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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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울릉군에 있는 개신교의 한 교파. 18세기 초 영국 성공회 사제인 존 웨슬리(John Wesley) 신부가 창시하였다. 감리교의 교리는 사도신경 속에 제시된 전통적 그리스도교 신앙에 근거하고 있으며 교리보다도 실제적인 생활과 성경의 진리를 실천하는데 중점을 두고 있다. 한국에서는 1884년 미국 감리교 선교사 맥클레이(R.S. Maclay)가 고종으로부터 교육과 의료 사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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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울릉군에서 활동하고 있는 그리스도교의 한 교파. 개신교는 종교개혁의 결과로 로마 가톨릭에서 분리되었으며 로마 가톨릭, 동방정교[그리스정교]와 더불어 기독교 3대 교파 중 하나로 장로교, 성결교, 감리교, 침례교, 성공회 등의 여러 기독교 종파를 총칭하는 말이다. 경상북도 울릉군에서 활동하고 있는 개신교의 주요 분파로는 침례교, 장로교, 감리교, 순복음교, 안식교, 여호와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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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하리 465번지 내에 위치한 크기 4.2×5.0m 가량의 자연암반석에 새겨진 각석문으로 문화재자료 제411호로 지정되어 있다. 이 각석문은 1893년 당시 울릉도 수토관(搜討官)을 지낸 바 있는 조종성(趙鍾成)과 전 수토관 이규원(李奎遠), 영의정 심순택(沈舜澤)[1824~1906] 등이 울릉도에 이주한 주민들의 기아와 질병을 보살핀 사실을 기록한 것이다. 각석문의 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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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말기 동남제도개척사겸관포경사를 지낸 문신. 김옥균은 1883년(고종 20) 4월 동남제도개척사겸관포경사로 울릉도에 이주민들을 정착시켰는데, 당시 이주민의 대다수가 남해안과 호남의 어민들이었다. 그들은 울릉도 앞마당인 우산도[현 독도]에 고기잡이를 나가면서 우산도를 ‘돌섬’이라는 뜻의 호남 방언 ‘독섬’이라 호칭하였는데 오늘날 독도를 가리키는 말의 유래가 되기도 한다. 본관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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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울릉군 북면에 속하는 법정리이자 행정리. 나리는 울릉도에서 지리적 중심이라고 할 수 있는 성인봉에서 북쪽으로 약 1.5㎞가량 떨어진 곳에 위치한다. 그리고 북면 천부리에서 성인봉으로 약 10여 리 올라가다 보면 만나게 되는 큰 분지가 곧 나리이다. 이곳은 원래 옛 분화구의 화구원으로 주변이 산으로 둘러싸여 있으며, 울릉군 유일의 평원을 이루고 있다. 나리는 한자의 의미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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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울릉군 북면 나리에 있는 분지. 울릉도에서는 약 1만 년 전 많은 화산쇄설물과 화산재를 내뿜는 대폭발이 여러 차례 있었다. 이 때 막대한 양의 분출물을 쏟아낸 중심 화구(火口)의 내부에 지하 공간이 생겼고, 이후 자체 하중에 의해 화구가 함몰해 깊은 분화구가 만들어졌다. 나리분지는 바로 이와 같이 분화구가 함몰돼 만들어진 칼데라의 지형으로, 초기 이 곳에 정착한 사람들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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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정구역상 경상북도 울릉군 울릉읍 도동리에 속하는 독도는 대한민국 최동단에 있는 섬이다. 삼봉도(三峰島)·우산도(于山島)·가지도(可支島)·요도(蓼島)등으로 불리다가 1881년(고종 18)부터 독도라고 부르게 되었다. 독도가 주목받는 것은 한국 동해의 가장 동쪽에 있는 섬이라는 지리적 요인이 작용한 점도 있지만, 특히 한·일 양국간 영유권 분쟁의 대상이 되고 있기 때문이다. 독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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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말기 일본 선박 만리환이 울릉도의 규목(槻木)[느티나무]을 반출한 사건. 1883년 동남제도개척사(東南諸島開拓使)로서 울릉도 개척의 선봉장이었던 김옥균은 1883년 6월 국왕의 위임장을 가지고 일본에 건너가서 국채를 모집하려 하였다. 그러나 묄렌도르프와 민비 수구파의 사주를 받은 일본공사 다케조에 신이치로[竹添進一郎]가 김옥균이 휴대한 고종의 국채위임장을 위조한 것이라고 본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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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말기 내부대신을 역임한 문신. 본관은 반남(潘南). 자는 자순(子純), 호는 춘고(春皐)와 현현거사(玄玄居士), 초명은 무량(無量). 판서 박원양(朴元陽)의 아들이며, 어머니는 전주이씨(全州李氏)이고 큰 형은 박영교(朴泳敎), 작은 형은 박영호(朴泳好)이다. 1872년(고종 9) 철종의 부마가 되었으나 3개월 만에 사별하였다. 금릉위(錦陵尉) 정1품 상보국숭록대부(上輔國崇祿大...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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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울릉군 서면 태하리 서달마을에서 전해 내려오는 법화당에 관한 이야기. 문보근이 쓴 「동해의 수련화」[『우산국 울릉군지』]에 수록되어 있다. 울릉도를 개척할 당시의 일이었다. 그때의 일을 자세히 아는 사람은 거의 없으나, 전해오는 이야기로 남아 있을 뿐이다. 경상북도 울릉군 서면 태하리의 서쪽 들에 능이 많다고 하여 서들령이라고 불리는 곳에 법화당이 있었다. 이곳의 역할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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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울릉군 북면 현포2리에 속하는 마을. 바다에서 이 마을로 들어오다 보면 집은 보이지 않고 지형이 살강[부엌에 그릇을 얹어 놓는 선반]처럼 생긴 곳이 있는데 이곳을 살강터라고 한다. 빨래를 하거나 설거지를 하던 곳으로 가는 곳까지 바위가 징검다리 모양으로 놓아져 있어, 건널 때마다 흔들렸다고 한다. 본래 북면 지역으로 우산국 때부터 사람이 살았는데, 조선시대 때 공도 정책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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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울릉도에 거주를 금하고 관리를 파견하여 주기적으로 순찰하도록 한 정책. 1693년(숙종 19) 울릉도에서 고기잡이를 하던 안용복(安龍福) 등 동래와 울산 어부 40명이 울릉도에 출어한 일본 어부와 충돌하였다. 그 과정에서 안용복 등은 일본 어부들에 의해 오키시마[隱岐島]으로 납치되었다. 이 사건을 계기로 안용복은 두 차례에 걸쳐 일본에 들어가 울릉도와 자산도(子山島)[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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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6년 울릉군수 심흥택이 독도가 일본 영토가 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국왕에게 올린 보고서. 1906년 3월 28일 독도가 일본 영토로 편입되었다는 사실을 통보받은 울릉군수 심흥택은 다음 날 바로 강원도관찰사에게 보고하였고, 그 내용은 강원도관찰사 서리 춘천군수 이명래가 1906년 4월 29일자로 의정부 참정대신에게 올린 ‘보고서 호외’에 수록되어 있다. 심흥택은 강원도관찰사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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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울릉군 울릉읍 도동리에 있는 지방 자치 행정 기관. 울릉군청은 아름다운 국제 관광 휴양 섬 건설을 목표로 미래를 위한 지역 개발, 특색 있는 관광 명소, 신비의 섬 환경 보전, 정이 깃든 사회 복지, 발로 뛰는 현장 행정을 군정 구호로 정하고 업무에 임하고 있다. 경상북도 울릉군의 행정과 자치업무 등을 담당하기 위하여 설립된 기관이다. 1882년(고종 19) 이규원이 검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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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83년(고종 20) 4월 강원감영에서 울릉도 개척단 파견 당시, 개척에 소요될 인원 및 물자에 대한 예상명세서. 울릉도는 조선 초 태종·세종 양대에 걸친 공도화(空島化) 정책으로 오랫동안 정부에 의해 방치되었다. 이로 인해 일본 어민들의 침탈 대상이 되다가‚ 조선 말기인 고종 연간에는 러시아까지 관련되어 국제적 분규 상태에 놓이게 되었다. 이 무렵 조선에서는 울릉도의 영유권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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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83년(고종 20) 이규원이 저술한 울릉도 검찰일기. 1881년(고종 18) 울릉도 수토관(搜討官)은 일본인들이 울릉도의 규목을 몰래 베어 가는 등 울릉도에 눈독을 들이고 있다고 강원감사에게 보고하였고, 강원감사는 이 사실을 통리기무아문(統理機務衙門)에 보고하였다. 조정에서는 일본 정부에 항의 공문을 발송하게 하는 동시에 대책 마련을 위해 부호군 이규원(李奎遠)을 울릉도검찰사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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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82년 4월) 27일 평해읍(平海邑)에서 10리쯤 떨어진 구산포(邱山浦)에서 바람을 기다리다가 29일에 순풍(順風)을 만나 중추원도사(中樞院都事) 심의완(沈宜琬)과 군관출신(軍官出身) 서상학(徐相鶴), 전수문장(前守門將) 고종팔(高宗八), 차비대령화원(差備待令畵員) 유연호(劉淵祜)와 사공, 격군 등 82명, 포수(砲手) 20명을 3선(船)에 나누어 싣고 당일 오전 8시쯤에 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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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울릉군에서 나무를 재배하고 벌채하고 목재를 생산하는 산업. 1. 고려 시대 울릉군의 임업에 대한 역사적 기록은 일찍이 찾아 볼 수가 있다. 『고려사(高麗史)』 1141년(인종 19) 기사에 명주도(溟州道) 감창사(監倉使)로 임명된 이양실(李陽實)이 사람을 울릉도로 보내 사정을 살피게 하였는데, 그가 가져온 것 중 본토 내에서는 볼 수 없는 과핵(果核)과 목엽(木葉)이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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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말기 일본인이 울릉도에서 벌목을 한다는 사실을 고한 문신. 본관은 금성(錦城). 자는 익여(翼如), 호는 송석(松石). 아버지는 첨지중추부사 임기진(林箕鎭)이다. 1846년(헌종 12) 식년시에 병과로 급제한 뒤 1848년 정언·교리·종부시정(宗簿寺正)을 지냈다. 1863년(철종 14) 경상감사 김흥근(金興根)이 철종에게 무례를 범했는데도 언관들이 논핵하지 않았다고 하여 임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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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울릉군에서 이루어지는 제반 신앙 행위의 총칭. 종교는 인간의 정신문화 양식의 하나로 인간의 여러 가지 문제 중에서도 가장 기본적인 것에 관하여 경험을 초월한 존재나 원리와 연결지어 의미를 부여하고 또 그 힘을 빌려 통상의 방법으로는 해결이 불가능한 인간의 불안·죽음의 문제 등을 해결하려는 것이다. 우리나라에서 활동하는 종교로는 유교, 불교, 천주교, 개신교, 신종교 등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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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83년 3월 1일 일본 태정대신이 발급한 일본인의 울릉도 도항을 금지하는 문서. 일본에서 송도(松島)[竹島]라 부르고, 조선에서 울릉도(蔚陵島, 鬱陵島)라 부르는 곳에 일본인들의 도항(渡航)을 금지한다는 내용을 각 지방관에게 하달(下達)하여 이를 준수토록 한 지령이다. 문서의 크기는 19.5×29.5㎝이다. 1882년 4월 조선 정부는 울릉도검찰사(鬱陵島檢察使) 이규원(李圭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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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울릉군 북면 나리에 속하는 행정리. 마치 깎아 놓은 듯이 가파르다고 깍깨등이라 한다. 깎끼등, 깍깨뜽 혹은 추산깍깨등이라고도 한다. 송곳봉[錐山]이란 지명은 현 추산발전소 옆에 삼각형 산의 모양에서 유래한다. 산봉우리가 마치 송곳과 같이 뾰족하다고 해서 송곳산이라고도 한다. 한자식 지명으로 표기하면서 추산이라 하였다. 본래 북면 지역으로 이중식 화산의 분화구인데, 화산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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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말기 울릉도 삼림채벌권을 일본에게 준다는 한일의정서를 체결한 일본의 외교관. 울릉도에 대한 일본인의 침탈이 가중되던 시기, 대한제국이 울릉도에 거주하거나 허락 없이 어로행위를 한 일본인을 퇴거시킨 것에 대해 하야시 곤스케는 교묘하고 억지스러운 논리를 펴 비켜갔으며, 후에 일본인 순사의 울릉도 주재를 관철시키기까지 하였다. 하야시 곤스케는 1860년 3월 2일 일본에서 태어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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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면 태하 2리(학포, 작은 황토구미)의 산왕각은 태하리 임오명각석문에서 남쪽으로 약 80m 지점의 계곡 옆 암반 사이에 정남향으로 자리잡고 있다. 당집은 단칸(2.5×2.7m) 규모로 뒷벽은 바위에 의지하고 나머지 삼면은 돌로 벽체를 쌓아 올렸다. 당집 주변은 시멘트로 바닥을 정리하고 벤치를 놓아 마을쉼터로 조성하였다. 출입문은 계곡 쪽으로 쌍여닫이 판자문으로 달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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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말기 울릉도 개척을 건의한 문신. 본관은 남양(南陽). 자는 희세(熙世), 호는 분계(汾溪). 할아버지는 홍현규(洪顯圭)이며 아버지는 승지 홍종원(洪鍾遠)이다. 아들은 갑신정변을 일으킨 홍영식(洪英植)이다. 1844년(헌종 10) 증광별시문과에 병과로 급제, 지평·수찬을 지내고 1846년 초계문신(抄啓文臣)에 뽑혔다. 1849년 헌종이 죽자 빈전도감도청(嬪殿都監都廳)이 되었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