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200035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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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金谷書院 |
영어음역 | Geumgok Seowon |
분야 | 종교/유교,문화유산/유형 유산 |
유형 | 유적/건물 |
지역 | 충청남도 논산시 연무읍 금곡리 286 |
시대 | 조선/조선 |
집필자 | 이해준 |
문화재 지정 일시 | 1984년 5월 17일 - 금곡서원 충청남도 문화재자료 제78호 지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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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재 지정 일시 | 2021년 11월 19일 - 금곡서원 충청남도 문화재자료 재지정 |
성격 | 서원 |
건립시기/일시 | 1687년 |
정면칸수 | 사우 3칸|동재 2칸|서재 2칸|고직사 4칸|전사청 3칸 |
소재지 주소 | 충청남도 논산시 연무읍 금곡리 286 |
문화재 지정번호 | 충청남도 문화재자료 |
[정의]
충청남도 논산시 연무읍 금곡리에 있는 조선 중기에 건립된 서원.
[개설]
금곡서원은 1682년(숙종 8) 기호사림의 종사였던 신독재 김집이 발의하였으며 노론의 거두인 송시열, 송준길 등이 추진하였다. 금곡서원 건립의 주도 인물들을 볼 때 서원의 건립은 기호사림, 또는 노론의 강력한 지지, 광산 김씨의 적극적인 지원이 있었음을 추측할 수 있다.
건물의 상량문을 지은 인물은 윤증으로, 건립에 소론의 협조 또한 있었던 것을 알 수 있다. 더불어 윤증은 상량문을 찬하며 영정을 봉안할 때 봉안제문까지 올렸다. 금곡서원의 건립이 노·소론을 망라한 범 기호적인 차원에서 추진되었음을 알 수 있다. 금곡서원에서는 김장생의 친족이자 문인인 만치당(萬癡堂) 김수남(金秀南)을 주향으로 하고, 성삼문(成三問)과 조계명(曺繼明)을 병향하고 있다.
[위치]
논산에서 전주 방향으로 국도 1호선을 타고 약 9.5㎞를 가다 보면 연무읍이 나온다. 여기에서 왼쪽으로 약 0.82㎞ 가다 보면 금곡리가 나온다. 금곡서원은 금곡리에서 연무역으로 가는 길목에 위치해 있다.
[변천]
금곡서원은 1687년(숙종 13) 김수남을 배향하는 금곡사를 그 시작으로 한다. 금곡사는 본래 은진현 가야곡 조정리에 세워졌는데, 1690년(숙종 16) 김수남의 유풍지(遺風地)인 현 위치로 이건되었다. 이와 함께 1781년(정조 5) 성삼문과 조계명을 추배하였다. 성삼문 묘소는 금곡서원에서 멀지 않은 곳에 있고, 조계명은 임란왜란 이후 은진 현감을 지냈기 때문에 제향된 것이 아닌가 싶다.
금곡서원은 처음에 사우로 창건되었다가 나중에 복설(復設)하면서 서원으로 바뀐 듯하다. 그 후 선현 배향과 지방 교육의 일익을 담당하여 오던 중 대원군의 서원 철폐령으로 1868년(고종 5)에 훼철되어, 서원 터에 설단(設壇)하고 춘추로 향사를 지내 오다 1977년 현재의 모습으로 복원되었다.
[형태]
금곡서원은 사우 3칸, 동재와 서재 각 2칸, H자형의 강당, 외삼문·내삼문, 고직사(庫直舍) 4칸, 전사청 3칸으로 이루어졌으며, 그 외에 김수남의 정문 및 충노(忠奴) 무작김의 불망비(不忘碑) 등이 있다. 사우 중앙에 위패가 배향되어 있으며, 전사청은 제향 때 제수(祭需)를 장만하여 두고 제기를 보관하는 장소로 사용하고 있다.
[현황]
금곡서원에서는 매년 음력 3월 3일과 9월 9일에 유림들이 모여 향사를 지내고 있다. 1984년 5월 17일 충청남도 문화재자료 제78호로 지정되었고, 2021년 11월 19일 문화재청 고시에 의해 문화재 지정번호가 폐지되어 충청남도 문화재자료로 재지정되었다.
[의의와 평가]
노론이 중심으로 지은 금곡서원의 상량문을 찬한 인물이 윤증이라는 점으로 보아 금곡 서원이 노론에 한정된 서원이 아니었음을 알 수 있어, 서원이 지어질 당시 당파간의 관계를 연구하는 데 도움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