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240045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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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新幹會安東支會 |
영어음역 | Singanhoe Andongjihoe |
영어의미역 | Andong Branch of Singanhoe |
분야 | 역사/근현대 |
유형 | 기관 단체/기관 단체(일반) |
지역 | 경상북도 안동시 |
시대 | 근대/일제 강점기 |
집필자 | 강윤정 |
[정의]
일제 강점기 경상북도 안동 지역에 있었던 신간회 소속 지회.
[개설]
신간회 안동지회는 1927년 2월 15일 서울에서 좌우합작을 통한 신간회의 결성과 더불어 안동 지역에 설립된 신간회의 지회이다.
[변천]
안동 지역 청년운동의 지도적 조직체였던 화성회(火星會)가 1927년 4월 해체를 선언하고, 신간회 안동지회 설립으로 방향을 바꾸었다. 1927년 7월 9일 정현모·김중학·심규하·이술상·권태석·이세녕·권중열·문재빈 등 20명의 준비위원을 선정하고 신간회 안동지회 설립준비위원회가 열렸다. 같은 해 8월 26일 각 면에서 발기인을 모집하여 197명의 회원으로 구성된 신간회 안동지회가 설립되었다. 회장에는 류인식(柳寅植), 부회장은 협동학교 출신으로 우파 독립운동의 대표자 정현모, 그리고 간사는 권태석을 비롯한 좌·우파 24명이 맡았다.
1928년 1월 임원이 개선되면서 정현모가 회장을, 권중열이 부회장을 맡았으며, 24명의 간사진, 20명의 대표위원, 7명의 후보가 각각 선정되었다. 이후 1930년 경북공산당사건이 일어났을 때 많은 임원들이 구속되면서 활동의 폭이 좁아졌고, 1931년 안동콤그룹이 조직되면서 해소되었다.
[활동사항]
초기 활동은 조직 관리와 확대 방침을 모색하는 것이었으며, 1927년 9월에 열린 간사회에서는 ‘영남친목회(嶺南親睦會)에 관한 건’, ‘안동고보기성회(安東高普期成會) 사건에 관한 건’에 대해 논의하였다. 또한 1920년대 안동 사회단체 활동의 일환이었던 계몽운동을 계속 전개하였으며, 정치문화부에 일임하여 강연회를 통한 대중계몽운동을 펼쳤다. 1927년과 1929년 2차례의 대규모의 강연회를 열고, 순회강연회·학술강연회·농촌문제강연회 등 소규모의 강연회도 지속적으로 펼쳤다.
한편 풍산소작인회의 농민운동을 지원하면서 소작료 투쟁권, 세금공과금 지주부담, 비료대 이자의 지주부담 등을 결의하기도 하였다. 그 외 신간회 안동지회가 펼친 사업 가운데 주목할 만한 것은 향교철폐운동이었다. 일제의 민족 분열 정책으로 인해 향교가 친일적인 측면으로 방향을 바꾸자 정기총회에서 향교의 철폐·향교 재산처리권의 획득·유도진흥회의 철폐 등을 결의하고, 신간회 영주지회·봉화지회·영양지회와 함께 철폐운동을 전개하였다.
[의의와 평가]
신간회 안동지회는 창립부터 해소에 이르기까지 안동 지역에서 가지는 위상은 그 어떤 단체보다 높았다. 비록 유림 출신 인물들이 앞장선 단체였지만, 안동의 좌·우파들이 모두 참여하는 좌우연합체 성격을 그대로 드러내고 있었다. 또한 신간회 안동지회가 700여 명의 회원을 가진 대규모의 단체였다는 점으로 미루어 보았을 때 안동 지역 사회의 관심과 참여도가 매우 높았음을 짐작할 수 있다.
활동 성격뿐만 아니라 경북공산당사건으로 구체화된 당 재건 운동과의 연계에서 드러나듯 민족 해방 투쟁의 성격 또한 바탕에 깔고 있었다. 신간회 안동지회가 단순히 좌우연합체 성격만이 아니라 적극적 항일 투쟁 조직으로 평가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