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240153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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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權泰煥 |
영어음역 | Gwon Taehwan |
이칭/별칭 | 성관 |
분야 |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
유형 | 인물/의병·독립운동가 |
지역 | 경상북도 안동시 임동면 사월리 |
시대 | 근대/근대 |
집필자 | 강윤정 |
성격 | 독립운동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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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신지 | 경상북도 안동시 임동면 사월리 |
성별 | 남 |
생년 | 1872년 |
몰년 | 1946년 |
본관 | 안동 |
[정의]
일제강점기 안동 출신의 독립운동가.
[개설]
본관은 안동(安東)이고, 자는 성관(聖觀)이다. 1872년(고종 9) 지금의 경상북도 안동시 임동면 사월리에서 출생하여 1946년 사망하였다. 묘는 임동면 사월리 보마곡 포마골에 있다.
[활동사항]
권태환은 3·1 만세 시위 때 임동면 시위와 임북면 시위에 참여하였다. 임동면 시위는 류동시(柳東蓍)가 1919년 3월 초 고종 장례식에 참가했다가 귀향하면서 계획된 것으로 보인다. 거사 계획이 구체적으로 이루어진 것은 3월 15일 류연성(柳淵成)·류동수·이강욱(李康郁)·홍명성(洪明聖)·박재식(朴載植)·류교희(柳敎熙)·박진선(朴晋先)·류곡란(柳谷蘭) 등이 편항장터의 동쪽에 있는 공동 타작장에 모여 만세 운동 거사일을 3월 21일로 정하고 각지 군중의 동원을 분담하면서부터였다. 권태환은 거사일인 3월 21일 오후 2시경 편항장터에 모인 1,000여 명의 시위 군중과 함께 독립만세를 외치며 시장을 시위 행진하였다.
시위는 이튿날 새벽 3시까지 계속되었고, 권태환은 여세를 몰아 이튿날인 3월 13일 오후 2시경 권영석(權寧奭)·권오규(權五奎)·천치락(千致洛)·금명석(琴明石) 등 300여 명의 시위 군중과 함께 임북면 사월에 있는 면사무소에 가서 다시 만세 시위를 계속하였다. 이때 권태환은 시위 군중의 선두에 서서 면사무소를 습격하여 건물 및 숙소 2동을 파괴하고, 서류와 비품을 파기하는 등 격렬한 만세 시위를 주도하였다. 이 활동으로 체포된 그는 1919년 9월 30일 대구복심법원에서 징역 3년형을 언도받고 복역하였다.
[상훈과 추모]
1977년 대통령표창,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이 추서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