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4000298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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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鄭雲馹 |
영어공식명칭 | Jung Unil |
분야 |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
유형 | 인물/의병·독립운동가 |
지역 | 대구광역시 |
시대 | 근대/일제 강점기 |
집필자 | 김일수 |
출생 시기/일시 | 1884년 - 정운일 출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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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동 시기/일시 | 1913년 2월 20일 - 정운일 재건 달성친목회 결성 참여 |
활동 시기/일시 | 1916년 9월 4일 - 정운일 대구권총사건 가담 |
활동 시기/일시 | 1917년 8월 - 정운일 대구복심법원에서 징역 10년형 언도 |
활동 시기/일시 | 1945년 8월 17일 - 정운일 경북치안유지회 결성 참여 |
활동 시기/일시 | 1946년 3월 - 정운일 대한독립촉성국민회 경상북도지부 참여 |
몰년 시기/일시 | 1956년 2월 5일 - 정운일 사망 |
추모 시기/일시 | 1990년 - 정운일 건국훈장 애국장 추서 |
출생지 | 장관동 - 대구광역시 중구 장관동 |
거주|이주지 | 대구 - 대구광역시 |
활동지 | 대구 - 대구광역시 |
성격 | 독립운동가 |
성별 | 남성 |
대표 경력 | 재건 달성친목회 간사|반민족행위자특별조사위원회 경상북도위원장 |
[정의]
일제강점기 대구 출신의 독립운동가.
[개설]
정운일(鄭雲馹)[1884~1956]은 1884년 지금의 대구광역시 중구 장관동에서 태어났다. 항일 비밀결사 재건 달성친목회 결성에 참여하였고, 독립운동 자금을 모집하기 위하여 대구권총사건에 가담하였다. 아버지는 정시원(鄭時源)이다.
[활동 사항]
정운일은 1908년 계몽운동을 진작시킬 목적으로 결성되었다가 일제 강점으로 활동이 중단된 달성친목회 재건에 참여하여 간사로 활동하였다. 재건 달성친목회는 1913년 2월 20일 결성되어 활발하게 활동을 전개하였지만 배일사상을 고취한다는 혐의로 일제 당국에 의하여 강제 해산되었다.
재건 달성친목회가 강제 해산된 뒤 정운일은 김재열(金在烈)·최병규(崔丙圭)·최준명(崔俊明) 등과 함께 독립운동 자금을 마련하기 위하여 노력하였다. 1915년 4월과 6월 두 차례에 걸쳐 대구의 부호 서창규(徐昌圭)에게 독립운동 자금을 요구하였으나 실패하였다. 11월 무렵에는 대구의 부호인 정재학(鄭在學)·이장우(李章雨)·서우순(徐祐淳) 등에게 독립운동 자금 명목으로 각각 5만 원, 2만 원, 3만 원을 요구하는 서신을 보냈으나 정재학 등은 요구에 응하지 않았다. 정운일 등은 서우순의 사위인 김진만(金鎭萬)으로부터 서우순이 첩의 집에 현금을 숨겨 놓았다는 사실을 알아내고 현금을 탈취할 작정을 하였다. 1916년 8월 정운일은 김재열·최병규·최준명·김진만·김진우(金鎭瑀)·이시영(李始榮)·김재열(金在烈)·홍주일(洪宙一)을 비롯하여 대한광복회 회원이던 권국필(權國弼)·임병하(任炳夏)·서상준(徐相俊)[서우순의 아들]과 함께 서우순의 현금을 탈취할 구체적인 계획을 논의하였다.
1916년 9월 4일 정운일은 김진우·김진만·최병규 등과 함께 서상준의 도움을 받아 서우순이 자고 있던 방으로 들어갔다. 하지만 잠에서 깬 서우순이 비명을 지르고 집사 우도길이 달려오자 정운일 일행은 권총을 쏘며 달아났다. 이후 최병규가 남긴 신발이 단서가 되어 정운일을 비롯한 동지들이 일제 경찰에게 체포되었다. 정운일은 1917년 8월 대구복심법원에서 징역 10년형을 언도받고 대구형무소에서 8년 3개월 17일간 복역하였다.
정운일은 광복 직후인 1945년 8월 17일 우익 중심의 경북치안유지회 결성에 참여하였고, 1946년 3월 대한독립촉성국민회 경상북도지부에도 참여하였다. 1946년 한국민주당 대구지부와 경북도지부 결성에 깊이 관여하였으며, 1948년 3월에는 국회선거위원회가 조직될 때 경상북도선거위원회의 후보위원으로 선발되었다. 정부 수립 후에는 반민특위경북특별조사위원회 위원장으로 선출되어 친일 청산에 착수하였다. 반민특위경북특별조사위원회는 30여 건에 달하는 영장을 발부하였고, 그 가운데 18건을 조사 완료하여 세 차례에 걸쳐 혐의자를 서울 본부로 송치하였다. 정운일은 1956년 2월 5일 사망하였다.
[상훈과 추모]
대한민국 정부는 정운일의 공적을 기려 1990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