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640121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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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唐津農樂- |
영어공식명칭 | Dangjin Nongak Outdoor Performances |
분야 | 생활·민속/민속 |
유형 | 놀이/놀이 |
지역 | 충청남도 당진시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이금돈 |
재현 시기/일시 | 1990년대 초 - 당진농악 판굿놀이 중 일부 재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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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 행사 시기/일시 | 2012년 11월 11일 - 제5회 농악인의 날 당진 전통 판굿놀이 원형 재현 |
놀이 장소 | 당진 전통 농악 판굿놀이 - 충청남도 당진시 전역 |
주관 단체 | 당진 전통 농악 보존회 '당진농악대' - 충청남도 당진시 백암로233-2[채운동 333-8] |
성격 | 판굿 |
노는 시기 | 연중 |
[정의]
충청남도 당진시에서 걸립패나 두레패가 풍물을 갖추고 재주를 부리며 놀던 마당놀이.
[개설]
충청남도 당진시의 판굿놀이는 1988년 당진농악 친목회 회원들이 일부 지역에서 하던 판굿으로 공연 활동을 하였으나 1990년대 초 면천면에서 상쇠로 활동하던 이호성의 아들 이금돈이 당진 농악 친목회에 입문하면서 각 읍과 면에 있던 마을 농악인들을 찾아다니며 약 20여 년 동안 발굴 조사 끝에 당진 전통 농악 판굿놀이를 완성하였다. 1990년대 초 당진농악 판굿놀이 중 일부 재현하였고, 2012년 11월 11일 제5회 당진농악인의 날에 당진 전통 판굿놀이 원형을 재현하였다.
[연원]
당진농악 판굿놀이는 약 110여 년 전인 구한말 일부 마을[합덕읍 창정리, 우강면 원치리, 면천면 송학리, 정미면 봉성리, 대호지면 적서리, 신평면 도성리 등]에서 두레 판굿 중 멍석말이, 당산벌림, 칠채굿 등으로 이루어져 왔으나, 대부분 두레 농악이었다. 그러나 일제 강점기 동안 빛을 보지 못하고 전국에서 걸립패들만이 간간이 활동하였다. 광복 이후 당진시의 농악과 걸립패들의 연희성 판굿의 교류가 활발해지면서 당진시도 작은 규모의 두레 판굿에서 벗어나 규모 있는 판굿놀이가 도입되었다. 각 지역에서 크고 작은 난장이 열리고 농악 대회를 개최하여 마을의 농악대와 떠돌던 걸립패들이 자연스럽게 교류하여 당진농악과 판굿이 발전하였다. 각 읍과 면의 농악대들은 자기들만의 독특한 판굿을 창안하여 대회에 참여하면서 선의의 경쟁을 통해 더욱 발전하였고, 특히 남사당패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당시 당진시에는 기량이 우수한 많은 농악인이 활동하였는데, 그중 전근배, 정일파, 채규태, 박귀식, 최성구가 남사당패에 있으면서 이름을 널리 알리고 당진농악의 우수성을 전국에 알리는 계기가 되었다. 남사당패는 모내기철에 전국을 떠돌며 활동하다 추수가 끝나면 은거 생활을 하였는데 그중 한곳이 당진이었다. 정확한 은거지는 알 수 없으나 면천면 영탑사 부근의 성하리, 순성면 구절산 부근의 봉소리라 추정하였으나, 합덕읍 창정리 성동산성 일원이 가장 유력하다. 겨우내 은거에 들어가는 남사당패는 어린아이들의 기예를 지도하고 당진시의 두레 농악에 남사당패의 판굿을 도입하여 당진시의 농악 발전에 영향을 주었다. 그리고 전근배, 정일파는 최고의 농악 기량인으로 당진농악과 판굿이 뿌리내리는 데 지대한 영향을 주었다. 1960년대 초 당진시의 대표적인 농악단[면천면의 송학리 내동 농악대, 정미면의 봉성리 농악대, 합덕읍의 창정리 농악대, 우강면의 원치리 농악대, 신평면의 도성리 농악대 등]들은 각 마을만의 독특한 판굿을 창안하여 각종 대회에 참여하고 선의의 경쟁과 교류를 통해 당진농악 발전과 부흥에 기여하였다.
당진농악 판굿놀이는 1970년대 말 상쇠들의 죽음과 사회적 변화에 의해 당진농악이 침체기에 시들해지고 일부 마을에서만 그 명맥을 이어 갔다. 그러던 중 농악 기량인으로 활동하던 약 15명이 뜻을 모아 전통을 잇고자 당진농악 친목회를 결성하여 활동하면서 명맥을 유지할 수 있었다. 그러나 당시에는 판굿놀이가 일부에 지나지 않았고 내용도 미약하였다. 1990년대에 들어 새로운 단원들이 입문하였고 이때 입문한 이금돈은 당진시에 생존해 있는 농악인을 찾아다니며 당진시의 전통 가락과 판굿 발굴 조사에 나서 약 20여 년 동안 모은 자료와 증언을 토대로 연구해 책으로 엮었다. 오늘날 당진 농악 판굿놀이는 특정 지역의 것이 아닌 당진시 전 지역에서 행해지던 판굿을 한데 묶어 연출하고 있다.
[놀이 도구 및 장소]
당진농악 판굿놀이 도구는 꽹과리, 징, 장구, 북, 상모, 소고, 쇄납[태평소], 열두발상모 등이 있다. 장소가 제한되거나 특별히 지정된 곳은 없고 약 20~30여 명이 자유롭게 활동할 수 있는 장소면 어디든 가능하다.
[놀이 방법]
당진농악 판굿놀이의 놀이 방법은 꽹과리를 치는 상쇠의 지휘에 따라 주어진 판굿의 내용과 순서에 따라 진행된다. 모든 단원은 자기의 위치를 알고 순서를 알아야 놀이가 가능하다. 판굿 공연에는 모든 악기의 구성이 조화를 이루어야 성공적으로 공연을 마칠 수 있다. 1980년대까지는 대부분의 농악대가 마을 위주로 약 15명 정도의 소단위 인원으로 구성되었고, 시간도 약 15분 내외였다. 1990년 이후 오늘날까지는 마을 단위의 농악대는 대부분 사라지고 당진시 전역에서 모인 단원들로 적게는 15명, 많게는 30명 이상으로 짜여져 판굿놀이에 참여한다. 매년 1회 정기 시연, 지역 축제 및 행사에 연간 약 40여 회 출연하고 있다.
[생활 민속적 관련 사항]
당진농악 판굿놀이는 대부분 농사와 농촌 생활의 모습을 형상화해 농악 놀이에 접목하여 판굿이 만들어졌다. 그러므로 조상들의 생활과 밀접한 관계를 맺으며 이어져 온 전통 놀이이다.
[현황]
당진농악 판굿놀이는 2016년 단장 겸 상쇠 이금돈, 고문 김의석, 회장 유의준, 부회장 이영우·김길성, 재무 박종원, 사무국장 조미옥, 감사 김영창·마우영, 원로 회원 김동기·성창모·노봉환·이은후, 회원 유원균·박옥진·전순애·국중석·김영희·조정숙·김규태·조성옥·심윤찬·이재권·오원생·최달호·강병임·강윤희·김인옥·신영옥·정미선, 특별 회원 임덕희·신현분·고은순·안선희·남한숙·마병숙·김은옥·조영미·박정구로 조직되어 운영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