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750063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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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晋州蘇氏世居地 |
영어공식명칭 | Residential Place of Jinju So Clan |
이칭/별칭 | 익산소씨 세거지 |
분야 | 성씨·인물/성씨·세거지 |
유형 | 지명/행정 지명과 마을 |
지역 | 전라북도 익산시 |
시대 | 조선/조선 전기 |
집필자 | 박노석 |
[정의]
전라북도 익산시에 있는 진주 소씨 세거지.
[개설]
진주소씨(晋州蘇氏)는 소알천(蘇閼川)[?~?]을 시조로 하고, 본관을 진주로 하여 세계를 이어 오고 있다. 1500년대에 소세양(蘇世讓)[1486~1562]이 익산에 입향한 후 후손들이 전라북도 익산시 금마면과 왕궁면 일대에 집성촌을 형성하여 거주하고 있다.
[명칭 유래]
익산시 왕궁면 지역은 고려 시대 우주현(紆州縣)과 익산군 지역이었다. 1409년에 우주현이 전주부의 직촌으로 편제되면서 왕궁면 지역은 우북면(紆北面)이 되었고, 1896년(고종 33)에 익산군에 편입되었다. 1914년 행정구역 개편 때 우북면과 제석면 지역이 합쳐져서 왕궁면이 되었다. 왕궁면은 예전에 왕궁이 있었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용화리는 본래 익산군 제석면(帝石面) 지역이었다. 제석면은 조선 시대에는 익산군에 속하는 곳이었다. 1914년 행정구역 개편 때 제석면의 신사동(新寺洞)·화곡리(花谷里)·탄곡리(炭谷里) 전체와 황동(黃洞) 일부를 합하여 용화리라 하였다. ‘용화리’라고 이름을 붙인 이유는 용화산(龍華山)[342m] 아래에 있기 때문이었다.
[형성 및 변천]
익산 지역에 거주하는 진주소씨는 익산소씨로도 불린다. 1981년에 간행된 『익산군지』에 따르면 진주소씨는 함열읍에 14호, 오산면에 5호, 황등면에 14호, 함라면에 1호, 성당면에 1호, 용안면에 1호, 낭산면에 7호, 망성면에 어량리 78호 등 총 89호, 여산면에 10호, 금마면에 동고도리 38호·서고도리 36호·용순리 48호·기양리 26호 등 총 153호, 왕궁면에 광암리 10호·후암리 18호·구덕리 20호·발산리 91호·왕궁리 21호·동촌리 38호·도순리 6호·용화리 19호 등 총 236호, 춘포면에 42호, 팔봉면에 33호, 삼기면에 34호, 용동면에 3호가 거주하고 있었다.
2001년에 간행된 『익산시사』에 따르면 망성면 어량리에 60여 호, 금마면 용순리와 서고도리에 70여 호, 왕궁면 발산리·동촌리·용화리에 120여 호가 살고 있는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망성면에 살고 있는 진주소씨는 익산소씨와는 파가 다르다.
지역의 다른 세거성씨와 마찬가지로 진주소씨도 도시화가 진행되면서 사람들이 시내와 다른 시도로 이거하면서 호구와 인구가 계속해서 줄고 있다.
[자연환경]
전라북도 익산시 왕궁면 용화리는 용화산의 남동쪽에 있다. 천호산에서 이어져 온 산줄기가 쑥고개를 통해서 용화산으로 연결되는데, 쑥고개의 남쪽과 용화산의 남동쪽 산줄기 사이에 있다. 용화산에서 발원하여 익산천으로 합류하는 부상천이 용화리를 가로질러 통과한다. 용화리 중앙으로 국도1호선[호남로]이 통과하며, 여기에서 갈라진 화곡길, 신탄길, 신탄1길, 신탄2길, 호남로 등이 마을 안길을 형성한다.
[현황]
전라북도 익산시 왕궁면 용화리의 남동쪽에 있는 도순저수지 북쪽 큰날에 소자파(蘇自坡)와 아들 소세온·소세량·소세양, 소자파의 장인인 왕석주(王碩珠)와 부인인 화순최씨(和順崔氏)의 묘소가 있다. 2001년 간행된 『익산시사』에 따르면 용화리에는 2000년 현재 진주소씨가 19호 거주하고 있는 것으로 파악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