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증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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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울릉군에 있는 역사적·문화적·학술적 가치가 있는 유형·무형의 소산들. 문화재는 크게 유형문화재, 무형문화재, 천연기념물로 분류할 수 있다. 1962년 1월 10일에 제정된 우리나라의 「문화재보호법」에서는 유형문화재를 건조물과 전적(典籍)·서적·고문서·회화·조각·공예품 등 유형의 문화적 소산으로서 역사상 또는 예술상 가치가 큰 것과 이에 준하는 고고 자료라고 규정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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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울릉군 서면 남양리 해안에 있는 바위. 사자바위에 대한 전설은 두 가지가 전해진다. 우선 바위의 생김새가 사자와 같다고 하여 사자바위라고도 하지만, 주변에 위치한 투구봉과 같이 우산국의 마지막 왕 우해왕과 관련된 전설이 전해진다. 우산국을 정복하고 공물을 바치게 하라는 지증왕의 명령을 받은 이사부는 절벽으로 둘러싸인 천연의 요새 속에 있는 우산국의 지정학적 위치와 기질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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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사로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의 경상북도 울릉군의 역사. 울릉도의 경우 일제강점기인 1917년 도리이 류조[鳥居龍藏]에 의해 처음 유물의 채집이 있은 이후 후지타 료사쿠[藤田亮策] 등의 조사가 있었다. 해방 후 국립박물관에 의해 울릉도의 고고학적 조사가 실시되었다. 1947년과 1957년에 김원룡 등에 의해 체계적인 조사가 이루어졌고, 1963년에 김정기에 의해 보충 조사가 실시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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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울릉군에 있던 고대의 해상 왕국. 우산국은 『삼국사기(三國史記)』 권3 신라본기 지증왕 13년 6월조와 같은 책 권44 열전 이사부조에 처음으로 등장하며, 이후 신라가 멸망할 때까지 사료에 나오지 않다가 고려 현종조의 기록에 다시 나온다. 이와 같은 단편적인 기록만으로는 우산국 명칭의 유래를 밝힐 수 없는 실정이다. 우산국은 오래 전부터 울릉도에 토착하여 생활하던 원주민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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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의 울릉도에 있었던 고대의 소국인 우산국과 관련하여 역사적으로 기록된 내용은 거의 없다. 246년(동천왕 20) 중국 위(魏)나라의 관구검(貫丘儉)이 고구려를 침략한 사실을 기록한 『위지(魏志)』에 “동해에 또 하나의 섬이 있으나 언어가 통하지 않는다”는 대목이 있는데 이것이 우산국을 추측할 수 있는 최초의 기록이다. 『삼국사기(三國史記)』 권4 신라본기 지증마립간조에 의하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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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0년(고종 37) 6월 우용정이 저술한 울릉도 조사 보고서. 우용정(禹用鼎)이 울릉도 시찰위원으로 임명된 후, 1900년 5월 25일 인천항을 향해 출발하여, 5월 27일에 일본 경부 1명을 태우고 인천을 출발, 부산항에 도착해서 5월 30일 감리서주사 김면수와 부산해관 세무사 라포트(E. Raporte, 羅保得) 및 봉판 김성원(金聲遠)과 일본 부영사보 아카쓰카 쇼스케[赤塚...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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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산국 시대 울릉도에 살았던 울릉도민. 우산국(于山國)은 『삼국사기(三國史記)』권3 신라본기 지증왕 13년조와 같은 책 권44 열전 이사부조에 처음으로 등장한다. 이것은 우산국이 신라에 편입되어 멸망한 기록으로 우산국의 성립과 발전에 대해서는 확인되지 않는다. 따라서 울릉도 원주민의 출자에 대해서 알 수 없는 실정이다. 울릉도 남서동(南西洞) 고분군에서는 성혈이 새겨진 고인돌 개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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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2년 우산국을 점령한 신라의 장군. 내물마립간의 4대손으로 지증왕 이래 법흥왕, 진흥왕 대까지 활약한 장군이자 정치가이다. 505년(지증왕 6) 신라에서는 군현제가 실시되어 최초로 실직주(悉直州)가 설치되었다. 이때 이사부는 실직주의 군주(軍主)가 되었으며, 512년에는 우산국(于山國)[지금의 울릉도]을 점령하였다. 당시 우산국은 지리적인 이유로 신라에 귀복하지 않고 있었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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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2년 이사부에게 명하여 우산국을 공취(攻取)한 신라 제22대 왕. 신라 제22대 왕으로, 지증마립간(智證麻立干)이라고도 한다. 성은 김씨(金氏). 이름은 지대로(智大路)·지도로(智度路)·지철로(智哲老)라고도 한다. 내물마립간의 증손이며 아버지는 습보갈문왕(習寶葛文王)이다. 어머니는 김씨로 눌지마립간의 딸인 조생부인(鳥生夫人)이며 왕비는 박씨로 이찬(伊飡) 등흔(登欣)의 딸 연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