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200073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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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寺刹 |
영어의미역 | Temple |
분야 | 종교/불교 |
유형 | 개념 용어/개념 용어(일반) |
지역 | 충청남도 논산시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이길구 |
[정의]
충청남도 논산시에서 불상을 모셔 놓고 불교 신행을 행하는 장소.
[개설]
사찰은 본래 불교가 발생한 인도에서 수행자들이 우기를 피해 한 곳에 모여 생활 하는 일조의 공동 주거지였다. 그러나 시대의 흐름에 따라 종교 의례를 행하는 성스러운 장소로 변모하였으며 절, 사원(寺院), 정사(精舍), 가람(伽藍)이라고도 한다. 사찰은 규모에 따라 사(寺)와 암(庵)으로 대별된다. 사(寺)는 여러 대중이 함께 거주하는 상대적으로 규모가 큰 절이며, 암(庵)은 한 사람 또는 소수의 대중이 거주하는 상대적으로 규모가 작은 절을 지칭한다. 사찰 중 민족문화의 유산으로서 역사적 의의를 가진 사찰을 특별히 전통사찰로 분류하기도 한다. 충청남도 논산 지역의 대표적인 전통사찰로는 개태사를 비롯하여 대한불교조계종 소속의 용암사·관촉사·쌍계사·송불암이 있다.
[개태사]
개태사(開泰寺)는 936년(태조 19) 고려 태조가 후백제를 정벌한 기념으로 연산 지역에 창건한 국가 사찰이다. 후삼국을 통일하고 고려를 개국하기까지 부처님의 은혜와 산신령의 도움이 컸다는 보답으로 4년여에 걸쳐 창건한 대가람이다. 현 개태사 경내에는 보물 제219호 개태사지 석불입상을 비롯해 충청남도 문화재자료 제274호인 개태사 오층석탑, 충청남도 문화재자료 제275호인 개태사지 석조(石槽), 충청남도 민속자료 제1호인 개태사 철확 등이 있다. 이들 유물은 모두 고려시대에 제작된 것으로 고려시대의 독특한 조각 양식과 분위기를 잘 표현해주고 있다.
한편 『고려사(高麗史)』나 『동국이상국집(東國李相國集)』에 의하면 개태사에 태조의 초상화를 모셨던 진전이 있어 나라의 변란이 발생할 시에는 제사를 지내거나 국가 대사에 대한 길흉을 물었던 사실도 기록되어 있다. 태조 이후에는 개경과 거리가 멀어 주목을 받지 못하다가 1376년(우왕 2)~1388년(우왕 14)에 이르기까지 여러 차례 왜구의 침입을 받아 개태사는 방화·약탈되었고 도원수 임인계가 개태사 전투에서 왜구를 맞아 싸우다가 죽자 개태사의 사세도 급격히 기울어지게 되었다. 이후 1934년에 여승 김광영이 땅속에 매몰되었던 삼존석불을 찾아 세우고 개태도광사(開泰道光寺)라 부르다가 다시 개태사로 고쳐 부르고 있다.
[관촉사]
대한불교 조계종 제6교구 본사인 마곡사의 말사(末寺)이며, 논산 시내에서 동남쪽으로 약 4㎞ 정도 떨어진 반야산 중턱에 위치하고 있다. 관촉사(灌燭寺)는 968년(광종 19)에 착공해 38년에 걸쳐 완성된 보물 제218호 관촉사 석조미륵보살입상으로 유명한 곳이다. 불상을 완성하여 세우자 미간의 백호에서 발한 빛이 사방을 비추고, 중국의 승려 지안(智眼)대사가 그 빛을 쫓아와 예불하면서 그 빛이 마치 촛불과 같다고 하여 절 이름을 ‘관촉사’라 부르게 되었다.
먼저 사찰 입구에 세워진 일주문과 사천왕문을 지나 계단을 따라 경내 입구에 이르면 관촉사 석문(石門)에 다다르게 된다. 석문 바로 정면에는 미륵전이 있으며, 그 뒤쪽으로 우리나라 최대의 석불인 관촉사 석조미륵보살입상(은진미륵)이 위치해 있다. 관촉사 사적비(寺蹟碑)에 의하면 1386년(우왕 12)에 법당(法堂)과 정문(正門)을 중건하였고, 1581년(선조 14)에는 백지(白只)가 중수하였으며, 1674년(현종 15)에는 지능이, 그리고 1735년(영조 11)에는 성능이 중수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현재 사역에 남아 있는 전각으로는 관음전과 삼성각·사명각·해탈문·현충각·대웅전 등을 들 수 있으며, 중요문화재로는 보물 제218호로 지정된 관촉사 석조미륵보살입상과 보물 제232호인 관촉사 석등, 충청남도 유형문화재 제53호인 관촉사 배례석, 충청남도 문화재자료 제79호인 관촉사 석문, 그 밖에 관촉사 석탑·관촉사 사적비 등이 있다.
[쌍계사]
쌍계사(雙溪寺)는 대한불교조계종 제6교구 본사인 마곡사(麻谷寺)의 말사이며 백암(白庵)이라는 이름으로도 불리어 진다. 쌍계사 중건비(重建碑)에 의하면 고려 때 행촌(杏村) 이임 선생의 발원으로 창건되었다고 하나 정확한 창건 연대와 창건자는 알려져 있지 않다.
절 입구에 세워진 쌍계사 중건비 비문에 의하면 쌍계사에는 극락전을 비롯하여 관음전, 선원, 동당, 서당, 명월당, 백설당, 장경각, 향로전, 해회(海會), 삼보, 요사 등이 500~600여 칸이 있을 정도로 한 때 호서 지방의 대가람이었다고 한다. 대웅전은 쌍계사의 중심 법전으로 언젠가 화재로 소실된 후 1716년(숙종 42)에 중창하였으나 1736년(영조 12) 11월 또다시 화재로 전소되어 1739년에 다시 중건하였다.
현재 쌍계사 입구에는 쌍계사 부도와 쌍계사 중건비가 자리하고 있으며 사찰 내는 대웅전을 중심으로 대웅전의 좌측에 나한전(羅漢殿)과 칠성각(七星閣)이 있다. 그리고 대웅전의 전면 좌측에 명부전과 우측에 요사가 배치되어 있고, 대웅전 전면에는 봉황루라는 강당이 위치하고 있다. 관련 문화재로는 보물 제408호인 쌍계사 대웅전, 충청남도 문화재자료 제80호인 쌍계사 부도, 쌍계사 중건비, 쌍계사 꽃창살문 등이 있으며, 공주(公州)의 갑사(甲寺)에 보관되고 있는 월인석보(月印釋譜)가 쌍계사에서 조판(造板)된 것이라 한다.
[용암사]
용암사(聳岩寺)는 대한불교조계종 마곡사의 말사로 논산시 강경읍 남단에 있는 채운산 기슭에 위치하고 있다. 660년(의자왕 20) 무렵 이 근처에 있던 낙안사(落雁寺)의 뒤를 이어 생긴 절이라고 하나 이를 입증할 만한 유물은 전하지 않는다. 고려 말에 옥녀봉(玉女峰)으로 옮겨 중창한 뒤 현재의 이름으로 바뀌었으나 5년 만에 부처의 계시를 받고 다시 본래의 자리로 옮겼다고 한다.
사역에 있는 불사 건물로는 대웅전과 칠성각, 요사가 있다. 대웅전은 앞면과 옆면 각 3칸씩 규모의 팔작지붕 건물로 안에는 석가삼존불을 주존으로 아미타불상과 지장보살상을 함께 모셨다. 각각의 불상 뒤로는 후불탱이 있는데 영산회상도와 지장탱은 1992년, 아미타불의 후불탱은 1936년에 조성하였다. 대웅전의 벽에는 1990년에 대웅전을 중건하고 그 시말과 참여자를 적은 ‘불전중건상량문’이 걸려 있다.
[송불암]
충청남도 논산시 연산면 연산리에 있는 대한불교조계종 소속 사찰로 송불암(松佛庵)이 위치한 자리에는 본래 고려시대부터 석불사라는 사찰이 있었으나 임진왜란 때 불타 없어졌다고 한다. 이후 1946년 충청남도 논산시 연산면 신양리에 살았던 동상태의 모친이 2칸의 민가로 송불암을 창건하였으며, 1970년대부터 승려 경연이 주지를 맡고 있다. 그리고 송불암이라는 명칭은 미륵불 바로 옆의 노송이 불상과 조화를 이루며 지붕처럼 퍼져 있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대웅전과 요사채로만 구성된 단촐한 도량으로 대웅전은 정면 3칸, 측면 3칸 크기의 맞배지붕으로 되어 있다. 또한 사찰의 동쪽에는 1984년에 충청남도 문화재자료 제83호로 지정된 송불암 미륵불이 있다. 송불암 미륵불은 고려 후기에서 조선 전기 사이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되며 화강석으로 조성된 높이 4.25m, 둘레 1m의 미륵입불로 머리에는 4각의 보관이 씌어 있다. 얼굴은 둥그스름하게 표현되어 있고 비교적 길게 늘어진 귀가 있으나 목이 길어 얼굴 부위에만 표현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