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170240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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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助王洞傳說 |
영어의미역 | Legend of Jowang-dong |
분야 | 구비 전승·언어·문학/구비 전승 |
유형 | 작품/설화 |
지역 | 충청남도 공주시 우성면 동곡리 조왕동 |
집필자 | 이은칠 |
[정의]
충청남도 공주시 우성면 동곡리에서 조왕골이라는 마을과 관련하여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
[채록/수집상황]
1965년 5월 6일 임헌도 교수가 채록하여 『한국전설대관』(정연사, 1973)에 수록하였다. 제보자는 공주시 우성면 동곡리 노경종(남)이다.
[내용]
지금부터 300여 년 전 이괄의 난이 일어났을 때의 일이다. 인조는 이괄의 난을 피하기 위하여 한양을 버리고 남쪽으로 피란을 떠났다. 인조는 공주 가까이 오면서부터 옷차림을 누구도 알 수 없도록 평복 차림으로 변장하고, 신하도 한 사람만 거느리고 길을 걸었다. 난리가 일어나서 민심이 흉흉해진 당시 사람들은 이런 임금을 알아볼 리도 없었고, 누구하나 따뜻하게 맞이해주는 사람도 없었다. 그것도 그럴 것이 연일 들이닥치는 피란민들 때문에 그들을 모두 치다꺼리 한다는 것은 참으로 어려운 일이었다.
인조는 신하와 함께 남쪽으로 계속 내려오며 해가 지면 아무 마을이나 들어가 구걸을 했고, 아무 데나 자리를 마련하여 잠을 잤다. 그리하여 걷고 걸어서 당도한 곳이 공주시 우성면 동곡리였다. 인조는 신하와 함께 이 집 저 집 기웃대다가 노숙이라고 문패를 단 어느 부잣집으로 들어갔다.
노숙이라는 사람은 부자이기도 하지만 마음씨가 착해서 옷차림이 좋은 사람이나 행색이 초라한 사람을 차별하지 않고 모두 따뜻하게 집안으로 맞이하여 피란민들을 도와주었다. 그의 부친은 노응호(盧應晧)라는 사람인데, 임진왜란 때 왜구와 싸워 청주에서 크게 이기고 금산에서 전사한 충신이었다. 노숙 또한 훌륭한 가계의 후손인지라 어질고 착하여 마을 사람이 모두 우러러보았다. 인조는 노숙의 집에서 지친 몸을 며칠간 쉬면서 피로를 풀었다.
이괄의 난이 평정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한양으로 돌아간 인조는 어지러웠던 사회를 바로잡고, 난리로 인해 파괴된 곳을 복구하여 나라의 기틀을 바로잡았다. 피란했을 때 그를 따뜻하게 맞이한 노숙에게 벼슬을 내리고, 노숙이 사는 마을 동곡리를 ‘조왕동’이라 부르게 하였으며, 금배옥적을 하사하였다고 한다. 이처럼 임금을 도운 마을이라는 전설에서 지금도 동곡리를 조왕동이라고 부르고 있다. 지금도 노숙의 후손들이 많이 살고 있다.
[모티프 분석]
「조왕동 전설」은 지명에 얽힌 유래를 설명하는 설명전설로, 임금을 잘 섬겨 후에 상을 받는 모티프라고 할 수 있다. 또한 「조왕동 전설」은 이괄의 난이라는 역사적 사실과 연관되는 역사적 전설의 성격도 동시에 지닌다. 조상을 잘 섬기면 복을 받는다는 고유 신앙이 우리 민족에게 깃들어 있듯이, 백성 된 도리로 임금을 잘 섬기는 것 또한 고유한 사상으로 여겨왔음을 알 수 있다. 「조왕동 전설」에서도 임금을 잘 섬겨 얻게 된 ‘조왕동’이란 마을 유래를 자랑스럽게 여긴다는 것을 알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