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090189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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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忠烈書院先生案 |
영어음역 | Chungnyeol Seowon Seonsaengan |
영어의미역 | The Directory of the Masters of the Chungnyeol Confucian Academy |
이칭/별칭 | 원장선생안(院長先生案) |
분야 | 종교/유교,문화유산/기록 유산 |
유형 | 문헌/전적 |
지역 | 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모현읍 능원리 |
시대 | 조선/조선 |
집필자 | 이인영 |
[정의]
조선 중기부터 조선 후기까지 충렬서원 역대 원장을 기록한 책첩.
[개설]
충렬서원은 고려 말기의 문신 정몽주(鄭夢周)[1337~1392]를 배향한 서원으로, 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모현읍 능원리에 있다. 1609년(광해군 1)에 사액되었으나 흥선대원군의 서원철폐령으로 없어졌다가 1921년에 복원되었다. 『충렬서원 선생안(忠烈書院 先生案)』은 대원군의 서원철폐령으로 서원이 훼철되기까지 충렬서원의 원장으로 재임하였던 42명의 인적사항과 재임기간을 기록한 책첩(冊帖)이다. 이에 기록된 인물들은 한결같이 당대 명망 있는 석학이며 거유이자 명신들로서 서원의 위상과 권위에 중량감을 느끼게 한다.
[형태]
필사본으로, 저지 배접본이다. 표지는 비단으로 배접되어 있고, 좌측 상단에 원장선생안(院長先生案)이란 표제가 있다. 책첩을 열면 각 면에 붉은 단선 4주를 돌렸고, 반곽에 계선을 두고 한 면에 다섯 명씩 명단을 기록하였다. 하단에는 재임기간의 간지가 있다.
[구성/내용]
첫 장을 넘기면 월사(月沙) 이정구(李廷龜)[1564~1635]부터 오윤겸(吳允謙)·조익·이경석(李景奭)·김육·심지원·홍중보·홍명하(洪命夏)·조복양(趙復陽)에 이르기까지는 명단만 기록되어 있으나, 우암(尤庵) 송시열(宋時烈)[1607~1689]부터 마지막으로 기록된 이경재까지는 재임기간이 명시되어 있다. 42명의 원장 중 최장기 원장을 역임한 사람은 권상하(21년)이고 최단기는 영의정을 지낸 정호(鄭澔)(1년)이다.
직위별로는 정승이 19인, 판서 11인, 참판 2인, 좨주 1인, 도암(陶菴) 이재(李縡)를 비롯한 선생 호칭의 학자가 9인이다. 마지막 장에 이경재가 재직한 임자년(1852)까지는 연기가 밝혀지고 있으나 이로부터 12년 후, 즉 1864년 대원군 집정 이후 서원철폐령과 함께 선생안의 기록 역시 종지부를 찍는다.
[의의와 평가]
『충렬서원 선생안』이 발견됨으로써 『충렬서원 중수록(忠烈書院 重修錄)』 첫머리에 나타나는 서원중건추진위원장으로 기록된 이경석 이전에 이미 이정구, 오윤겸, 조익으로 이어지는 상국(정승) 역임자 삼 인이 더 있었다는 사실이 입증되었다. 충렬서원 원장으로 관계하였던 인물들은 대개 기호학파의 인물들이자 노론 계열이 주축을 이루고 있다는 점이 특이한데, 이로써 충렬서원 선비들은 대개 노론 성향이 짙었을 것이라는 점이 이 한 권의 기록에서 감지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