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620108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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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咸安邑 敎會 |
영어공식명칭 | Hamaneup Presbyterian Church |
분야 | 종교/기독교 |
유형 | 기관 단체/기관 단체(일반) |
지역 | 경상남도 함안군 함안면 봉성4길 26-8[봉성리 903] |
시대 | 근대/개항기,현대/현대 |
집필자 | 조규통 |
[정의]
경상남도 함안군 함안면 봉성리에 있는 대한예수교장로회(고신) 소속 교회.
[설립 목적]
함안읍 교회는 경상남도 함안 지역의 영혼 구원, 청소년 교육을 통한 지역 봉사, 미자립 교회 및 선교사 사역에 동참하기 위해 설립되었다.
[변천]
함안읍 교회는 1906년 2월 8일 사립 안신 학교(私立安信學校)와 같이 경상남도 함안군 함안면 봉성리 903번지에서 설립되었다. 『조선 예수교 장로회 사기』에는 “함안군 읍교회(咸安郡邑敎會)가 성립하다. 선시(先是)에 선교사 왕길지(王吉志)와 전도인 박성태(朴聖泰)와 조사(助師) 정덕생(鄭德生)·김상율(金尙律)의 전도로 조동찬(趙東燦)·조동락(趙東洛)·조동벽(趙東璧)이 신종(信從)하고, 김상율의 사택에 회집(會集)하다가 초옥(草屋)을 매수하야 예배하며, 전도한 결과 본군(本郡) 객사고재(客舍古材)를 매수하야, 봉성리(鳳城里)에 예배당을 건축하랴. 난중(中) 조주한(趙周漢)은 답(畓) 2두락(二斗落)을 예배당 부지로 기부하야 반양제(半洋製)로 건축하매 교인이 200여 명에 달(達)하니라.”라고 교회 설립 당시의 사정이 전해진다. 또한 함안읍 교회 연혁에는 “조주한(趙周漢)이 희사한 답(沓) 630평[현재 함안읍 교회 대지, 2,079㎡] 내에 교사(校舍)를 건축하였다. 1906년 2월 8일에 함안 사립 안신 학교와 함안읍 교회를 발족 운영하여 오든 중에 일제의 사립 학교 정책에 따라 사립 안신 학교는 폐교(廢校) 처분을 받고, 함안읍 교회만으로 존속·유지하게 되었다.”고 기록되어 있다.
교회 설립과 함께 운영한 사립 학교는 일제에 의해 강제적으로 폐지되었다. 1924년경에는 함안읍 교회 주일 학교가 운영되었다. 주일 학교는 창립 5년을 맞이한 1924년 3월경에 집사 김봉찬이 교수(敎授)하였고, 150여 명에 달하는 남녀 학생이 수학하였다.
6·25 전쟁 중인 1950년에는 북한군이 함안읍에서 가까운 여항산(艅航山) 부근까지 주둔함에 따라 함안 읍민이 40여 일 동안 마산이나 김해 등지로 피난을 갔고 교회당이 파손되었다. 같은 해에 교인들은 피난에서 돌아오자마자 타지 않고 남은 자재들까지 동원하여 6·25 전쟁으로 파손된 교회당을 재건축하기 시작해서 1951년 3월에 완공하였다. 1959년 9월에도 태풍 사라로 인해 교회당이 일부가 파손되어 부분적으로 재건축을 시작하여 1961년에 완료하였다. 이후 1977년과 1999년에 예배당을 다시 건축하여 현재의 모습으로 바뀌었다. 2005년 9월에는 지역 청소년 교육을 위한 시설로 교육관까지 갖추게 되었다.
[주요 사업과 업무(활동 사항)]
함안읍 교회는 교회 선교 활동을 위해 연 1, 2회에 걸쳐 선교 지역 탐방을 시행하고 있다. 교회 내 주일 학교 운영과 남녀 전도회를 통해 구제와 봉사 활동에도 주력하고 있다. 아울러 2011년 부임한 담당 교역자와 교육 간사를 중심으로 지역 선교와 청소년 교육을 위한 프로그램을 통해 건강한 교회 운영을 지향하고 있다.
일요일 오전 11시에 주일 오전 예배, 일요일 오후 2시 30분에 주일 오후 예배, 수요일 오후 7시에 수요 기도회, 매일 오전 5시에 새벽 기도회가 각각 열린다. 그리고 일요일 오전 9시에 유·초등부 오전 예배가, 일요일 오후 12시 40분에 유·초등부 오후 예배가 있다.
[현황]
담임 목사 1명, 원로 목사 1명, 교육 간사 1명 등의 교역자와 시무 장로 1명, 원로 장로 1명, 은퇴 장로 1명 등이 활동하고 있다.
[의의와 평가]
함안읍 교회는 교회 설립과 함께 '안신 학교'라는 사립 학교를 교회가 직접 운영하면서 교육을 통한 봉사를 병행하는 등 교회의 지역민들에 대한 애민 정신을 잘 보여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