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타데이터
항목 ID GC40004414
한자 隱蹟寺
분야 종교/불교
유형 기관 단체/사찰
지역 대구광역시 남구 앞산순환로 574-120[봉덕동 1572]
시대 고대/남북국 시대
집필자 박병선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건립 시기/일시 926년연표보기 - 은적사 창건
중수|중창 시기/일시 1644년 - 은적사 중창
중수|중창 시기/일시 1947년 - 은적사 중건
문화재 지정 일시 2015년 5월 11일 - 대구 은적사 목조석가여래좌상 대구광역시 유형문화재 제72호로 지정
특기 사항 시기/일시 2021년 6월 29일 - 대구 은적사 목조석가여래좌상 「문화재보호법시행령」 개정에 따라 문화재 지정 번호 삭제
최초 건립지 은적사 - 대구광역시 남구 앞산순환로 574-120[봉덕동 1572]
현 소재지 은적사 - 대구광역시 남구 앞산순환로 574-120[봉덕동 1572]지도보기
성격 사찰
창건자 영조대사(靈照大師)
전화 053-653-1572
홈페이지 http://www.eunjeoksa.or.kr

[정의]

대구광역시 남구 봉덕동에 있는 대한불교조계종 제9교구 본사 동화사 소속 사찰.

[개설]

은적사(隱蹟寺)대구광역시 남구 봉덕동에 있는 통일신라시대의 전통 사찰이며, 대한불교조계종 제9교구 본사 동화사의 말사(末寺)이다.

[건립 경위 및 변천]

은적사왕건(王建)의 명으로 926년(신라 경애왕 3)에 영조대사(靈照大師)가 창건한 사찰이다. 고려 태조 왕건(王建)이 후백제 견훤(甄萱)과의 싸움에서 대패한 뒤 신숭겸(申崇謙)의 지략으로 빠져나와 절 바로 뒤편 왕굴에 구사일생으로 피신하였으므로 ‘은적사’라 하였다.

은적사는 1644년(인조 22)에 임진왜란으로 폐허가 된 사찰을 취감대사(就甘大師)가 중창하였으며, 1947년에는 주지 해응이 중건하였다. 1978년에 주지 종원(宗源)이 대웅전을 중건하고, 1981년 주지 장윤이 은적사 부설 룸비니유치원을 설립하였다. 1986년 주지 사요가 삼성각, 법해당, 종무소를 중건하였으며, 1992년 요사채와 후원채를 중건하고 도량의 면모를 일신하였으며, 2020년에는 주지 원일이 설법전과 공양간을 신축하였다. 은적사 가람 구조는 설법전이 없을 때는 ‘ㄷ’ 자 형태였으나, 설법전 조성 이후 ‘ㅁ’ 자 형태의 산지 가람 양식으로 변화하였다.

은적사의 사적은 창건 이후 전하지 않다가 1779년(정조 3)에 펴낸 『범우고(梵宇攷)』에 “은적사성불산(成佛山)에 있다”고 기록되어 있고, 『경상도읍지(慶尙道邑誌)』에는 “은적암은 성불산에 있다”고 하였다. 일제강점기 기록인 『교남지(嶠南誌)』에 “은적암은 성불산에 있으며, 신라시대에 창건되었다”고 하였다. 즉 은적사는 1644년 중창 이후 사세가 약해지기는 하였지만 일제강점기까지는 지속적으로 사세를 유지하였다고 할 수 있다.

[활동 사항]

은적사에서는 불교의 5대 명절인 석가모니의 출가일, 열반일, 탄신일, 백중일, 성도 재일을 중시하여 다양한 활동을 하고 있다. 매년 정초 기도 법회와 칠석 기도, 동지 기도 행사를 하며, 매월 음력 초하루 기도와 7일에는 칠성 재일 기도, 18일에는 지장 재일 기도, 24일에는 관음 재일 기도를 정기적으로 하고 있다.

은적사에서는 소외된 이웃과 불우한 이웃을 위한 물품 기증 활동과 노력 봉사활동을 활발히 하고 있다. 저소득층 아이들을 위한 유치원을 운영하면서 어린이 포교에도 애정을 쏟고 있다. 1982년에 창단된 은적사 룸비니 합창단은 대구 지역에 부처님의 음성 공양을 널리 전하고 전파하는 데 큰 역할을 하고 있다. 2005년부터 미혼모를 위한 산사음악회와 한문학당도 개설하여 운영하고 있다. 은적사에서는 매년 봄·가을 두 차례 불교에 입문하는 불자들을 위하여 불교 기초 입문 과정을 운영하고 있다. 은적사는 지역 내 경제적으로 어려운 대학생들에게 장학금을 지급하고, 매년 연말이면 각종 성금을 기탁하기도 한다.

[현황(조직,시설 현황 포함)]

은적사의 당우는 중심 불전인 대웅전과 삼성각, 설법전, 요사(寮舍)인 법해당, 종무소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대웅전은 정면 3칸, 측면 3칸의 다포식 팔작 기와지붕 구조이며, 대웅전 내부에는 17세기에 봉안한 대구 은적사 목조석가여래좌상(大邱隱跡寺木造釋迦如來坐像)이 닫집 아래 불단에 봉안되어 있다. 목조석가여래좌상 뒤 벽면에는 후불탱화인 영산회상도와 좌·우에 지장탱화와 신중탱화가 봉안되어 있으며, 동종 1구가 있다. 후불탱화는 근래에 조성하였고, 지장탱화는 1888년(고종 25)에 우송(友松) 금어가 조성하였는데, 크기는 가로 131.5㎝, 세로 111.5㎝이다. 신중탱화는 1958년에, 동종은 1995년에 조성하였다.

삼성각은 정면과 측면이 각 1칸인 맞배 기와지붕 구조이며, 내부에는 근래에 조성한 목각 칠성탱·산신탱·독성탱이 봉안되어 있다. 설법전은 정면 3칸, 측면 2칸의 팔작 기와지붕 구조로, 대웅전 마당에서 보면 단층이나 앞쪽에서 보면 2층 구조이며 아래층은 공양간이다. 승려들의 수행 공간인 법해당은 정면 5칸, 측면 2칸의 팔작 기와지붕 구조이며, 종무소를 겸하는 요사는 정면 3칸, 측면 2칸의 팔작 기와지붕 구조로 되어 있다.

[관련 문화재]

은적사에 있는 대구 은적사 목조석가여래좌상은 2015년 5월 11일에 대구광역시 유형문화재 제72호로 지정되었다. 그 후 2021년 6월 29일 「문화재보호법시행령」 개정에 따라 지정 번호가 삭제되었다. 대구 은적사 목조석가여래좌상은 대웅전에 봉안되어 있는 불상으로 항마촉지인(降魔觸地印)을 한 석가모니불이다. 나발(螺髮)에 중간 계주와 정상 계주를 표현하였고, 양 미간에는 백호(白毫)가 보이고 상호는 원만상이다. 귀는 길고 목에는 삼도(三道)가 보인다. 법의(法衣)는 통견이며 승각기(僧脚崎) 매듭은 일자형이다. 오른손은 항마촉지인이며 왼손은 미타인수인으로 19세기 석가여래에 통용되는 수인이다.

대구 은적사 목조석가여래좌상은 양식적으로 보아 조선 후기 조각승(彫刻僧) 하천(夏天)의 작품으로 추정된다. 정확한 조각가와 제작 시기를 알려 줄 문자 기록은 발견되지 않았지만 작품의 완성도가 높으며, 18세기 초반 불상의 제작 방식의 일단을 드러내고 있는 중요한 불상이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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