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4000440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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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法藏寺 |
분야 | 종교/불교 |
유형 | 기관 단체/사찰 |
지역 | 대구광역시 남구 고산3길 96-4[봉덕동 148] |
시대 | 고대/남북국 시대,현대/현대 |
집필자 | 박병선 |
개칭 시기/일시 | 1961년 - 법장사 건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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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재 지정 일시 | 1975년 2월 5일 - 고산사 대구광역시 문화재자료로 지정 |
현 소재지 | 법장사 - 대구광역시 남구 고산3길 96-4[봉덕동 산148] |
성격 | 사찰 |
전화 | 053-471-0414 |
[정의]
대구광역시 남구 봉덕동에 있는 대한불교조계종 제9교구 본사 동화사 소속 사찰.
[개설]
법장사(法藏寺)는 대구광역시 남구 봉덕동에 있는 사찰이며, 대한불교조계종 제9교구 본사 동화사의 말사(末寺)이다. 통일신라 시기에 창건된 고산사(高山寺) 터에 삼층석탑만 남아 있던 것을 1961년 법장사로 창건하였다.
[건립 경위 및 변천]
고산사의 창건과 중창의 역사는 전하지 않지만 삼층석탑으로 미루어 보아 고산사는 통일신라의 사찰로 추정되며, 폐사된 고산사 터에 법장사가 창건되어 전통 사찰로서 맥을 이어 가고 있다. 전설에 의하면, 신라 말의 한 왕에게는 대를 이을 왕자가 없었는데, 어느 날 왕의 꿈에 백발노인이 나타나서 “서쪽으로 수백 리 되는 곳에 산 좋고 물 맑은 곳이 있으니 그곳에 절을 짓고 정성을 다하면 소원을 이루리라”고 하였다. 왕명을 받은 신하들이 고산골[高山谷]에 이르렀는데, 앞뒤로 산이 포근히 둘러싼 데다 옥 같은 물이 흐르고 있었다. 왕은 고산골의 자리에 절을 짓고 ‘고산사’라 하였으며, 왕비와 시녀를 보내 백일기도를 올리게 하였다. 백일기도 후 왕비는 왕자를 낳았고, 이듬해에도 두 번째 왕자를 낳았으므로 기뻐한 왕은 고산사에 삼층석탑을 세우도록 하였다.
그 뒤로 고산사에는 자식 없는 부인들의 기도 행렬이 끊이지 않았다고 한다. 그러나 임진왜란 때 불에 타서 삼층탑만 남게 되었다. 절을 불태운 왜병들이 석탑 속의 보물을 훔치기 위하여 탑을 헐려고 하자, 갑자기 소나기가 쏟아지고 뇌성벽력이 쳐서 왜군은 크게 놀라 물러갔다고 한다.
법장사에 관한 지리지나 사적기의 기록은 1961년 고산사 터에 법장사를 세웠다는 것이 가장 이른 기록이라고 할 수 있다. 법장사 창건 이후, 1999년에 삼층석탑을 대웅전 남쪽으로 이건하고 일주문을 건립하였다. 2010년에 대웅전에 봉안된 관음보살과 지장보살 점안식을 거행하고 종무소 겸 요사(寮舍)인 적묵당(寂默堂)을 조성하였으며, 2012년에 삼성각, 일주문 등을 중창 불사를 하였다.
[활동 사항]
법장사에서는 불교의 5대 명절인 석가모니의 출가일, 열반일, 탄신일, 백중일, 성도 재일을 중시하여 다양한 활동을 하고 있다. 매년 정초 기도 법회와 칠석 기도, 동지 기도 행사를 하며, 매월 음력 초하루 기도와 7일에는 칠성 재일 기도, 18일에는 지장 재일 기도, 24일에는 관음 재일 기도를 정기적으로 하고 있다.
특히 법장사에서는 매년 새해 첫날 떡국 나누기 행사를 하고 있으며, 인근 경로당에 자비의 쌀국수 나누기 행사를 하는 등 소외된 이웃을 위한 봉사활동을 꾸준히 하고 있다.
[현황(조직,시설 현황 포함)]
법장사 당우로는 대웅전, 삼성각, 적묵당, 종각, 일주문 등이 있다. 중심 불전인 대웅전은 ‘ㄱ’ 자 형태의 팔작지붕으로 내부에는 화려한 닫집 아래 아미타불을 주불로, 관음보살과 지장보살을 협시로 삼존불이 봉안되어 있다. 대웅전의 불화는 영산회상도, 신중탱화, 칠성탱화, 용왕탱화가 봉안되어 있는데, 영산회상도를 제외한 탱화는 모두 1955년에 금용(金蓉) 일섭(日燮) 금어가 그렸다.
삼성각은 2012년에 중창 불사를 하였으며, 정면과 측면 각 1칸 규모의 맞배 기와지붕 양식으로 산신탱, 칠성탱, 독신탱을 봉안하고 있다. 적묵당은 종무소 겸 요사로 정면 4칸 측면 1칸 규모의 맞배 기와지붕 양식이며 2012년에 중창 불사를 하였다. 종각은 정면과 측면이 각 1칸 규모의 사모 기와지붕 양식으로 ‘종각’의 현판이 있는 면만 트여 있고 3면은 낮은 목책으로 둘려 있으며, 2012년에 중창 불사를 하였다. 출입문인 일주문은 정면과 측면 각 1칸 규모의 맞배 기와지붕 양식이며 ‘대덕산법장사’라는 현판이 걸려 있다.
[관련 문화재]
법장사삼층석탑(法藏寺三層石塔)은 신라시대 일반 석탑의 양식과 형식을 따른 듯하나, 부서진 탑재를 모아서 다른 석재와 함께 복원한 것이기 때문에 현재의 상태로는 완전히 규명하기 어렵다. 기단부(基壇部)가 파괴되어 원래의 모습을 알 수 없고 3층을 이루는 탑신(塔身)만이 차례대로 쌓여 있다. 탑신의 1층 몸돌은 면마다 양쪽에 기둥 모양을 새겼으며, 위층의 몸돌에 비하여 지나치게 높아 보인다. 일부가 손상되어 있는 지붕돌은 낙수면의 경사가 완만하며, 밑면에는 4단의 받침을 두었다. 대체로 통일신라 석탑의 일반적인 양식을 따르고 있는 듯하나, 탑신의 1층 몸돌이 폭에 비하여 지나치게 높아 불안정한 비례를 보이고, 지붕돌받침이 4단으로 줄어 있는 등 전형 양식에서 조금 벗어나 있다. 탑신부 정상의 상륜부는 완전히 없어진 상태이다.
임진왜란을 겪으면서 사찰은 모두 불에 타고 탑만이 무너진 채 방치되어 오다가 1961년 법장사를 새로 지을 때 법장사삼층석탑도 함께 복원하였으며, 1999년에 산신각 앞에 있던 탑을 현재 위치로 이건하였다. 법장사삼층석탑은 1982년 3월 4일 대구광역시 문화재자료 제5호로 지정되었다. 그 후 2021년 6월 29일 「문화재보호법시행령」 개정에 따라 지정 번호가 삭제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