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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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18년에서 1392년까지 고려왕조가 지속되었던 시기의 울릉도의 역사. 고려를 건국한 태조 왕건(王建)은 후백제 견훤(甄萱)과의 사이에서 경상도의 공산(公山) 전투, 고창(古昌)[현 안동] 전투 등을 통해 한반도 주도권을 둘러싸고 치열한 공방을 벌였다. 태조 왕건은 930년 고창의 병산(屛山) 전투에서 후백제의 견훤을 물리침으로써 후삼국의 주도권을 장악하였다. 이로 인해 명주(溟州...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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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 연대가 오래 되어 현대지도와 구별되는 지도 중 경상북도 울릉군과 관련이 있는 지도의 총칭. 고지도는 근대적인 투영법이 발달하지 않았던 시대의 회화적인 지도를 말한다. 지도는 주로 행정적·군사적 목적에서 제작되었으나 실학(實學)이 일어나면서 산업·경제·문화에 대한 관심이 반영되어 산맥과 하천·항만·도로망 등의 표시가 정밀해졌다. 고지도는 지도에 수록되는 지역의 규모에 따라 세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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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울릉군에서 농사를 지을 때 사용하는 도구. 농경(農耕)은 신석기 문화 단계 후 충적세(沖積世)에 들어와서 현재와 거의 같은 자연 환경이 되면서 싹텄다. 그리하여 유럽과 아시아, 아프리카, 오세아니아, 아메리카 등 여러 대륙에서 각기 다른 자연 환경에 대응한 농경이 개시되면서 각기 다른 작물의 종류와 땅의 특성, 문화의 전통에 의해 농기구를 비롯한 농경 기술은 천차만별로 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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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전기 우릉도[당시 울릉도]에서 고려로 보내진 사절. 930년(태조 13) 8월 15일 우릉도에서 백길과 토두를 고려에 사절로 보내어 방물을 바치자 고려 조정은 백길에게 정위(正位), 토두에게는 정조(正朝)의 벼슬을 내렸다고 전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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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전기 우산국 성주의 아들. 『고려사(高麗史)』에 기록에 의하면 우산국은 고려 전기 1018년(현종 9) 경에 여진족의 침입으로 급격히 쇠퇴하였으며, 1019년(현종 10)에 여진족 침입 당시 본토로 피난했던 우산국 사람들을 다시 우산국으로 돌려보냈다고 한다. 그러나 우산국의 피폐해진 생활여건은 쉽게 회복되지 않아 1022년(현종 13)에 본토에 피난했던 우산국 사람들을 예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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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울릉군에서 활동하는 부처와 그의 가르침을 따르는 종교. 불교는 기원전 5세기 경 석가모니가 설한 교법을 종지(宗旨)로 전파된 종교이다. 경상북도 울릉군은 1157년(예종 11) 이후 풍파로 인한 인명 손실과 외적의 침입을 막기 위해 조정이 공도(空島) 정책을 쓴 이후 빈 섬이 되었다가 1883년(고종 20) 개척령이 반포된 후 이주민이 들어왔다. 따라서 울릉도의 불교 포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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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력 4월 8일에 경상북도 울릉군에서 석가모니의 탄생을 축하하는 날. 『고려사(高麗史)』에 의하면 신라 때에는 정월 15일에 연등을 하다가 고려 현종 때 2월 15일로 옮겨졌고, 중종 때부터 사월초파일로 정착하게 되었다고 한다. 울릉도에서 가장 오래된 사찰은 1896년 불국사 말사로 세워진 대원사(大願寺)이다. 초파일이 되면 불교 신도들은 대원사, 삼도사, 보덕사(普德寺) 등의 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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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 공립 교육기관이 설립되기 전 경상북도 울릉군에서 초등 교육을 담당했던 사설 교육기관. 신교육이 실시될 때까지 가장 보편화된 교육기관이었던 서당은 민간 사설 교육기관으로 오늘날의 초중등교육을 담당하던 기관이다. 기원은 고구려의 경당(扃堂)에 있으며, 고려와 조선을 거쳐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교육기관이다. 일반적으로 서당은 교육기관으로서의 역할뿐만 아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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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사로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의 경상북도 울릉군의 역사. 울릉도의 경우 일제강점기인 1917년 도리이 류조[鳥居龍藏]에 의해 처음 유물의 채집이 있은 이후 후지타 료사쿠[藤田亮策] 등의 조사가 있었다. 해방 후 국립박물관에 의해 울릉도의 고고학적 조사가 실시되었다. 1947년과 1957년에 김원룡 등에 의해 체계적인 조사가 이루어졌고, 1963년에 김정기에 의해 보충 조사가 실시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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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울릉군의 옛 지명 중 하나. 『고려사』를 살펴보면 울릉도의 옛 지명은 우릉도(芋陵島, 羽陵島), 우산국(于山國), 우릉성(羽陵城), 울릉도(蔚陵島, 鬱陵島), 무릉도(武陵島) 등이 혼재되어 나타난다. 삼국시대에 울릉도는 우산국이라 불렸으나 고려가 새로운 통일 왕조로 등장한 후, 울릉도는 고려 정부로부터 우산국, 혹은 우릉성으로 불렸다. 그런데 『고려사』에서 우산국이라는 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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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도는 동도(東島)와 서도(西島) 및 그 주변에 흩어져 있는 89개의 바위섬으로 이루어진 화산섬이다. 예전에는 삼봉도(三峰島)·가지도(可支島)·우산도(于山島) 등으로도 불렸는데, 울릉도 개척 당시 입도한 주민들이 돌섬으로 부르다가 이후 돍섬으로 변하였고, 다시 독섬으로 변하였다. 독섬을 한자로 표기한 것이 독도(獨島)이다. 프랑스와 유럽 같은 나라에서는 독도를 발견한 배의 이름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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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울릉군에 있던 고대의 해상 왕국. 우산국은 『삼국사기(三國史記)』 권3 신라본기 지증왕 13년 6월조와 같은 책 권44 열전 이사부조에 처음으로 등장하며, 이후 신라가 멸망할 때까지 사료에 나오지 않다가 고려 현종조의 기록에 다시 나온다. 이와 같은 단편적인 기록만으로는 우산국 명칭의 유래를 밝힐 수 없는 실정이다. 우산국은 오래 전부터 울릉도에 토착하여 생활하던 원주민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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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울릉군에 속하는 섬. 512년(지증왕 13) 하슬라주 군주인 이사부가 우산국(宇山國)을 정벌하였다는 기사가 울릉도의 지명에 관한 최초의 언급이다. 그 후 930년(태조 13)에 우릉도(芋陵島)에서 방물을 보냈다는 기록이 나온다. 이후 고려 현종 때까지 우산국이란 지명 만이 보인다. 현종 때를 마지막으로 우산국이란 지명은 보이지 않고, 덕종 때 우릉성(羽陵城), 인종 때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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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때 울릉도에 대한 개척 정책의 일환으로 본토 주민의 이주를 시도한 정책. 우산국(于山國)은 930년(태조 13)에 고려에 토산물을 바쳤으나 고려 현종조 이전까지는 우산국으로 불리면서 독자적 정치 세력을 가진 국가 체제를 갖추고 있었다. 그후 현종 때 동북여진(東北女眞)의 침공으로 그 자립 기반이 무너짐으로써 고려 왕조의 개척 정책이 시도되고, 본토의 주민을 이주시켜 군현을 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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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시대 경상북도 울릉군을 관할한 동계 소속의 지방행정구역. 고려의 군현제에서 수령이 파견된 군현은 주현(主縣)이라 하고 수령이 파견되지 않은 군현은 속현(屬縣)이라고 한다. 속현은 주현의 간접적인 지배를 받았다. 울진현은 주현으로서 울릉도를 관할하였다. 울진은 원래 고구려의 우진야현(于珍也縣)이었다가 신라에 편입되었다. 통일신라시대에는 757년(경덕왕 16)에 울진군으로 명칭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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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67년(현종 8)에 사이토 호센이 간행한 독도에 관한 일본 최초의 문헌. 1667년 일본 운주(雲州) 지방 번사(藩士)였던 사이토 호센[齋藤豊仙]이 편찬한 것으로, 일본의 은주(隱州)[온슈]를 관찰하고 들은 내용을 기록한 보고서이다. 일본인에 의해 기록된 최초의 기록으로 당시 바다를 표류하던 중 울릉도와 독도에 관한 기록이 상세하게 담겨져 있다. 일본어로 된 필사본으로 5권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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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전기 우산국에 농기구를 전해준 사람. 1018년(현종 9) 11월 우산국이 동북 여진의 침략을 받아 농사를 짓지 못하자 고려 조정이 우산국[지금의 울릉도]에 이원구를 파견하여 농기구를 전해주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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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울릉군에서 지표상의 인문적 요소를 분석 대상으로 지역의 의의를 일반적으로 고찰, 연구하는 학문 분야. 울릉군의 총 면적은 72.82㎢로 경상북도 전체면적 19,440.7㎢의 약 0.37%에 해당되고 우리 나라 군 중에서 가장 면적이 작은 군이다. 면적 중 경지 면적은 12.97㎢로 18%이고, 임야 면적은 55.48㎢로 76%이다. 각 읍·면별 크기는 서면이 27.20㎢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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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울릉군에서 나무를 재배하고 벌채하고 목재를 생산하는 산업. 1. 고려 시대 울릉군의 임업에 대한 역사적 기록은 일찍이 찾아 볼 수가 있다. 『고려사(高麗史)』 1141년(인종 19) 기사에 명주도(溟州道) 감창사(監倉使)로 임명된 이양실(李陽實)이 사람을 울릉도로 보내 사정을 살피게 하였는데, 그가 가져온 것 중 본토 내에서는 볼 수 없는 과핵(果核)과 목엽(木葉)이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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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01년(순조 1) 야다 다카마사가 저술한 안용복의 이야기가 실린 일본 문헌. 울릉도를 오가며 어업 행위를 하는 어부들의 이야기와 안용복(安龍福)에 대한 이야기가 기록된 책이다. ○ 독도에 대해서는 다음과 같이 기록되어 있다. 오키도오고로부터 송도는 서쪽으로 바다 멀리 떨어져 있는데 동쪽에서 불어오는 바람을 타고 2박 2일 가야 되며, 도법 36정 1리[약 3.3㎞]로서 해상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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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울릉군에서 활동하고 있는 한국 불교 27개 종단의 하나. 조계종은 신라 때부터 내려오던 9산선문(九山禪門)을 고려시대에 통합한 종파로, 달마대사에서 6대조인 혜능선사가 중국에서 선풍을 크게 일으킨 이래 선종을 계승한 고려의 선종 종파를 의미하게 되었다. 조계종은 석가모니의 가르침을 근본으로 하고 견성성불(見性成佛)하여 중생에게 널리 진리를 전파하는 것을 종지로 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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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시마네현[島根縣] 의회는 1905년 고시 제40호를 통해 독도를 시마네현 오키군[隱岐郡] 오키노시마[隱岐の島]에 편입한 지 백 주년이 되는 2005년 2월 22일을 ‘다케시마[竹島]의 날’로 정하는 조례안 제정을 강행하여 의회에서 통과시켰다. 그후 “독도를 돌려 달라”는 내용의 텔레비전 광고를 내보내고 있다. 그러나 이런 주장은 지금으로부터 3백여 년 전 일본의 도쿠가와 막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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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울릉군에서 이루어지는 제반 신앙 행위의 총칭. 종교는 인간의 정신문화 양식의 하나로 인간의 여러 가지 문제 중에서도 가장 기본적인 것에 관하여 경험을 초월한 존재나 원리와 연결지어 의미를 부여하고 또 그 힘을 빌려 통상의 방법으로는 해결이 불가능한 인간의 불안·죽음의 문제 등을 해결하려는 것이다. 우리나라에서 활동하는 종교로는 유교, 불교, 천주교, 개신교, 신종교 등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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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태조 때 울릉도의 수장. 『고려사(高麗史)』에는 “930년(태조 13)에 우릉도(芋陵島)에서 백길(白吉)과 토두(土豆)를 보내어 방물(方物)을 바쳤으므로 백길은 정위(正位), 토두는 정조(正朝)로 각각 삼았다”는 기록이 있다. 이와 거의 동일한 기록이 『고려사절요(高麗史節要)』에도 있다. 『고려사』와의 차이는 우산국에서 ‘사자(使者)’를 파견하여 방물을 바쳤고, 토두(土豆)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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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시대 경상북도 울릉군 지역에 존재했던 특수행정구역. 향(鄕)과 부곡(部曲)은 삼국시대부터 있었다. 고려시대에는 향과 부곡 외에 소(所)·장(莊)·처(處)가 있었다. 당시 경(京)·목(牧)·도호부(都護府)·군(郡)·현(縣) 등의 집단을 총칭하여 군현제(郡縣制)라 하고, 향·부곡·소·장·처 등을 흔히 부곡제(部曲制)라고 하였다. 고려시대 군현 조직은 군현제와 부곡제 영역으로 구성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