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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응두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2401651
한자 申應斗
영어음역 Sin Eungdu
분야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유형 인물/의병·독립운동가
지역 경상북도 안동시 녹전면 구송리
시대 근대/근대
집필자 한준호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독립운동가
출신지 경상북도 안동시 녹전면 구송리 지도보기
성별
생년 1891년연표보기
몰년 1945년연표보기
본관 평산

[정의]

일제강점기 안동 출신의 독립운동가.

[개설]

본관은 평산(平山). 1891년 현재의 경상북도 안동시 녹전면 구송리에서 태어났다. 묘는 대전광역시 유성구 갑동 산23-1번지 국립대전현충원 애국지사 묘역에 있다.

[활동사항]

쓰러져 가는 나라를 근심하던 신응두는 1919년 고종 황제의 죽음으로 전국적으로 3·1만세시위가 펼쳐지자, 이것을 기회로 나라를 되찾고자 하였다. 안동 지역의 3·1만세시위는 3월 13일부터 3월 27일까지 안동·예안·임동·임하·길안 등 11개 지역에서 14회에서 걸쳐 일어났다. 이 가운데 신응두는 안동 지역에서 대규모 군중이 최초로 만세시위를 일으킨 3월 17일 예안면 1차 만세시위를 계획·전개하였다.

예안면 1차 만세시위는 예안면장인 신상면(申相冕)이 3월 11일 밤 9시에 신응두를 비롯한 이시교(李時敎)·이중원(李中元)·이남호(李南鎬)·백남학(白南鶴)·이광호(李洸鎬) 등을 면사무소 숙직실로 부른 뒤 『독립신문』을 보여주면서 만세운동을 일으킬 것을 제의함으로써 시작되었다. 자리에 모인 사람들은 뜻을 같이 하여 예안면 장날인 3월 17일을 거사일로 결정하고, 이곳에서 면사무소의 등사판을 이용하여 독립선언서와 태극기를 대량으로 인쇄·제작하였다.

드디어 3월 17일 오후 3시 30분경,이광호·이동봉(李東鳳) 등이 군중을 이끌고 면사무소 뒤편 선성산(宣城山)에 올라가 일제가 세운 ‘어대전기념비(御大典記念碑)’를 쓰러뜨렸고, 이와 동시에 1,500여 명의 시위 군중은 예안주재소로 몰려가 독립만세를 불렀으며, 약 600명은 산을 타고 안동 시내로 들어가 3월 18일 안동면 2차 시위에 합세하였다. 이때 신응두는 일제의 시위 진압에 의해 현장에서 체포되었고, 1919년 5월 21일 대구지방재판소에서 징역 1년 6월형을 언도 받고 상고하였으나 대구복심법원에서 10월형이 확정되어 옥고를 치렀다.

[상훈과 추모]

1999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이 추서되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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