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240175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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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李中業 |
영어음역 | Yi Jungeop |
이칭/별칭 | 기암(起巖) |
분야 |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
유형 | 인물/의병·독립운동가 |
지역 | 경상북도 안동시 도산면 토계리 248 |
시대 | 근대/근대 |
집필자 | 류현정 |
성격 | 독립운동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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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신지 | 경상북도 안동시 도산면 토계리 248 |
성별 | 남 |
생년 | 1863년 |
몰년 | 1921년 |
본관 | 진성 |
[정의]
일제강점기 안동 출신의 독립운동가.
[개설]
본관은 진성(眞城). 호는 기암(起巖)이다. 아버지는 1910년 자정 순국한 향산(響山) 이만도(李晩燾)이다. 이중업은 1863년 현재의 경상북도 안동시 도산면 토계리 248번지에서 태어났다. 부인 김락은 만주로 망명한 김대락의 누이로 3·1운동에 참가하였다가 일제의 모진 고문으로 두 눈을 실명하였다.
[활동사항]
이중업은 1895년 명성황후 시해사건과 단발령이 내려지자 부친 이만도와 함께 예안 지역에서 조직된 선성의진에 가담하여 활동하였다. 이후 그는 1919년 일제의 조선 국권 침탈 과정을 폭로하면서 한국 독립의 정당성과 당위성을 호소하기 위해 김창숙(金昌淑)이 주도한 ‘파리장서의거(제1차 유림단 의거)’에 처음부터 참가하여 주동 인물로 활약하였다
이중업은 안동 출신의 유림들을 참여시키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였으며, 강원과 충청북도 지역의 유림으로부터 서명을 받는 일을 담당하였다. 이어 1920년 11월에 그는 칠곡의 장석영, 봉화의 권상익, 산청의 김황, 울주의 손후익 등 동지들과 함께 독립청원서를 손문(孫文)과 오패부(吳佩孚) 등 중국의 유력 인사들에게 보내려고 시도하다 출국 직전 사망하였다.
[상훈과 추모]
1983년에 대통령표창을 받았고, 1990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이 추서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