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240154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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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金圭植 |
영어음역 | Gim Gyusik |
분야 |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
유형 | 인물/의병·독립운동가 |
지역 | 경상북도 안동시 임하면 천전리 |
시대 | 근대/근대 |
집필자 | 강윤정 |
성격 | 독립운동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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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신지 | 경상북도 안동시 임하면 천전리 |
성별 | 남 |
생년 | 1880년 |
몰년 | 1945년 |
본관 | 의성 |
대표경력 | 협동학교 교사 |
[정의]
일제강점기 안동 출신의 독립운동가.
[개설]
본관은 의성(義城)이며, 1880년(고종 17) 지금의 경상북도 안동시 임하면 천전리에서 출생하여 1945년 사망하였다.
[활동사항]
김규식은 1907년에 안동 진천에 설립된 근대식 학교인 협동학교(協東學校)에서 교사로 활동하였다. 1910년 일제에 의해 대한제국이 멸망하자 김동삼(金東三)·이상룡(李相龍) 등 안동 지역 인사들이 신민회(新民會)와 더불어 해외 독립운동 기지 건설 계획을 추진함에 따라, 1910년 12월 24일 백부(伯父) 김대락(金大洛)을 따라 서간도 삼원포로 망명하였다. 삼원포에 정착한 그는 경학사(耕學社)·부민단(扶民團) 등에 가담하여 독립운동 기지 건설에 노력하였다.
1919년 3월 김규식은 부민단을 한족회(韓族會)로 확대 개편할 때 학무부장으로 선임되어 만주 이주 한인들의 생활 안정에 기여하였다. 또 같은 해 4월 서로군정서(西路軍政署)가 조직되자 여기에도 참여하여 활동하였다. 이후 그는 정의부(正義府)에 참여하여 항일투쟁을 전개하였으며, 한때 심양에서 동아여관(東亞旅館)이란 여인숙을 운영하며, 독립운동의 연락 거점으로 활용하였다. 이후 오상현 안가촌으로 이주하여 중국 관내와 러시아 지역 동포와 연락하며 활동하다가, 1944년 8월에 일본 경찰에 체포되었는데, 이후 행적은 알려지지 않고 있다.
[상훈과 추모]
1996년 건국훈장 애국장이 추서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