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200218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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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行喪- |
영어음역 | Haengsangbawi |
이칭/별칭 | 「상여바위」 |
분야 | 구비 전승·언어·문학/구비 전승 |
유형 | 작품/설화 |
지역 | 충청남도 논산시 상월면 대명리 |
시대 | 고려/고려 후기,조선/조선 전기 |
집필자 | 박종익 |
[정의]
충청남도 논산시 상월면 대명리에서 행상바위와 관련하여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
[개설]
「행상바위」는 고려가 망하자 상월면 사잣골에서 은거하던 선비가 아들 셋이 조선의 신하가 되려고 과거에 급제하자 자식들의 앞길을 막지 않으려고 자결을 한다는 절의담이다. 운구 도중에 벼락을 맞아 세 아들이 죽고 그 자리에 상여를 따라가는 듯한 모습의 바위가 생겼는데 이를 행상바위라고 부른다는 지명유래담이 붙어 있다.
[채록/수집상황]
1988년 논산문화원에서 간행한 『놀뫼의 전설』에 실려 있다.
[내용]
고려 후기 조정은 참으로 어수선하여 중신들 사이에는 서로의 암투가 그치질 않았다. 나라가 이 꼴이 되자 백성들의 불평은 날로 늘어만 갔고, 이틈에 고려의 장수였던 이성계는 고려를 멸망시키고 조선을 건설하였다. 고려의 중신인 선비가 나라가 망하자 불사이군(不事二君)의 절의를 지키기 위해 지금의 상월 사잣골에 은거하였다.
그는 이곳에서 아들 셋을 두고 살았다. 아이들이 모두 총명하고 학문에 능하였으나 조선의 신하로 만들 수 없다고 생각하였다. 어느 날, 계룡산에 사는 승려가 찾아왔다. 선비의 자식들을 본 승려가 선비에게, “자제분들을 가르쳐 보겠습니다.”라고 하였다. 선비는, “가르치되 조선의 관헌이 되게 하지는 않겠다.”고 하였다.
선비의 세 아들이 승려를 따라 계룡산의 사찰로 들어갔다. 그리고 여러 해 동안 승려에게 수학하여 어느덧 높은 경지의 학문을 갖추게 되었다. 세 아들은 세상에 나가 뜻을 펼쳐보고 싶었다. 하지만 아버지가 허락하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버지는 언제나, “너희들은 고려의 신하다. 고려에 충성해야 한다.”고 하였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세 아들은 아버지 말씀에 의문을 갖기 시작하였다. 세상이 변하였는데 망한 고려만을 따를 수 없다고 생각하였다. 그래서 세 아들은 아버지 몰래 과거를 보았고 삼형제가 나란히 과거에 합격하였다. 이 소식을 들은 선비는 한 집에서 두 임금을 섬기게 된 것을 통탄하고, 자신이 살아있으면 자식들의 앞길을 막을 것이라고 생각하여 자결하였다.
세 아들은 아버지가 돌아간 것을 원망하면서 장례를 준비하였다. 발인 날 상여가 집을 나서는데 하늘에 먹구름이 끼더니 비가 오기 시작하였다. 상여가 산 능선을 지날 때였다. 갑자기 천지가 깜깜해지고 번개가 번쩍번쩍 하면서 벼락이 내리치더니 뒤따르던 세 아들이 그 자리에서 죽었다. 그런데 그 자리에 세 아들의 시체는 없고 상여모습을 한 바위와 상여 뒤를 따르는 듯한 바위가 솟아 있었다. 이때부터 사람들은 이 바위를 행상바위 또는 상여바위라 불렀다고 한다.
[모티프 분석]
「행상바위」의 주요 모티프는 불사이군(不事二君)의 절의이다. 고려의 옛 군주를 따르려는 아버지와 조선이라는 새로운 시대에 자신의 뜻을 펼쳐보려는 자식들 사이의 갈등이 나타난다. 「행상바위」는 전통적 가치에 비중을 두어 자식들의 행위가 아버지의 뜻을 꺾은 것이며, 또한 죽음으로 몰아간 불효라는 관점을 취하고 있다. 이에 벼락을 내려 바위로 변하게 하였다는 폭력적 징계의 결말구조를 보여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