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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6701089
한자 未老端午祭
영어공식명칭 Miro Daoje(Shamanic ritual in Miro-myeon)
분야 생활·민속/민속
유형 의례/제
지역 강원도 삼척시 미로면 하거노리
집필자 김도현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의례 장소 강원도 삼척시 미로면 하거노리 지도보기
성격 제의
의례 시기/일시 음력 5월 5일

[정의]

강원도 삼척시 미로면 하거노리에서 매년 단오에 연행하는 서낭굿.

[개설]

미로단오제는 미로면 문화체육회에서 주무 선정에서부터 굿 비용에 이르기까지 모든 사항을 토의하여 결정한다. 의사 결정의 편의를 위해 미로면 문화체육회 산하에 단오분과위원회, 체육분과위원회, 게이트볼 분과위원회를 두었는데, 단오분과위원회에서 단오굿 관련 실무를 논의케 하였다.

단오분과위원회에서 미로면의 단오서낭굿과 관련하여 굿당을 설치하고, 도가와 제관을 선정하며, 굿을 주재하는 무속인이 선정되면 단오굿과 관련하여 준비해야 할 제반사항을 협의하도록 하였다. 그러나 굿을 주재하는 무속인을 선임하는 건은 문화체육회에서 별도로 협의하도록 하였다.

굿 방식은 동해안 일반적인 마을굿과 거의 동일한데, 다만 액멕이[액막이] 절차에서 무당이 직접 주술적 역할을 담당한다. 뒷풀이에는 노래가락과 같은 일반노래도 부르고 메나리조의 민요도 부른다. 참여 무당에 따라 넘나듦이 있다. 액멕이[액막이] 전에 점 치는 의식인 ‘잔받이’를 한다. 굿당에 나온 마을민들이 개인 조상상(祖上床)에 대한 치성을 하는 것인 바 ‘상다짐’이라고 한다. 이는 무당이 치성과 생년월일을 물어 소지를 올리며 축원해주는 대목이다. 잔받이를 하여 점괘를 내어보고 ‘액’이 낀 경우에는 그 자리에서 곧 액멕이[액막이]를 하는 것이다. 이는 이 지역의 산멕이[산메기, 산 멕이기]와 근본적인 성격이 같다고 볼 수 있다.

산멕이와 서낭굿이 결합된 형태로 전승 때문에 오랫동안 지속되었을 듯하다. 미로단오굿의 전승력은 전형적인 동해안강원 남부지역의 마을굿 형태를 띠며 확대되어 왔으며, 마을 부녀자층의 강한 신앙심과 이웃 마을 사람들의 구경거리에 힘입은 바 크다고 하겠다. 미로단오제가 가지고 있는 제의성과 놀이성 그리고 난장 체험 등은 소박하나 전통적 가치가 매우 크다.

[연원 및 변천]

마을 주민들은 단오제를 ‘서낭굿’ 또는 ‘단오서낭굿’으로 인식하고 있으며, 굿당에 가는 것을 ‘단오굿하는데 가자’라고 하였다. 그리고 마을에 상이나면 연기하지는 않고, 상이 난 사람들이 굿당을 비롯한 신성 구역에 출입하는 것을 막았고, 주민들도 상가집 출입을 자제하였다고 한다.

미로단오제가 예전에는 매우 많은 사람이 모여 그 규모가 지금보다 훨씬 컸는데, 1960년대 초인 5.16 이후 무속 행사를 미신이라 하여 사회적으로 없애는 분위기로 인해 현재와 같이 축소된 형태로 이어져오고 있다.

최근에는 굿을 음력 5월 단오날 하루만 하지만, 예전에는 1박 2일, 즉 단오와 그 다음 날 오전 10경까지 하였다. 이때 주로 전날 저녁 무렵에 다른 곳에서 온 사람들은 집으로 가고, 하거노리 사람들 위주로 모여 굿을 보고 놀았다고 한다. 하루 굿으로 바뀐 이후에도 아침 일찍부터 밤 10시경까지 하였으나, 지금은 아침 일찍 시작하여 저녁 7시경이면 끝난다. 다른 지역 주민들이 저녁에 가는 이유는 미로 각지에서 오기에 교통편을 고려한 것인데, 집에 가서 소여물을 주는 등 집안일을 해야하기에 단옷날 오후 4~5시경에 많은 사람들이 집으로 돌아갔다고 한다.

예전에는 주민들이 십시일반 성의대로 돈이나 곡물을 걷어서 굿 비용을 마련하였다고 하며, 흉년이 들면 삼척 김씨가 후원하였다고 한다. 걸립을 하면서 집집마다 다니며 빌어주었는데, 각 집에서 성의껏 별비(別備)[굿을 할 때 목돈 외에 무당에게 주는 돈]를 주었다고 한다.

미로단오굿이 언제부터 시작되었는지에 대한 기록이나 제보가 없어 정확한 것을 알 수는 없으나, 주민들 중 연세가 많은 분들의 선대 어르신들도 그 시작이 언제인지 모른다고 한 것으로 보아 매우 오래 전에 시작되었음은 분명하다.

마을 사람들이 기억하는 수준에서 예전에 미로굿을 주재하였던 무당은 엄무당, 연파무당, 햇까부리, 최분녀이다. 엄무당은 신기면 서하리 출신으로 춤·소리·장구를 잘 한 솟아난 무당[강신무]이었다고 한다. 햇까부리는 신기에 살다가 삼척시 원당으로 들어 갔다고 한다. 굿을 주재하는 무녀를 마을 대표들이 선정하였는데, 최분녀 무녀가 미로단오굿을 오랫동안 주재하기 전에는 마을 지도자들의 결정에 의해 엄부당, 연파, 햇까부리 중에서 선정하여 굿을 맡겼다고 한다. 이후 미로단오굿을 1983년 경부터 최분녀[1927년생, 별명 분녀무당, 분녀보살] 무녀가 주재하면서 미로굿은 최분녀 무녀의 단골판이 되었다.

최분녀 무녀와 함께 미로굿에 참여하였던 이는 최분녀 무녀의 제자였던 남용녀, 한순녀, 그리고 제자는 아니지만 김희성, 신용철, 호산의 말무당, 봉황천 꼬마무당[김귀옥], 박순업 등이었다. 특히 신용철[별칭: 삼척 유지구 총각 무당]은 최분녀 무녀가 주재한 미로단오굿에 17년간 참여하여 지화를 만들고 장구를 쳤으며, 실제 굿거리를 하기도 하였다. 그의 부인인 조용기 무녀도 5년간 함께 단오굿에 참여하였다.

최분녀 무녀가 돌아가신 후에 2002년까지 신용철 무당이 주도적으로 참여하였다. 그리고 삼척에서 활동하는 이옥선 무녀[별칭: 선녀무당, 선녀보살]가 1998년과 1999년, 그리고 2003년과 2004년에 미로단오굿을 주재하였으며, 2005년에는 심귀남 무녀가 김용택, 임순자 무녀 등과 함께 주재하였다. 이후 2006년에는 다시 이옥선 무녀가 주재하였고, 2007년에는 최옥화·심귀남 무녀가 주재하였다. 이후 2008년부터 현재까지 이옥선 무녀를 비롯하여 지역 내 무녀들이 미로단오굿을 주재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신당/신체의 형태]

굿당은 강원도 삼척시 미로면 하거노리둔점마을 서낭당 앞에 설치하였다.

토지신, 성황신, 단군을 적은 위목을 제단에 세우고, 골말에서 모셔온 숫서낭과 암서낭을 위한 상을 차린 상단과 각 가정에서 내어온 조상상을 진설한 하단이 설치된다.

굿당의 상단에 만들어진 상은 제물과 지화(紙花)를 올린 큰 굿상과 향, 초, 청수 등을 올린 작은 굿상으로 나뉘어진다. 메·나물·어물은 두 상을 차렸으나, 나머지 제물은 한 상만 준비하여 올렸다. 이것으로 보아 숫서낭과 암서낭을 위한 제물을 준비하였음을 알 수 있다.

굿상 뒤편에 지화를 올리고 그 앞에 제물을 진설하였다. 굿상의 맨 앞 줄에는 배, 사과, 참외, 토마토, 수박, 바나나, 오렌지, 귤과 함께 반대기떡을 놓았다. 둘째 줄에는 신명을 왼쪽에 놓고, 옥춘, 과질, 용떡, 어물, 두부전을 놓았다. 셋째 줄에는 떡[팥시루떡, 백설기], 메, 나물을 놓았다.

제단 좌측에 한지로 고깔 형태를 만들어 쌀 위에 세워두었는데, 자세히 보면 ‘大’자 형태이다. 이는 ‘신명(神明)’ 즉, ‘천지신명(天地神明)’을 나타낸 것이다. 이것은 하늘과 땅의 신을 모신다는 의미이다. 이와 함께 고깔에 실타래를 둘렀는데, 이는 천지신명이 모든 자손들에게 명주고 복주길 바라는 의미에서 걸은 것이라고 한다. 즉, 실타래처럼 잘 뻗어가고 끊어지지 않게 해 달라는 기원에서 이와 같이 둘렀다.

[절차]

단옷날 아침에 무녀들과 악사들이 당주댁에서 식사를 한 후 미로면사무소 직원들의 협조를 받아 굿당을 정비하고, 이옥선 무녀는 굿당에 제물과 지화를 진설하였다. 각종 제수 중 메, 어물, 나물은 당주댁에서 준비하여 내왔다.

그리고 무녀는 굿을 시작하기 전에 부정을 가셔내기 위한 준비물로 고춧가루, 왕 소금, 깨끗한 물을 바가지에 풀어 만들었다.

오전 7시 45분부터 제관들이 청포에 유건을 쓰면서 의복을 갖추어 입었고, 무당이 소지용 종이를 준비하였다. 이후 무녀가 메와 나물, 어물 등을 제단에 진설하였다.

7시 54분에 주무가 옷을 갖추어 입고 굿을 시작하려고 준비하였고, 제관이 제단에 돈을 올려 놓고 재배하였다. 이어 제관들이 굿당 앞에 들어서고 무녀와 무당이 장구를 준비하여 소리를 점검하였다. 이 때 제관 4명이 제단에 별비를 올려놓고 합동 재배하였다.

굿당에 제물을 모두 진설한 후 굿을 하기 전에 즉, 부정굿을 치기 전에 제당에 놓아둔 신명 앞에서 주무가 마음 속으로 굿이 잘 되기를 기원한 후 본격적으로 굿이 시작되었다.

미로 단오서낭굿은 주무에 따라 미로단오굿을 구성하는 요소나 절차는 매년 달리 나타날 수 있으나, 대체적으로 ‘부정굿 → 당맞이굿 → 성왕굿 → 조상굿 → 세존굿 → 산신굿 → 성주굿 → 군응굿 → 액멕이 → 말명굿 → 거리굿’의 순서로 진행된다. 당맞이굿은 하거노리골말 서낭당에 가서 서낭고사를 지낸 후 골말 서낭을 모셔오는 거리이다.

[부대 행사]

미로단오굿을 하면 굿당 주위에는 작은 난전이 선다. 예전에는 상인 5~6명이 주로 먹거리를 중심으로 가져와서 판매하였다고 한다. 2008년에도 김밥, 우동, 찹쌀 순대, 떡볶이, 녹두전, 잔치 국수, 꿀차, 술 등을 구비한 포장마차형 임시 식당이 서서 굿을 보기 위해 모여든 사람들을 대상으로 장사를 하였다. 이와 함께 아이스크림을 판매하는 사람도 와서 장사를 하였다.

그리고 굿당 입구에는 기부금 접수처를 마련하여 성금을 받았다. 예로부터 미로단오굿 운영 경비를 마을 주민들이 십시일반으로 내어 굿을 하였는데, 이 전통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최근에는 시의 보조금이 지급되어 주민들의 부담은 다소 줄었으며, 인근 기업체 등을 방문하여 기부금을 받지 않아도 된다고 하였다. 다만 굿당에 오는 사람들을 대상으로 성의껏 내는 성금은 접수하였다.

미로단오제 및 면민 축제 발전 기금 접수처’라고 쓴 팻말을 책상 위에 두고 기부금을 받았으며, 기부금을 낸 사람들 명단과 기부 금액을 모조지에 세로로 적어 굿당 주위에 줄을 만들어 걸었다.

예전에 미로 단오서낭굿은 5월 단오에 열고, 미로면민 체육대회는 별도의 날을 정하여 열었다. 약 20여년 전부터 미로면 단위 행사를 별도로 개최함에 따른 비효율 문제를 해결하기위해 미로면민들이 많이 모이는 단오에 체육 행사를 같이하기로 하여 단오굿당 주위에서 단오굿과 체육 행사를 같이 열게 되었다. 이후 미로면 하거노리하거노1리, 하거노2리, 하거노4리로 분동이 된 후 1~2년 지나고 나서 하거노 이장과 반장이 주도하였던 단오굿을 미로면 문화체육회에서 인수하여 미로 단오서낭굿을 주도하게 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2008년에는 할머니서낭당에 차린 굿당 주변 체육공원에서 면민 축제(기줄다리기, 단체줄넘기, 제기차기, 팔씨름, 사물놀이)와 게이트볼 경기장에서 삼척시 게이트볼 대회를 열었다. 구성은 2개팀[두타팀[9개리 447세대], 근산팀[10개리 455세대]]으로 구성하였는데, 두타팀은 무사리, 사둔1리, 하거1리, 하거2리, 상거1리, 상정리, 동산리, 삼거리, 내미로리이고, 근산팀은 사둔2리, 하거3리, 하거4리, 상거2리, 하정리, 천기리, 활기리, 하사리, 상사리, 고천리이다.

당시 미로면문화체육회 산하 체육분과위원회에서 주도하여 경기를 진행하였고, 미로면사무소에서 집행을 보조해 주었다. 그리고 종별 시상품을 준비하여 시상하였는데, 승리팀과 패전팀에 약간의 차이만 두었다.

2009년에는 미로단오굿을 하는 과정에 민속예술공연으로 법고무, 산조춤, 장고춤, 부채춤, 화양릴리리를 시연하였다. 그리고 태백 아라레이 공연단에서 정선아리랑, 바가지장단, 사시렝이, 투전풀이, 강원도타령 등을 불러 분위기를 고조시켰다. 또한 2008년에 이어 삼척시 게이트볼대회를 열었다.

2010년에는 미로단오굿과 게이트볼 대회만 하였다.

예전에는 단오에 굿을 하면서 그네를 타고 줄다리기 등을 하였으나, 시대 변화에 따라 지역민들이 조금의 시간이나마 여유를 가지고 서로 단합을 다지면서 피로를 풀기 위한 다양한 행사들이 등장하고 있다. 그러나 시대 변화에 따라 석전놀이나 그네타기 대신 한쪽에선 옛 전통을 이어서 굿을 하고, 다른 한편에선 시대 변화를 반영한 게이트볼 대회를 개최하였음을 알 수 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시대 변화에 따른 종목의 변화가 있어도 미로단오제는 단오서낭굿을 중심으로 미로면민들에게 축제적 성격을 부여하면서, 개인과 마을의 안녕과 풍요를 기원하는 염원을 담아내는 큰 축제로서의 기능에는 변함이 없다는 사실이다.

[참고문헌]
  • 이창식·차장섭·배재홍·김도현, 『미로단오제』(강원대 강원전통문화연구소, 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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