의하여 세운 장생이라는 의미이다.
그리고 또 하나 주목되는 사실은 양산 통도사 국장생 석표가 ‘전의 보고서에 대한 판문(判文)과 같이 다시 세우도록 말해왔기에 이에 의하여 세운’ 것이라며 고려 선종 이전에도 유사한 형태가 세워졌을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 그 시기는 확실하게 알 수 없으나, 통도사 창건(646년) 이후 국가에서 적극 배려할 정도로 통도사의 사격(寺格)이 컸음을 알 수 있다.
이는 국장생과 같은 해에 만든 통도사 경내의 배례석을 통해서도 짐작된다. 또한 이는 통도사에 안치한 불사리 신앙과도 관련이 있다. 현재까지 석표로는 통도사 국장생석표와 이곳에서 북쪽으로 10리 가량 떨어진 울산광역시 울주군 삼남면 상천리와 경상남도 밀양시 무안면에 있는 것 등 3기가 알려졌으나, 현재 통도사와 상천리에 소재하는 것만이 남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