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240175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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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李中元 |
영어음역 | Yi Jungwon |
이칭/별칭 | 순팔(順八) |
분야 |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
유형 | 인물/의병·독립운동가 |
지역 | 경상북도 안동시 도산면 서부리 25 |
시대 | 근대/근대,현대/현대 |
집필자 | 류현정 |
성격 | 독립운동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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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신지 | 경상북도 안동시 도산면 서부리 25 |
성별 | 남 |
생년 | 1885년 |
몰년 | 1970년 |
본관 | 진성 |
[정의]
일제강점기 안동 출신의 독립운동가.
[개설]
본관은 진성(眞城). 자는 순팔(順八)이다. 1885년 현재의 경상북도 안동시 도산면 서부리 25번지에서 태어났다.
[활동사항]
이중원은 1908년 3월 15일 재경 영남 인사들이 창립한 교남교육회(嶠南敎育會) 회원으로 참여하여 안동 지역의 교육구국운동에 앞장섰다. 이후 이중원은 1919년 3월 17일에 안동군 예안면에서 일어난 만세시위를 주도하였다. 예안면에서 일어난 만세시위는 예안면장 신상면(申相冕)의 주도하에 일어난 것이 특징인데, 당시 예안면의 면서기로 근무하던 이중원은 면장 신상면과 이남호, 신응두, 신동희 등과 함께 예안면사무소 숙직실에서 만세시위를 논의하고 계획하였다.
이중원은 면사무소의 등사기를 이용하여 독립선언문과 태극기를 제작하고 이를 관내 각지에 배포하였다. 예안장날이던 3월 17일 오후 이중원은 시위 군중과 함께 주재소로 진입하여 구금자 석방을 요구하며 만세를 불렀다. 그 후 만세시위와 관련한 일련의 활동으로 일본 경찰에 체포된 이중원은 1919년 5월 21일 대구지방재판소에서 보안법 위반 혐의로 징역 1년 6월형을 언도받았으나 같은 해 6월 24일 대구복심법원에서 원 판결이 취소되어 징역 10월형을 언도받고 옥고를 치렀다.
[상훈과 추모]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이 추서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