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640141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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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常綠樹 |
영어공식명칭 | Sangnoksu|Evergreen Tree |
분야 | 구비 전승·언어·문학/문학 |
유형 | 작품/문학 작품 |
지역 | 충청남도 당진시 송악읍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구자경 |
저자 생년 시기/일시 | 1901년 9월 12일 - 심훈 출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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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술|창작|발표 시기/일시 | 1935년 9월 10일~1936년 2월 15일 - 『동아 일보』에 「상록수」 연재 |
관련 사항 시기/일시 | 1935년 - 「상록수」, 『동아 일보』 창간 15주년 기념 장편 소설 현상 공모 당선 |
저자 몰년 시기/일시 | 1936년 9월 16일 - 심훈 사망 |
배경 지역 | 당진필경사 - 충청남도 당진시 송악읍 상록수길 97[부곡리 251-2] |
배경 지역 | 상록탑 - 충청남도 당진시 남산 공원 |
배경 지역 | 심훈 기념관 - 충청남도 당진시 송악읍 상록수길 97[부곡리 251-2] |
성격 | 농촌 계몽 소설 |
작가 | 심훈 |
[정의]
심훈이 1935년 충청남도 당진시 송악면 부곡리 필경사에서 집필한 장편 소설.
[개설]
소설 「상록수」는 작가 심훈이 조상 전래의 터전인 충청남도 당진시 송악면 부곡리로 이주하여 쓴 작품이다. 당진에 정착한 심훈은 1934년 필경사(筆耕舍)를 직접 설계하여 짓고, 이곳에서 1935년 5월 4일부터 6월 26일까지 54일간 소설 「상록수」를 집필하였다. 「상록수」는 1935년 『동아 일보』 창간 15주년 기념 장편 소설 현상 공모에 당선된다. 심훈은 신학교를 졸업하고 경기도 산골에서 농촌 운동을 하다가 과로로 숨진 최용신의 신문 기사를 읽게 된다. 그리고 심훈이 지내던 당진의 부곡리에는, 경성 농업 학교를 졸업하자마자 고향에 돌아와 농사 개량과 문맹 퇴치 운동을 벌이던 장조카 심재영이 있었다. 심훈은 이 둘을 모델로 소설을 쓰며 피폐해진 우리 농촌의 현실을 고발하고 다시 일어설 수 있다는 희망을 담고자 하였다. 그 결실이 소설 「상록수」였다.
[생애]
작가 심훈은 1901년 9월 12일 경기도 시흥군 신북면 흑석리[현 서울특별시 동작구 노량진동]에서 아버지 심상정과 어머니 해평 윤씨의 3남 1녀 중 막내로 태어났다. 1915년 경성 제일 고등 보통학교에 입학한 심훈은 1917년 왕족인 이해영(李海暎)과 혼인하였다. 1919년 3·1 운동에 가담하여 투옥되었다가 석방 후 퇴학당하고 중국으로 망명하였다. 1923년 귀국하여 연극·영화·소설 집필 등에 몰두하였는데 처음에는 영화에 많은 관심을 기울였다. 1924년 이해영과 이혼하였고 동아 일보사에 입사하였다. 1926년에는 우리나라 최초의 영화 소설 「탈춤」을 『동아 일보』에 연재하기도 하였다. 1930년에는 음악가 안정옥(安貞玉)과 재혼한다. 1931년 경성 방송국으로 옮겼으나 사상 문제로 곧 퇴직하였다. 1932년 조상의 땅 충청남도 당진으로 내려와 집필에 전념한다[1933년 낙향설도 있음]. 1933년 상경하여 조선 중앙 일보사에 입사하였으나 다시 낙향하였다. 1934년 소설 「직녀성」을 연재하며 받은 원고료로 자신의 거처를 직접 설계하여 짓고 ‘필경사(筆耕舍)’라 하였다. 1936년 9월 16일 서울에서 장티푸스로 사망하였다.
[구성]
소설 「상록수」는 '쌍두취 행진곡', '일적천금', '기상 나팔', '가슴 속의 비밀', '해당화 필 때', '제3의 고향', '불개미와 같이', '그리운 명절', '반가운 손님', '새로운 출발', '이별', '이역의 하늘', '천사의 임종', '최후의 1인' 등 총 14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또한 박동혁 중심의 이야기와 채영신 중심의 이야기가 독립적으로 구성되어 있으나 농촌 계몽 운동과 젊은 남녀의 사랑이라는 중심 사상에 의해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있는 복합 구성이다.
[내용]
박동혁과 채영신은 여름 방학을 이용해 농촌 계몽 운동에 참여했다가 농촌 계몽대 귀환 보고 대회에서 발언자로 만나 동지가 된다. 가정 형편으로 학업을 포기한 동혁은 고향 한곡리로, 영신은 기독교 청년 연합회 특파원으로 청석골로 내려가 농촌 계몽 운동을 벌인다. 동혁은 갖가지 사업에 농우회 회관까지 장만하였고, 영신은 부녀회를 조직하는 한편 마을 예배당을 빌려 강습소를 운영한다. 영신은 주재소의 방해로 강습소 운영에 어려움을 겪게 되고 기부금 강요 혐의로 주재소 유치장 신세를 진다. 동혁도 강기천의 모략과 동생 동화의 방화 문제로 구속된다. 일본으로 유학 간 영신은 병으로 귀국하게 되고 병이 악화되어 숨을 거둔다. 출소한 동혁은 영신의 장례식에 다녀오면서 농민을 위해 살 것을 굳게 다짐한다.
[특징]
「상록수」는 실존 인물을 모델로 했다는 특징을 갖는다. 심훈은 그의 장조카 심재영을 박동혁으로, 최용신을 채영신으로, ‘공동 경작회’를 ‘농우회’로 바꾸고, 그 밖의 지명도 유사하게 바꾸었다. 뿐만 아니라 1930년대 유행한 브나로드 운동을 작품 속에 반영하여 지역 단위의 농촌 계몽 운동을 작품에서 잘 드러내고 있다.
[의의와 평가]
「상록수」는 1930년대 브나로드 운동의 정신을 담은 실천 문학으로 평가받고 있다. 또한 이광수의 「흙」과 더불어 일제 당시의 농촌 계몽 사업과 민족주의를 고무한 공으로 한국 농촌 소설의 쌍벽으로 평가받고 있다. 식민지 현실을 반영한 이 작품은 계몽 운동가의 저항 의식을 형상화시킴으로써 이상으로서의 계몽을 앞세우는 낭만적 수사의 한계를 벗어났다고 본다. 다른 한편으로 식민지 현실에서 지식인으로서의 고뇌는 심훈이 「상록수」 당선 상금으로 상록 학원을 세우는 데 조력하는 모습을 통해서도 확인할 수 있다. 그래서 심훈이 당시 지식인들의 계몽 의지를 문학과 실천을 통해 일치시킨 인물로 평가받는 것이다. 「상록수」는 1930년대를 넘어 현재에 이르기까지 ‘상록수 정신’이라는 가치로 살아 있고, 그 가치를 실천하려는 노력의 원동력이 되고 있는 작품이다.