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090113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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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內四面示威運動 |
영어음역 | Naesa-myeon Siwi Undong |
영어의미역 | Independence Movement in Naesa-myeon |
분야 | 역사/근현대 |
유형 | 사건/사건·사고와 사회 운동 |
지역 | 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
시대 | 근대/근대 |
집필자 | 박수현 |
성격 | 사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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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생(시작)연도/일시 | 1919년 3월 28일 |
종결연도/일시 | 1919년 4월 2일 |
발생(시작)장소 | 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
관련인물/단체 | 한영규(韓榮圭)|김운식(金云植) |
[정의]
1919년 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양지면(구 내사면)에서 일어난 3·1운동.
[역사적 배경]
용인 지역 3·1운동은 1919년 3월 말부터 4월 초에 걸쳐 각 지역에서 발생하였다. 내사면에서는 3월 28일 대대리, 3월 29일 남곡리, 4월 2일 송문리에서 각각 시위가 일어났는데, 가장 대표적인 시위는 3월 29일 천주교인들이 주도한 남곡리 시위였다.
[경과]
1919년 3월 28일 포곡면에서 시작된 시위가 내사면 대대리까지 퍼져나갔다. 이어 3월 29일에는 남곡리 천주교 양지성당의 한영규(韓榮圭)와 김운식(金云植)이 각 지역의 시위 소식을 듣고 직접 태극기를 만들어 시위를 주도하였다.
이들은 남곡리 주민 100여 명을 규합하여 「독립선언문」 낭독과 독립 만세를 외친 뒤 시위에 돌입했다. 시위대는 비폭력 시위 운동을 전개하며 양지리까지 이동하였다. 시위가 전개되는 동안 시위대는 3~4백 명으로 불어났다.
[결과]
양지리에서 일본 헌병의 총격으로 해산되었다. 시위를 주도한 한영규와 김운식은 징역 10월을 선고받았다.
[의의와 평가]
내사면은 조선인 최초의 사제였던 김대건이 전교 사업을 했던 곳으로, 시위 주도 인물도 천주교인이라는 점에서 3·1운동과 천주교의 관련성이 드러난 대표적인 지역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