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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6400692
한자 鑛工業
영어공식명칭 Mining and Manufacturing Industries
분야 정치·경제·사회/경제·산업
유형 개념 용어/개념 용어(일반)
지역 충청남도 당진시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한창준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특기 사항 시기/일시 1991년 12월 - 석문국가산업단지 국가공업단지로 지정

[정의]

충청남도 당진시에서 원료를 인력이나 기계력으로 가공하여 유용한 물자를 만드는 산업.

[개설]

2000년대에 들어오면서 당진은 농업 중심의 산업에서 공업[제조업] 중심의 지역으로 급격히 변모하였다. 그 원인은 서해안 고속 도로와 당진 대전 간 고속 도로가 개통되고 당진 평택항의 항만 시설이 개발되면서 수도권과 1시간대의 접근성이 확보되고 육로와 해상의 인프라가 구축되면서 물류 비용을 절감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로 인하여 2005년 107개, 2006년 105개, 2007년 270개, 2008년 160개, 2009년 194개 2010년 101개, 2011년 67개, 2012년 85개, 2013년 50개, 2014년 82개 등의 기업이 입주해 2014년 기준 당진시에 등록된 788개 제조업체가 사업을 하고 있다. 현재 당진은 충청남도의 서북부 공업 벨트의 중심으로 부상해 있다.

또한 한보 철강 부도 후 현대 제철이 인수하고 현대 제철이 고로 3기를 가동하는 한편, 이와 관련된 기업 입주와 동부 제철, 동국 제강, 환영 철강, 휴스틸 등의 철강 관련 대기업이 공장을 증설하고 가동하면서 당진의 철강 생산량은 2013년 기준 3억 2212만 톤 조강 능력을 갖추고 있어 포항이나 광양보다 많은 조강 능력을 갖추게 되었다. 당진은 철강 도시로 급격히 변모하였다. 788개의 등록된 공장 중 철강업은 349개, 자동차·기계 운송업은 189개, 전기·화학 기타 공장은 250개로 44%가 철강 관련 공장인 것으로 나타났다.

[공업의 발달]

당진시는 충청남도의 북단부에 위치한 해안 지대로 평야가 발달하여 농업이 주산업을 이루었고, 공업이 발달하지 못했다. 1980년 초에 도정 공장 6개소가 공장의 전부였고, 1990년대 초까지 탈곡기를 만들거나 기타 농기구를 제작하는 수준의 제조업이 대부분이었다. 1990년대 후반에 섬유 수공업 공장이 생겼고, 이곳에 종사하는 인구가 증가했다.

1990년대 이후는 농공 단지를 중심으로 기업다운 기업이 정착되기 시작하였으며, 이에 따라 근로자의 수가 급격히 증가했다. 1993년도 당진에서 공장이 가장 많은 곳은 신평면으로 30개의 공장과 2,080명의 종업원이 있었고, 순성면은 22개의 공장과 2,205명으로 가장 많은 근무자가 있었다. 즉, 당진의 총종업원 과반수가 신평과 순성에 근무하고 있었고, 이 지역에 노동 집약적 공장이 많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1995년 5개의 농공 단지에 총 40개의 업체의 입주가 계획되어 있었다. 준공은 합덕 농공 단지가 12개로 가장 많았고, 면천 농공 단지가 7개, 신평 농공 단지 3개, 석문 농공 단지 1개 기업으로 총 28개 업체가 입주되고 그중 20개 업체가 가동된 상태였다.

1991년 12월 국가 공업 단지로 지정된 석문 국가 산업 단지는 충청남도가 사업 시행자로 지정되었으나 적당한 개발 사업자를 찾지 못하였다. 그 후 한국 토지 주택 공사가 2013년 12월에 완공하여 화학 물질 및 화학 제품 제조업, 1차 금속 제조업, 전기 장비 제조업, 기타 기계 및 장비 제조업, 자동차 및 제조업, 기타 운송 장비 제조업 등에 분양하고 있다.

[공업의 위기]

1980년 삽교호 방조제와 아산호 방조제의 준공으로 호수와 농토로 변화하였고, 1979년 12월 14일 건설부에서 고시한 산업 기지 개발 구역 지정으로 당진 평택항의 항계가 시작되어 지금의 평택항과 당진항이 만들어지는 과정이 시작되었다. 고대·부곡 단지[당진시 송악읍 일원]가 산업 단지의 수요 증대와 해상 화물 증가에 따른 대처, 수도권 이전 공장을 수용하여 수도권 정비 목적으로 1991년 4월 30일에 지정되면서 산업 단지가 조성되었다. 1999년 1월 20일 아산 국가 산업 단지 고대 지구가, 2000년 12월 29일 부곡 지구가 준공되었으나 당시 한국은 국제 통화 기금[IMF] 경제 위기 기간 중이었다.

국내의 철강 수요와 미래 중추 산업의 핵심이 되는 고로에서 생산되는 고급 철강재 확보를 위한 냉연 공장과 고로 공장을 자금난으로 준공하지 못하였고, 부도로 인하여 지역 경제에 큰 영향을 주었다.

[현황]

서해 대교는 국토 계획 및 경제 개발에서 소외된 서해안 지역의 관광, 간척 지원, 용수, 토지 등 개발 잠재력을 제고하고 국토의 개발을 도모하기 위하여 건설되었다. 2000년 11월 완공되면서 북부 해안을 중심으로 산업 단지가 형성되기 시작했다. 2000년도가 지나 기업 경기가 살아나면서 당진 지역이 수도권 주변에서 이전하기 좋은 지역으로 부상하기 시작하였다. 그 원인은 수도권과 1시간대의 고속 도로 개통과 항만 개발이 가시화되었기 때문이다. 2004년 INI 스틸 주식 회사를 2006년 현대 제철 주식 회사로 변경하고 현대 제철이 한보 철강 공업을 인수하고, 아산 국가 산업 단지동부 제철 주식 회사, 동국 제강 주식 회사가 열연 공장, 봉강 공장, 후판 공장을 신설하였다. 고대·부곡 단지는 대구역을 소분할하여 100여 개의 중소기업을 유치하였다.

현대 제철이 고로 1기, 2기, 3기를 건설하여 일관 제철소로 변하면서 일반 산업 단지가 조성되었고, 이와 관련된 기업이 당진으로 입주하기 시작하면서 당진은 철강 산업 단지로 변모하였다. 이러한 과정은 특히 2005년부터 2010년까지 매년 100개 이상의 기업체를 유치한 결과를 보면 알 수 있다.

수도권 규제 완화 정잭으로 인해 2010년부터 기업 유치는 급격하게 줄어들었으나 석문 국가 산업 단지 분양 등 당진에 산업 단지가 준공됨으로써 다시금 기업들의 입주가 증가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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