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240165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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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辛必元 |
영어음역 | Sin Pilwon |
이칭/별칭 | 신원이(辛元伊) |
분야 |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
유형 | 인물/의병·독립운동가 |
지역 | 경상북도 안동시 임하면 금소리 |
시대 | 근대/근대 |
집필자 | 한준호 |
성격 | 독립운동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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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신지 | 경상북도 안동시 임하면 금소리 |
성별 | 남 |
생년 | 1883년 |
몰년 | 1919년 |
본관 | 영월 |
[정의]
일제강점기 안동 출신의 독립운동가.
[활동사항]
본관은 영월(寧越). 1883년 현재의 경상북도 안동시 임하면 금소리에서 태어났다. 신필원은 일찍이 쓰러져 가는 나라를 걱정하다가 1919년 고종 황제의 죽음으로 전국적으로 3·1만세시위가 펼쳐지자, 이것을 기회로 나라를 되찾고자 하였다. 안동에서의 3·1만세시위는 3월 13일부터 3월 27일까지 안동·예안·임동·임하·길안 등 11개 지역에서 14회에서 걸쳐 일어났다. 이 가운데 신필원은 임하면 금소·신덕동에서 일어난 만세시위에 참가하였다.
임하면 만세시위는 임하면 금소리의 임찬일(林贊逸)이 임범섭(林範燮)·임득연(林得淵) 등과 고종 황제 국장에 참가하고 독립선언서를 구해 오면서 준비되었다. 이들은 3월 16일 길안면 장날에 거사하기로 결의했지만, 호응하는 사람이 적어 3월 21일로 연기하였다.
드디어 거사날인 3월 21일 저녁에 100여 명의 금소마을 사람들은 독립만세를 부르면서 면소재지인 신덕으로 몰려갔다. 또 이들은 밤 9시 무렵 다시 시위 군중과 함께 주재소에 밀고 들어가 문과 유리창을 부수고 서류를 파기하는 등 과감성을 보여주기도 하였다. 그러던 중 신필원은 일본 경찰이 쏜 총에 맞아 임조일(林造逸)·임지열(林志烈) 등과 함께 현장에서 순국하였다.
[상훈과 추모]
1982년에 대통령표창을 받았으며, 1991년에 건국훈장 애국장이 추서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