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090188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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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忠烈書院 |
영어음역 | Chungnyeol Seowon |
영어의미역 | Chungnyeol Confucian Academy |
분야 | 종교/유교,문화유산/유형 유산 |
유형 | 유적/건물 |
지역 | 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모현읍 능원리 118-1[충렬로 9-19] |
시대 | 조선/조선 |
집필자 | 양윤식 |
문화재 지정 일시 | 1972년 5월 4일 - 충렬서원 경기도 유형문화재 제9호 지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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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재 지정 일시 | 2021년 11월 19일 - 충렬서원 경기도 유형문화재 재지정 |
성격 | 서원 |
양식 | 전학후묘 |
건립시기/일시 | 1576년(선조 9) |
정면칸수 | 사당 3칸|강당 4칸 |
측면칸수 | 사당 2칸|강당 2칸 |
소재지 주소 | 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모현읍 능원리 118-1[충렬로 9-19] |
소유자 | 충렬서원 |
문화재 지정 번호 | 경기도 유형문화재 |
[정의]
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모현읍 능원리에 있는 조선 중기 서원.
[개설]
충렬서원은 고려 후기의 충신이자 동방 성리학의 시조로 불리는 포은(圃隱) 정몽주(鄭夢周)[1337~1392]의 학덕과 충절을 기리기 위하여 조선 중기인 1576년(선조 9)에 지은 서원 건물이다. 그후 마을 이름도 충신을 사모한다고 해서 ‘모현면[현 모현읍]’으로, 정몽주의 묘소와 서원이 있다고 해서 ‘능원리’로 이름붙였다.
[위치]
용인시 처인구 모현읍 능원리 마을 뒤쪽의 야산 기슭에 동남향으로 자리하고 있다. 전면에는 문수산, 뒤로는 불곡산, 좌로는 문형산, 우로는 법화산이 위치하여 경관이 수려하다.
[변천]
충렬서원은 1576년(조선 선조 9)에 이계(李棨)·이지(李贄)를 비롯한 지방 유림의 공의로 정몽주(鄭夢周)와 조광조(趙光祖)의 학덕과 충절을 추모하기 위해 창건하여 위패를 모셨다. 처음에는 정몽주와 조광조의 묘소 중간 지역인 지금의 죽전동에 세웠으며, 서원 이름도 죽전서원(竹田書院)이라고 불렀다. 임진왜란 때 서원 건물이 회진되자 1605년(선조 38)에 경기도관찰사 이정구(李廷龜)가 현감 정종선(鄭從善)·이시윤(李時尹) 등과 논의하여 정몽주의 묘소 아래에 서원을 중건하였다.
3년여의 공사 끝에 사우 3칸, 동 서재 각 2칸, 문루(門樓) 3칸을 지었다. 이때 조광조의 위패는 심곡서원(深谷書院)으로 옮겨 배향하였다. 중창과 함께 1609년(광해군 1)에 ‘충렬(忠烈)’이라 사액되었으며, 설곡(雪谷) 정보(鄭保)와 죽창(竹窓) 이시직(李時稷)을 추가 배향하였다. 1706년[숙종 32]에 다시 후손 정제두(鄭齊斗)·정찬조(鄭纘祖)를 비롯한 여러 유림의 공의로 옛터에서 조금 서쪽인 지금의 위치로 이건하였다.
그후 선현 배향과 지방 교육의 일익을 담당하여 오던 중, 1871년(고종 8)에 대원군의 서원철폐령으로 훼철되었다. 이어 1911년에 유림에서 사우를 중건하고, 1956년에는 강당을 복원하였다. 1972년에 문화재로 지정되면서 사당을 전면 보수하고, 강당 및 내삼문을 해체 중건하였으며, 1975년에 홍살문과 외삼문을 신설하여 오늘에 이른다.
[형태]
앞쪽에 강당을 배치하고 사당을 뒤쪽에 배치한 전학후묘의 양식을 따르고 있다. 입구의 홍살문과 내삼문·외삼문·사당이 거의 일직선으로 배치되어 있지만, 강당이 축에서 벗어나 사당과 나란히 보이는 점이 특이하다. 재실·장서각·교직사 등 부속건물이 없이 사당과 강당만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이는 18세기 이후에 서원이 교육적 기능은 사라지고 제사 기능 중심의 시설로 바뀌어 갔음을 보여준다. 경내에는 6칸의 사우, 내삼문, 외삼문, 동서 협문, 중앙의 마루와 양쪽 협실로 된 8칸의 강당 등이 있다. 서원 입구에는 홍살문을 세웠다.
[현황]
사우에는 정몽주를 주벽으로 하여 좌우에 정보와 이시직의 위패를 배향하였다. 매년 3월 중정과 9월 중정에 향사를 지내고 있으며, 제품(祭品)은 5변 5두이다. 1972년 5월 4일 경기도 유형문화재 제9호로 지정되었고, 2021년 11월 19일 문화재청 고시에 의해 문화재 지정번호가 폐지되어 경기도 유형문화재로 재지정되었다. 현재 충렬서원 안에는 1605년에 쓰여진 서원 중수기록인 『충렬서원 중수록(忠烈書院 重修錄)』과 정몽주의 문집인 『유한집(遺翰集)』 등이 보존되어 있다.
일제강점기에 능원리 주민들의 조직인 보린회에서 충렬서원에 강습소를 열고 초등교육을 실시하여 모현 교육 발전에 기여하였다.
[의의와 평가]
강당과 사당만으로 이루어진 소규모 서원의 형식을 잘 보여주고 있는 건축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