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섭산
-
충청북도 충주시 신니면 마수리·선당리·화안리에 걸쳐 있는 산. 석가모니 부처의 십대 제자인 가섭존자(迦葉尊子)에서 유래한 것으로 추정된다. 해발고도 709.9m의 산으로, 주변이 평야나 낮은 고개로 둘러싸여 있어서 멀리서도 잘 보일 만큼 큰 산이다. 북쪽은 요도천 유역의 곡저평야, 남쪽은 음성천과 한벌천을 따라 발달한 좁은 곡저평야가 형성되어 있다. 또한, 동...
-
충청북도 충주시 신니면 마수리 가섭산 동편에 있는 고려시대 절터. 가섭산은 음성읍의 동쪽에 있어 음성의 진산으로 일컬어지는 산이다. 이곳은 예부터 관방 유적이 발달한 곳으로. 정상에 가섭산 봉수대가 있어 충주의 마산봉수에서 연락받은 사항을 삼성의 마니산 봉수로 연결하는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 가섭산에는 동쪽과 서쪽에 절이 있어 동가섭사, 서가섭사라고 불렸다....
-
충청북도 충주시 신니면 견학리와 주덕읍 창전리에 있는 선사시대에서 고려시대에 이르는 유물산포지. 견학리 유물산포지는 충주에서 서울로 향하는 국도 3호선을 따라 주덕읍에서 신니면 면소재지쪽으로 약 2㎞ 가면 왼쪽으로 견학리 토성 못미처 북향한 낮은 구릉지대에 위치한다. 이곳은 가섭산 동사면에 해당된다. 유물산포지는 낮은 구릉지로 견학리성 밑 마을에서 창전리 새들...
-
충주사고는 1390년(공양왕 2)부터 임진왜란이 일어나는 1592년까지 약 200년 동안 고려의 중요 전적과 조선 전기의 역대 실록 그리고 중요한 서책과 문서를 보관하던 창고의 하나였다. 그러나 1592년 4월 28일 충주 탄금대 전투에서 신립이 패하여 충주시가지가 불탈 때 시가지 내에 있던 충주사고와 그에 보관된 서책들도 사라졌다. 우리나라는 일찍부터 역사를 기록하여...
-
충청북도 충주시 이류면 탄용리와 괴산군 불정면 탑촌리 경계에 있는 산. 충주시와 괴산군 경계 지대에서 차령산지와 소백산지를 이어주는 가섭지맥의 일부이다. 가섭지맥은 차령산지 본줄기인 부용산[644m]에서 시작하여 가섭산[710m], 어래산[396m], 고양봉[525.7m], 풍류산[485.2m]에 이르는 동서 산줄기를 일컫는다. 차령산지에 가까운 부용산에서 가...
-
충청북도 충주시의 기온·비·눈·바람 등 대기(大氣) 상태. 충주 지방은 한반도 내륙 및 충청북도 북부에 위치하고 있어 거시적인 지형 특성상 동부 태백산지, 남동부 소백산지, 서부 차령산지로 둘러싸인 분지이다. 그 내부에는 남한강과 달천이 관통하고 있으며, 그 주변으로는 월악산[1094m]·천등산[807m]·국망산[770m]·가섭산[710m]을 비롯하여 계명산[...
-
충청북도 충주시 가주동과 이류면 문주리를 연결하는 고개. 달은티는 월은치(月隱峙), 월은고개, 큰고개로도 불린다. 이곳에 있는 청풍김씨의 묘소가 달이 구름 속에 숨은 형상이라 하여 유래한 이름이다. 해발 약 300m 정도로 그리 높지 않지만 달천과 달천평야(일명 충주평야), 탄금대 구릉을 한눈에 볼 수 있다. 고개는 충주시 남쪽 경계를 따라 동서로 뻗은 산줄기...
-
충청북도 충주시 주덕읍에 속하는 법정리. 큰 골짜기가 있어 대곡(大谷), 또는 큰골이라 하였다. 대곡리의 중심이 되는 3개 마을 중 동산미(東山尾)는 최초의 마을인 엄동생골이 동산 밑에 있어 붙여진 이름이다. 원대곡(原大谷)은 뒷산인 황술재를 중심으로 좌청룡 우백호가 뚜렷하게 흘러내리며 큰골을 형성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맹동(孟洞)은 풍수적으로 매화자리에 속하는 길지였는...
-
충청북도 충주시 주덕읍 대곡리에 있는 조선시대 고묘 유적. 충주 대곡리 유적은 보성파워텍 제2공장 건설부지에서 중앙문화재연구원 팀에 의해 발굴 조사된 유적이다. 대곡리 유적이 위치한 곳은 충주시 신니면과 음성군 음성읍의 경계에 자리한 가섭산[709.9m]에서 동쪽으로 뻗은 산줄기의 하단부에 해당하는 곳이다. 주변에 충주 견학리 토성, 견학리 유물산포지, 신중리...
-
충청북도 충주시 신니면에 속하는 법정리. 1914년 4월 1일 행정구역 통폐합 때 대화리(大化里), 동화(同花), 화치(花峙)를 병합하고 대화와 화치의 첫 이름을 따서 대화리(大花里)라 하였다. 1757~1765년에 편찬한 『여지도서(輿地圖書)』 충원현조에 따르면 신석면(薪石面) 탄현리(炭峴里) 지역이었다. 1914년 4월 1일 행정구역 통폐합에 따라 대화리와 화치리 등...
-
6·25 전쟁 중인 1950년 7월 4일부터 7일까지 충청북도 충주 지역 일대에서 벌어진 국군과 북한군 간의 전투. 동락리 전투는 6·25전쟁 초기 후퇴를 거듭하던 중 국군 제6사단 제7연대가 1950년 7월 4일부터 7일까지 장호원에서 음성에 이르는 무극리 감우재 동락리 일대에서 북한군 제15사단을 상대로 1개 연대 이상 규모를 궤멸시킨 전과를 올린 한국전쟁 중 국군의...
-
충청북도 충주시 대소원면 대소원리에 있는 조선시대 봉수대. 마산 봉수는 충청북도 충주시 대소원면 대소원리의 봉화산 정상부에 남아 있는 봉수대이다. 조선시대 제2거 노선에 소속된 봉수로, 각각 죽령과 계립령을 넘은 2개의 봉수로가 최초로 합쳐지는 곳이었다. 봉수대에는 별장 1명, 감관 5명, 봉군 25명, 봉군보 75명 등 126명의 인원이 소속되었다....
-
충청북도 충주시 신니면에 속하는 법정리. 1914년 행정구역 통폐합시 마제동(馬蹄洞)·온수리(溫水里)·내룡동(內龍洞)·학성리(鶴城里)의 일부를 병합하고 마제와 온수의 이름을 따서 마수리(馬水里)라 하였다. 마수리는 남쪽 가섭산(加葉山) 줄기가 뻗은 골짜기 아래 형성된 마을로 북쪽에 농경지가 펼쳐져 있다. 일찍이 운봉박씨 운성부원군파 후손들이 들어와 세거하였다....
-
마수리는 현재 충주시 신니면 13개 법정리 중 하나이다. 신니면의 동쪽에 위치한 마수리는 마제와 신석 2개 행정리로 이루어져 있다. 마수리는 과거 마제, 신석, 온수골 3개 마을이 있었으나, 1982년 율곡지구 사업으로 온수골이 없어지면서 2개 마을로 변화되었다. 마수리의 남서쪽에는 이 지역에서 가장 높은 가섭산[709.6m]이 있다. 그러므로 마수리는 가섭산...
-
가섭산에서 내려온 물줄기는 온수골로 내려와 마제와 신석을 지난 다음 요도천으로 합류한다. 그러므로 마수리의 한가운데를 시내가 흘러간다. 마수리는 이 하천 양쪽에 생긴 논과 밭을 근거지로 발달하였다. 이러한 자연환경을 갖고 있는 마수리의 중심 마을은 마제이다. 마제는 이 하천의 중하류 동쪽에 위치하고 있다. 마제라는 동네 이름의 유래에 대해서는 두 가지 설이 있...
-
충청북도 충주시 신니면에 속하는 법정리. 1914년 4월 1일 행정구역 통폐합 때 회문리(回文里)·동락리(同樂里)·모도원동(毛陶院洞)·남악리(南岳里)의 일부를 병합하고 회문리와 동락리의 이름을 따서 문락리라 하였다. 문락리 지역은 1757~1765년에 편찬된 『여지도서(輿地圖書)』 충원현조에 따르면 신니곡면(申尼谷面) 숭선리(崇善里) 지역이었다. 일찍이 전의이씨(全義李氏...
-
충청북도 충주시 주민들을 대상으로 라디오나 텔레비전 등의 매체를 통해 음성이나 영상을 전파로 내보내는 일. 우리나라 「방송법」상의 방송은 “방송 프로그램을 기획, 편성 또는 제작하고 이를 공중에게 전기통신 설비에 의하여 송신하는 것”으로 정하고 있다. 그러나 방송은 단순한 전파의 발사가 아니라 전파의 물리적 특성을 매개로 하여 인간의 가치관이나 사상, 감정, 기타 제반...
-
조선시대 충청북도 충주시에 분포하는 불과 연기를 이용한 통신 수단과 시설. 봉수는 가락국의 수로왕 설화에서 보이듯이 삼국시대부터 실시되었으며, 고려시대 1149년(의종 3) 조진약(曺晋若)의 건의에 의해서 체계적으로 정비되었다. 조선시대 세종대에는 봉수대 시설, 봉군(烽軍)의 신분, 봉화 홰(炬)의 수를 다시 정하고, 봉수의 노선을 구분하여 봉수제도의 근간을 마련하였다. 1894년...
-
충청북도 충주시 신니면 선당리와 음성군 음성읍 용산리에 걸쳐 있는 산. 『조선환여승람(朝鮮寰輿勝覽)』에서 봉학산은 충주에서 서쪽으로 50리 떨어진 지점에 있다고 기록되어 있다. 산의 형태가 백학이 짝을 지어 날고 있는 백학쌍비형(白鶴雙飛形)이라서 붙어진 이름이다. 봉학산은 높이 576m이며, 서북쪽에는 부용산[644m]이 있고 동남쪽에는 가섭산[71...
-
충청북도 충주시에 있는 사찰의 유지(遺址). 고려시대와 조선시대에 충주 지역에 있던 사찰은 『고려사(高麗史)』·『세종실록(世宗實錄)』·『세종실록지리지(世宗實錄地理志)』·『동국여지승람(東國輿地勝覽)』을 비롯한 각종 지리지에 그 사찰 명이 기록되어 있다. 그러나 이들의 대부분은 없어지고 절터만이 남아 있다. 이 외에도 많은 절터가 있으며 그곳에서 나오는 명문의 와편을 통하여...
-
충청북도 충주시에 분포되어 있는 주변에 비해 높이 솟은 봉우리. 충주는 동부 태백산지, 북서부 차령산지, 남동부 소백산지로 둘러싸인 분지의 형상을 띤 지역으로 산지의 비중이 높다. 그에 따라 산지가 해체되는 과정에서 솟아 있는 다양한 고도의 산들이 곳곳에 자리 잡고 있다. 규모는 대체로 300~1,000m에 이르는 중·저산성 산지들이며, 충주시 경계부로 갈수록...
-
충청북도 충주시 신니면에 속하는 법정리. 1914년 행정구역 통폐합시 선동(仙洞)과 용당리(龍堂里) 등을 병합하면서 선동과 용당리에서 한 자씩을 따서 선당리(仙堂里)라 하였다. 『여지도서(輿地圖書)』 충원현조(영조 35)에는 “이곳은 신석면 여탄리(汝呑里)로 충주 관아로부터 서쪽으로 50리 거리에 위치하며, 124가구에 총 714명(남 347, 여 367)이...
-
충청북도 충주시에 분포하는 외적의 침입에 대비해 흙이나 돌로 축조한 방어 시설. 성곽(城郭)은 성과 곽의 합성어다. 성은 본래 주민들의 생업을 번성하게 하기 위해 흙으로 쌓은 방어 시설을 말하며, 곽은 도시의 발전과 확대 과정에서 생겨난 성(내성)을 둘러싸는 외성을 의미한다. 우리나라의 성곽에 관한 기록은 『사기(史記)』「조선전」과 『후한서(後漢書)』「동이열전」에서 확인...
-
충청북도 충주시 신니면에 속하는 법정리. 1914년 행정구역 통폐합 때 흑암리(黑巖里)와 팔송리(八松里)를 병합하면서 흑암과 팔송에서 한 자씩을 따서 송암리(松巖里)라 하였다. 옛날 팔송리에는 8그루의 큰 소나무가 있었다고 한다. 송암리는 남쪽의 가섭산 골짜기를 따라 마을이 형성되어 있다. 『여지도서(輿地圖書)』 충원현조(영조 35)에는 “이곳은 신석면(薪石面...
-
충청북도 충주시 이류면 금곡리와 괴산군 불정면 삼방리 사이에 있는 고개. 이 지역은 과거 신라시대 때부터 전국적 규모의 철(鐵) 산지로 쇠실[金谷]이라 불리기도 하였는데, 현재에도 위쇠실과 아랫쇠실이라는 마을이 있다. 해발고도 약 250m 정도로서, 어래산[396m]과 고양봉[526m]을 잇는 중간 지점에 있다. 서쪽 차령산지 부용산[644m]에서 시작되어 가섭산[710...
-
혜성(慧成)[동가섭사 주지, 본명 玄炳錫] 스님을 만나는 일은 동가섭사를 두 번째 방문했을 때 가능했다. 지난 1월 절 마당에 눈이 남아있을 때 방문했지만 인연이 닿지 않았던 모양이다. 3월에 다시 절을 찾아 가니 며느리인 여현숙 씨가 나와 맞이한다. 여현숙 씨가 절 살림을 맡아 한다는 사실을 들어 알고 있지만 스님과의 인터뷰가 먼저라 스님을 만났으면 좋겠다고 말한다....
-
충청북도 충주시에 속하는 행정구역. 1914년 행정구역 통폐합시에 신석면(薪石面)의 신(薪) 자와 신니곡면(申尼谷面)의 니(尼) 자를 따서 신니면(薪尼面)이라 하였다. 신니면은 삼한시대에 마한에 속하였고 삼국시대에 백제는 낭자곡성, 고구려는 국원성, 신라는 중원경의 관할이었다. 고려시대와 조선시대는 충주목(忠州牧) 관할이었다. 신니면은 개경 또는 한성에서 영남...
-
충청북도 충주시 주덕읍 신중리 원신중마을에 있는 삼국시대 고분군. 충주는 고대에 삼국이 모두 지배한 고장이다. 백제는 충주를 처음으로 지배했으며, 근초고왕과 근구수왕 때 최대 판도를 이루었다. 고구려는 이미 400년 광개토왕이 신라 내물왕을 원조할 때 충주에 들어와 실제로 군대를 주둔시켜 지배했다는 설과 장수왕의 남하정책에 따라 백제가 웅진으로 천도할 때 충주...
-
충청북도 충주시 주덕읍 삼청리와 괴산군 불정면 삼방리에 걸쳐 있는 산. 어래산에는 이태조에 얽힌 전설이 전해지고 있다. 공민왕으로부터 남달리 총애를 받던 배극렴(裵克廉)은 왕의 시역사건이 일어나자 정사에 뜻을 잃고 그 부인과 함께 충주 고을로 낙향하였는데, 그가 어느 곳에 은거하는지는 아무도 알지 못했다. 그 당시 좌우군 도총사였던 이성계가 왕실을 장악하게 되...
-
마수리는 충주시 신니면 14개 법정리 중 하나이다. 본래 충주군 신석면(新石面) 지역으로 1914년 행정구역 통폐합에 따라 신니면(薪尼面) 마수리(馬水里)가 되었다. 마수리라는 이름은 당시 가장 큰 마을이었던 마제동(馬蹄洞)과 온수리(溫水里)에서 한 자씩 따서 만들었다. 마수리는 신니면 용원리의 남쪽, 신니면 견학리의 서쪽, 주덕읍 대곡리의 북쪽에 자리 잡고...
-
충주에서 서쪽으로 3번 국도를 따라가다가 주덕읍 서북쪽으로 새로 확장된 서울 방면 3번 국도를 지나 500m쯤 더 가면 오거리가 나타난다. 이곳에서 동북쪽으로 우회전하여 접어들면 525번 도로가 북쪽으로 신중리의 넓은 들을 가로지르고, 신설된 3번 국도 지하도를 지나면 주덕평야의 넓은 들을 만난다. 주덕평야는 청원군의 미호평야와 오창평야에 이어 충북에서 세 번째로 큰 평...
-
온수골에 대한 이야기는 온수골에 살다가 신석으로 이주한 박장석(76) 씨와 박철동(46) 씨를 통해 많이 들을 수 있었다. 온수골의 온수는 ‘따뜻한 물’이라는 뜻으로 동네 가운데 있던 샘물이 겨울에도 따뜻해서 그런 이름이 붙은 것 같다고 말한다. 그리고 온수라는 이름을 보고 외지에서 온천을 찾아보려 했지만 온천을 할 수 있을 정도의 물은 찾지 못했다고도 한다....
-
충청북도 충주시 신니면의 남서쪽 부용산 등에서 발원하여 주덕읍·이류면을 거쳐 용두동에서 달천에 흘러드는 하천. 전설에 의하면 중국의 요임금이 건너간 하천이라 하여 요도천이 되었다. 유역의 서단에는 차령산지의 본줄기인 부용산[644m]이 위치하며, 이를 정점으로 남쪽은 가섭산[710m]~어래산[396m]으로 이어진다. 북쪽은 수레의산[679m]-자주봉[484m]-병풍산[3...
-
충청북도 충주시 신니면에 속하는 법정리. 용안리에 역참이 있던 마을이라 하여 용원(龍院)이라 불렸다. 옛날 한양에서 내려오는 영남대로의 길목으로서 북쪽의 노은면과도 통하는 용원삼거리에 자연 마을이 형성되었다. 이 지역은 개경 또는 한성에서 영남으로 통하는 길목으로 죽산·장호원 등에서 차령산맥을 넘어와 머무는 역원인 용안역(用安驛)이 있었으며, 『여지도서(輿地圖...
-
풍덕마을 시내버스 정류장에서 북쪽으로 곧장 오르면 풍덕마을이 나타나는데 북위 37.5도, 동경 127.5도에 위치한다. 동쪽으로 멀리 국사봉[166m]이 보이고 화개산[190m] 앞쪽에 가장골산이 자리 잡고 앉았으며, 서쪽으로 장중하고 높은 가섭산[710m]이 멀리서 가려주어 황새동산이 자리하였다. 남쪽 멀리에는 어래산[399m]이 마주앉아 마을의 안산을 자처하였다. 북...
-
일반적으로 박씨의 시작은 신라를 세운 혁거세로부터 본다. 혁거세의 후손인 신라 54대 경명왕(景明王)[917~923]은 여덟 왕자를 두었고, 이들이 다스리는 주군(州郡)에 따라 박씨의 관향이 생겨나게 되었다고 한다. 운봉(雲峰)박씨도 이들의 후손일 것으로 여겨지나 문헌이나 족보를 통해 계보를 찾기는 어렵다. 그러나 1988년에 발행된 『운봉박씨 족보』에 따르면 계보가 경명왕의 큰...
-
충청북도 충주시 신니면에 속하는 법정리. 1914년 행정구역 개편 때 광평리(廣坪里)·당곡리(堂谷里)·원대리(院垈里)와 용당리(龍堂里)의 일부를 병합하여 원대와 광평의 이름을 따서 원평리라 하였다. 영남대로 변에 위치한 마을로서 예부터 사람들의 왕래가 잦아서 신라 선덕왕 때 사찰이 창건되어 선조사(善祖寺)라 칭하다가 병자호란 때 불타고 현재는 석등, 석탑만 남...
-
충청북도 충주시 주덕읍 제내리에 있는 전주이씨 진안대군파 집성촌. 제내리(堤內里)는 충청북도 충주시 주덕읍에 속한 법정리이다. 이전에 방죽이 있었으므로 방죽안이라 하였고 이를 한자로 표기한 것이 제내리다. 제내리는 풍덕·성동·대촌 3개의 행정동(리)으로 구성되어 있다. 전주이씨 제내리 집성촌은 1590년대 중반 조선 태조의 장남 진안대군의 9세손 이...
-
봉수(烽燧)는 낮에는 연기, 밤에는 불빛으로 가장 빨리 변방의 소식을 중앙으로 전달하던 통신 수단이었다. 30여 리를 기준으로 서로 잘 보이는 산봉우리에 봉수대를 쌓고 횃불과 연기를 올리는 중요한 시설이었다. 봉수제도가 처음 시작된 것은 삼국시대부터 실시되었지만 고려시대에 와서 체계적으로 정비되었고 조선 세종 때에 봉수대 시설과 봉군의 신분, 봉수의 노선을 구분하여 조선 봉수의 근...
-
충청북도 충주시에서 나타나는 땅의 기복과 형태. 충주는 동부 태백산지, 남동부 소백산지, 서부 차령산지로 둘러싸인 내륙의 산간 분지이다. 이곳은 남한강과 달천이 만나는 자리에 형성된 침식 분지로서, 남한강이 좁은 골짜기로 이루어진 상류 유역을 흐르다가 처음으로 하곡이 넓어지는 자리이기도 하다. 그 구체적인 지점이 바로 충주댐 부근이다. 달천 또한 속리산에서 보...
-
충청북도 충주시 신니면 견학리에 있는 삼국시대 판축 토성. 충주 견학리 토성은 낮은 구릉지역의 끝자락에 축초된 토축성으로 규모가 작은 판축 공법이 적용되었다. 1991년과 2000년 충북대학교 박물관에 의해 2차례에 걸쳐 발굴조사 되었으며, 이를 통해 9세기를 전후한 시기의 특징적인 양상이 확인되었다. 또한 청동기시대의 문화층과 초기 철기시대와 원삼국시기에서...
-
충청북도 충주시 이류면 문주리와 괴산군 불정면 창산리에 걸쳐 있는 산. 경치가 아름다워 놀기에 좋다고 하여 풍류산이라 불리게 되었다. 또한 풍류산에는 선녀가 놀고 갔다는 포모대가 있는데, 선녀를 보려 했던 풍류남아들이 모여들던 곳이라는 의미로 풍류산이라 하였다고 한다. 해발고도 485.2m로서, 충주시 남쪽 경계를 이루는 가섭산 지맥의 동쪽 끝에 위치해 있다. 서쪽으로는...
-
음양오행설을 기초로 충청북도 충주 지역의 땅에 관한 이치를 설명하는 이론. 풍수지리란 산의 배치와 물의 흐름, 지형과 방위, 하늘과 땅의 기운 등을 고려하여 인간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일을 하는 것이다. 풍수지리는 과거 역사 속에서 삶의 터전을 만들어 가는 데 있어 중요한 기준으로 활용되었다. 충주 지역의 풍수지리는 삼국시대부터 언급되고 있으나 자연과 사람을 연결시켜 비교적 자세히...
-
충청북도 충주시 주덕읍에 속하는 법정리. 화곡리는 화개산 아래 골짜기에 위치하여 아름다운 꽃이 만발한 마을이라는 데서 유래되었다. 본래 충주군 덕면(德面) 지역으로 1914년 행정구역 개편 때 중리(中里), 계막리(桂幕里), 이암리(耳巖里), 제내리(堤內里)의 각 일부를 병합하여 화곡리라 부르고 주덕면에 편입되었다. 1990년 1월 1일 행정리인 계막, 화곡1...
-
충청북도 충주시 신니면에 속하였던 법정리. 가섭산(加葉山)[709.9m] 아래 동쪽에 위치한 산간 마을로 1982년 군사시설 용지로 편입되어서 자연마을은 폐쇄되었다. 1914년 행정구역 통폐합시 산직리(山直里), 안항동(顔巷洞), 화산동(花山洞), 석포리(石浦里), 마제동(馬蹄洞)의 일부를 병합하여 화산과 안항의 이름을 따서 화안리(花顔里)라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