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200148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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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彩雲面獨立萬歲運動 |
영어의미역 | Hurrah Movement for Independence in Chaeun-myeon |
분야 | 역사/근현대 |
유형 | 사건/사건·사고와 사회 운동 |
지역 | 충청남도 논산시 채운면 |
시대 | 근대/근대 |
집필자 | 김진호 |
[정의]
일제강점기 충청남도 논산시 채운면에서 전개된 독립만세운동.
[개설]
채운면 독립만세운동은 채운면 인사들이 1919년 3월의 강경읍내 시장에서의 독립만세운동에 이어 채운면 면민들과 함께 고창한 독립만세운동이다.
[역사적 배경]
1910년 경술국치 이후 10년에 걸쳐 일제는 조선총독부의 설치와 더불어 헌병경찰제를 통한 무력을 앞세워 조선에 대한 식민지 직접 통치를 단행하였다. 이에 조선에서는 일제 식민 통치에 대항하는 항일 독립 정신이 지속적으로 고취되고 있었으며 때마침 제1차 세계대전 전후의 국제질서 재편 과정에서 대두된 민족자결주의의 영향으로 더욱 큰 자극을 받게 되었다. 여기에 고종의 붕어가 결정적인 기폭제가 되어 1919년 3월 1일 민족대표 33인의 명의로 독립선언서가 발표됨과 더불어 전국적으로 독립만세운동이 전개되면서 충청남도 논산의 채운면 인사들 및 주민들도 이에 적극 동참하기에 이르렀다.
[경과]
1919년 3·1운동의 전국적인 확산과 더불어 송재기(宋在紀)·이근석(李根奭)·이근오(李根五)·이봉세(李鳳世) 등의 충청남도 논산의 채운면의 인사들도 이에 호응하는 독립만세운동의 필요성을 절감하였다. 그리고 같은 해 3월 16일 송재기의 권유로 이근석·이근오(李根五)·이봉세 등이 3월 20일 논산 강경시장에서 함께 ‘조선독립만세’를 고창할 것을 결의하고 17·18일 양일간에 걸쳐 태극기 360본(本)을 제작하였다.
이어 20일이 되자 강경시장의 군중을 이끌고 10시 경에 시장 부근의 옥녀봉(玉女峰)으로 올라가 ‘조선독립만세’를 고창하면서 다시 시장으로 하산한 후 군중에게 태극기를 나누어 줌과 동시에 만서정(萬西町)으로 행진하였다. 그리고 수일 뒤에는 다시 이근석이 윤병삼(尹炳三)·윤종철(尹鍾哲)·설인수(薛仁洙) 등과 함께 신암리와 화정리(花亭里) 마을 주민 70여 명을 이끌고 횃불을 올리고 독립만세를 고창하는 횃불만세운동도 전개하였다.
[결과]
충청남도 논산의 채운면 독립만세운동의 결과 이를 주도한 채운면의 주요 인사들이 보안법 위반 혐의로 일제에 체포되어 공주지방법원에서 재판을 받았다. 재판 결과 송재기는 징역 1년 6월, 이근석은 징역 1년 2월, 이봉세와 이근오는 징역 1년을 각각 선고받았으나 경성복심법원에 항고하였다. 항고 결과 송재기는 징역 1년, 이근석은 징역 10월, 이봉세와 이근오는 징역 8월로 각각 감형되었으나 이에 불복하여 다시 상고하였다. 그러나 모두 기각되어 옥고를 치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